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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나 나나 (떨어져사는 며느리)


BY 지나개나 2000-11-15

땅덩이가 좁은 나라니까 멀다는 말이 합당할 지 모르지만 때로는 '멀리' 때로는 '가깝게' 시댁에서 떨어져 살고 있답니다.

저의 시어머니는 한없이 좋으시다가도 우리 친정어머니 앞에서도 형님들 험담하실 정도로( 친정어머니 왈 식은땀이 나시더랍니다. ) 보통이상은 되는 시어머니시지만 혹 속상한 이야기를 들어도 돌아서면 잊어 버리니 맘은 편합니다.

우리 형님은 맞이에다 직장생활도 하셔서 그런지 씀씀이도 크고 인심도 좋으셔서 쓰지 않는 새 화장품도 아낌없이 주시고 가끔 제 직장으로 아이 선물을 부쳐 저에게 감동을 주시기도 합니다.

형님의 아이들은 장사하시던 어머니와 고모가 거의 키우다 시피 했고요. 결혼초에 그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았는지.

근데 형님도 나름대로 고생이 많으셨더군요.
가깝기는 하지만 따로 사시니까 퇴근하면 곧장 어머니댁으로 와서 가게 셔터내리고 물건 옮기는 것까지 도와드려야 했다더군요.

제가 아이 낳을 때 쯤 형님은 갑자기 어른들과 살림을 합치시더군요. 애들(6살, 8살)이 왔다갔다 하니 안정이 안된다는 것이지요.
친정 사정이 좋지 않아 애 낳으면 어머님께 산바라지 받을 거라 고 미리 말씀 드렸는데...

할 수 없이 저는 형님집에서 어머님께 산바라지를 받았고 형님은 어른들께 안방을 내 주셨는데 어머니는 그 방이 제일 따뜻하니 저에게 그 방을 잠시 내 주셨습니다.
졸지에 형님댁 안방에서 어머님이 끓여주시는 따뜻한 곡기를 받으며 호강하는 왕비(?)가 된 것이지요. 자식 많은 집 막내로 태어나 천대(?) 받던 나에게는 난생 처음 겪는 호사스러움이라 감격했더랬지요.

하지만 감격은 잠시- 형님과 어머니의 묘한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형님은 직장을 핑계로 귀가가 늦었고, 모든 집안 일은 어머님이 도맡아 하셨습니다. 게다가 제 산바라지까지...어머님이 계시는 날에는 한번도 형님이 식사 준비를 하지 않았으니까요. 돌변한 형님의 태도에 어머니는 눈물까지 흘리셨습니다.

한달이 채 안되어 저는 친정으로 아이를 안고 갔습니다.
혼자 밥 끓여 먹어도 엄마 곁이 편하지. 엄마는 몸이 안좋으셨거든요.

휴가가 끝나고 아이 맡길데가 없어 또 다시 형님댁에 아이를 맡기게 되었습니다.
어른들이 다 거기 계시고 아이도 있고 해서 형님댁에서 백일잔치를 하기로 했는데, 백일날 형님은 어머니를 통해 돈봉투만 전해주시고 친정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차라리 안 들었으면 좋을 말을 듣고 말았습니다. 형님이 백일잔치를 제 집에서 하지 왜 여기서 하냐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 어머님이 동서간 이간질 하시려고 이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다만 어머님의 살아오신 인심으로는 이해가 안되셔서 답답한 심정으로 제게 하신 말씀이겠지요. ) 또 한번은 저녁 드시다 아기가 안보여 찾으니 현관 밖에 유모차에 있더랍니다. 어머님이 저녁 준비하시는 동안 형님이 아기를 보느라 밖에 데리고 나갔다가 깜빡 잊고 두고 온 것이지요.

새로 장만한 아파트에 입주도 하게 되었고 해서 백일 갓 지난 아이를 데리고 와 먼 친척뻘 되는 집에 맡기게 되었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났나요. 퇴근 후 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기저귀를 갈고 나서 잠시 씻으려고 나간 사이에 그 집 남자애가 우리 딸 소중한 부분에 손가락을 넣고 있는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제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몰래 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나았지만...) 친척사이라 그 엄마에게 이야기도 못하고...

가슴이 떨려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혼자 살고 있는 친정 언니에게 고민을 털어 놓으니 하던 일을 그만 두고 내려와 주었습니다. 보수는 비교 안되게 적지만 조카 하나 바르게 키워보겠다고요... 그래서 지금껏 친정 언니와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IMF땜에 전세가 안나가 다시 옛집으로 돌아 오셔서 형님이랑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겉으로는 평온하게 살고 계십니다. 형님 아이들은 이제 학교 다니는데 고모가 근처로 이사가서 봐주고 있구요.

지금 생각하면 저의 철없고 눈치없는 행동에 눈앞이 아찔 합니다.
형님 좋다고 그저 믿고 치댔던 일... 어른들이 O.K면 만사 다 인줄 알았던 그 철없음에 형님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생각하니...

우와, 써 놓고 나니 너무 길어 죄송하네요. 읽어 주셔서 고맙구요.

신랑이라는 남자하나로 인해 좋은 일이든 싫은 일이든 얼기설기 얽혀 사는 우리네 시집살이.
그나마 다행인것은 피를 나눈 피붙이가 아니기에 때로는 아주 냉정하게 객관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지요.
형님도 어머니도 나도 같은 여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모든 문제가 조금은 정리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