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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더 당당해지기 위해서...


BY 맘 착한 여자 2000-10-26

결혼해서 3년동안.. 말대답 한번.. 싫은소리 한번없이 그저 있는듯 없는듯 넙죽 엎드려만 살았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정확히, 아일 낳고 키우는데 열중하면서부터..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아이의 기억속에 남고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조금씩 예전의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고.. 세상 그 무엇보다 엄마는 강하다고.. 뼈저리게 실감, 통감하는 요즘입니다.

오늘 문득.. 아기 사진첩을 정리하던중 초음파 사진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2년전 그때의 아픈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저희 시댁은 유난히도 손이 귀한 집입니다. 제 남편만해도.. 위로 누나만 넷이 있습니다만.. 막내 누님을 제외하곤 전부 배다른 자매지간입니다. 시아버님께서 아들보실 욕심으로 저지르신(?) 웃지못할 일이지요..

결혼초부터 무던히도 압력을 주시더군요.. 첫애는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 한다시며.. 그러시는게 당연하다~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론 그때부터 무지 속상하고 섭섭했습니다.

원래부터 체력이 좀 약한편이긴했지만.. 두번의 자연유산을 경험했습니다. 물론, 시댁에선 그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결혼한지 2년이 다되도록 아이 소식이 없자 시아버님 인상이 날로 험해져만 갔습니다.
나중에는 저를 앉혀놓으시고 몸에 무슨 병같은거 있는거 아니냐는 말씀까지 하시더군요..

그렇게 기다리던 아일 갖게되고..
남편과 함께 병원에 다녀온날.. 시아버님 첫마디.."태몽은 뭐였냐? 사내아이 꿈이겠지??" 하시더군요..
물론 갈색말이 등장했던 사내아이 태몽이 확실했었습니다만.. 꿈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결과도 모르는데.. 미리 희망을 줬다가 나중에 반대의 상황이 되면.. 더큰 실망, 책망을 감당할 수 없을것 같아서...

임신 4개월째.. 시아버님 표정이 심상찮았습니다.
다음날.. 낮부터 어디서 그리 많은 약주를 하고 오셨는지.. 유산끼가 있어 잘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저를 불러놓으시고 한시간이 넘도록 설교(?)를 하셨습니다.
용하다는 철학관을 다섯군데나 돌아보셨는데.. 하나같이 제 뱃속아이가 딸이라고 장담했다는 겁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어째 젊은 애들이.. 내가 그렇게 신신당부했건만.. 어른들한테 상의 한번 없이 덥썩 애를 가졌냐"시며...
전 너무 황당했습니다. 뭘 상의하라는건지.. 합방할 날짜를 상의하고 허락을 받으라는 소린지.. 너무 당황스럽고 속상하고 부끄럽고 창피하고.. 그냥 그자리에서 뛰쳐나오고만 싶었습니다.

다음날부터.. 하루도 편할날이 없었습니다.
다른 식구들 모르게.. 은밀하게 시작된 시아버님의 고단수의 괴롭힘을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임신 7개월째.. 하혈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선 조산기가 있다며.. 아이가 너무 작아 조산하게되면 사망할 확률이 90% 이상이라며.. 절대안정을 취해야한다고 했습니다.
울 남편.. 그렇게 서럽게 우는거 첨 봤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덤덤하게 얘기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왜 그동안 아무말 없었냐며.. 너무 가여워서 어떡하면 좋겠냐며... 이후로 울 남편 엄청 독해지더군요!
퇴원하는날부터 출산 한달전까지 친정집에 있었습니다. 남편의 배려루다가...

임신 9개월째.. 사내아이가 확실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기쁜 마음도 순간.. 야릇한 미소가 입가에 번졌습니다.
두고보자고..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2,600그람의 작은 사내아일 출산했습니다.
불어난 몸무게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아이였지만.. 그또한 스트레스가 과다했던 이유였지만..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를 내 아일 안고서야 제가 당당하게 맞설수 있게 되었다는걸 실감했습니다.

제아이 17개월...
제법 말귀를 알아듣고 좋고 싫은 표정을 할수 있게된 요즘...
사람을 유난히도 좋아하는 내 아들...
이상하게도.. 신기하리만치 시아버님 근처에도 가질 않으려고 합니다. 잘 놀다가도 시아버님이 안으려고 다가서면 파랗게 질려서 울어댑니다.

인과응보입니다.
뱃속 태아라고.. 엄마의 심정을 모를리 없습니다.
태교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게된 저로서는.. 그저 내 아이가 모난 성격을 지니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 되어주길 바랄뿐입니다. 부디.. 제 남편만 닮았음 좋겠습니다.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이제는 어느정도 희미해진 기억들이 떠올라 감상에 젖어 몇자 적어봤습니다.
요즘엔 어떻게 지내냐구요??
저두 만만찮은 성격의 소유잡니다.
아주 자~알 적응해 나가고 있습니다.
시아버님께서 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