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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우리 형님


BY 바부탱이 2000-12-18

난 바부탱이입니다.

도대체 왜 번번히 뒤통수를 받고도 뒤에서만 부글부글대는지.

결혼해서 한 명 있는 형님때문에 황당했던 이야기를 여기서 다 구구절절 할 수는 없지만, 난 지금도 형님이 밉다거나 하지는 않고 단지 제가 바보라는 생각밖에는 안듭니다.

평소에는 한달에 한번도 얼굴 보기 힘든 사람이 시댁에 자주 들락거리기 시작하면 며칠 후면 꼭 돈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년부터 힘들다 힘들다 하더니 올해부터는 생활비도 시댁에 안주고 오히려 이렇게 저렇게 돈을 가지고 가는 눈치입니다.
저는 애기 신발 하나 못 사주면서 이번 김장 경비를 다 댔습니다.
우리 형님, 저한테 아무 말도 없더니 시장 보러 다녀서 피곤하다고만 합니다.

명절 때나 애들 생일 때면 저는 꼭 조카들 선물도 챙기지요.
그리고 신랑이나 제 직장에서 들어오는 선물 같은 것도 꼭 시댁과 아주버님께 먼저 갖다드리구요.
우리 형님, 지금까지 우리 아이 백일 때 내복 한벌 사준 것 외에는 저희한테 김 한장 주지 않습니다.

또래들이라 조카들이랑 우리 아이랑 만나기만 하면 싸웁니다.
그럼 전 둘 한테 당한 것이 분해 눈물 뚝뚝 흘리는 우리 애한테 형아들한테 미안하다고 하라고 시킵니다. 속에서는 천불이 나더라도.
우리 형님, 자기 애들을 마구 두들겨 팹니다. 동생한테도 맞냐고...

조카들이 오면 저는 꼭 고급 과자나 치킨 같은걸 사가지고 갑니다.
제발 그것 먹고 우리 애 좀 괴롭히지 말라는 아부성도 있기는 하죠.
우리 형님, 지금까지 우리 애 껌 하나도 안 사옵니다.
오히려 가끔은 자기 애들 손에만 과자 하나씩 들려오더가 우리 애 보고는 깜빡했다고 하기도 하죠.

큰 조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게임기를 사달라고 해서 난 그냥 그러자고 했습니다. 근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온 식구들 앞에서 우리 형님 그 사실을 공표해버립니다.
전 그날 저녁에 신랑한테 혼났습니다. 10만원 가까이 하는 게임기 사주면 우리 아이 1000원짜리 장난감 하나라도 사줄 사람들이냐고. 나보고 바보 아니냐고...

후...쓰다보니 한숨이 다 납니다.

난 돈이 아까운 것도 아니고, 사람이 미운 것도 아닙니다.
그냥 가끔은 나도 '배려'라는 것을 받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하물며 죽을 때까지 가족으로 지낼 사람끼리 아주 작은 배려 정도는 서로 해줘야 하는게 아닐까요?

아무래도 전 바부탱입니다.
이래도 전 또 형님 밥 먹고 놀 동안 설겆이를 할겁니다.
그리고 시댁에 뭔 일 있으면 또 제가 먼저 달려갈거구요,
형님한테 빌려간 돈 주라는 말도 절대 먼저 못할겁니다.

나도 그냥 적당히 무시하고 살까 싶기도 하지만,
세상에 단 둘인 형제, 아주버님과 우리 신랑, 서로 소 닭보듯 하는 게 보기 싫어서라도 그게 잘 안됩니다.
뭐, 사람이 나빠서 그런게 아니고 그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좀 적을 뿐인걸요, 뭐.
그치만 가끔은 정말 멍하니...사람이 저럴 수도 있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