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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화가나서 미쳐버리기 일보직전임다..


BY 화평 2000-12-28

얘기들 들어줄래요?
난 결혼한지 5년만에 이혼하구 지금 11년째 살고있는 사람입니다.결혼할때 남편은 4살먹은 딸이 있었습니다. 내가 안 키우구 다른집에 입양이 되서 안 키워도 된다는 말을 믿고 결혼을 했는데 정말 단돈 10원도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난 그 사람이 똑똑하기에 사는덴 걱정이 없을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잘못된 생각은 결혼하자마자 벌어졌습니다. 동거부터 하자고 하는걸 나나 우리집에서는 그럴수 없다고 해서 남편 동생이 60만원 준것으로 결혼식을 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살집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거제도에 땅이 있는 분을 잘 알아서 그 곳으로 결혼하자마자 내려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결혼하기전 다니던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하고 가전제품 뜯지도 않고 팔아서 생활을 하면서도 매를맞기 시작했습니다. 자격지심이었는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한달도 안되서 앞이 보이더군요.그래서 도망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애가 생긴겁니다. 그런데 내가 기독교인이기에 애를 없애라는 남편의 말을 안 듣고 낳는다는 말을 했고 그 당시 내가 모르는 여자애를 만난것을알고 그 애 전화 번호를 지웠다는 이유로 거제도 산 꼭대기에서 작대기로 맞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말리지 않았다면 그때 아마두 애도지워지고 나도 지금의 나의 모습이 아니었을거란 생각도 듭니다. 그러면서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많이 아프고 우을증이 심했던나를 이핼 못하고 정기적으로 임신한 상태에서도 매을 맞았습니다. 그래서 나의 단순함으로 애를 남에 집에 떼어놓아 그런가보다 하고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4살먹은 여자애가 왔는데 내 인생 살이가넘 슬퍼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그걸 안 애 아빠가 엄청 때리더군요..
그때의 절망감이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그 산골짜기 거제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난 지옥같은 생활을 하던중 정말 살수가 없어 고향으로가자고 졸라서 인천으로 올라왔습니다. 올라와서 살 곳이 없어 친정에서 살다가 애 아빠가 방을 하나 얻어 월세방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정기적으로 매를 맞으면서 애 땜에 신앙땜에 이혼할수 없다는 자존심땜에 살았습니다. 어느날 매를 맞다가 실어증도 걸렸었고 그 상황에서도 애 아빠는 물을 끼엊으면서 또 때렸었습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정말 미칠것 같습니다. 아직도 그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 자신을 생각하면 한심합니다. 그러면서 살다가 시집식구들과 합쳐서 살게 되었습니다. 애 아빠가 하던 학원이 잘 되어 돈을 많이 벌었을때였는데 8식구살림을 혼자서 했었지요..
하루 밥상을 10번씩 차리고 빨래를 하루에 3번씩 세탁기를 돌려가면서 살았고 시누이들은 컵하나 안 닦고 빨래 한번 하지 않고 살았죠..
말로 다 할수 없는 삶을 살면서 우울증과 매 맞는 공포로 인해서 난 정신과치료를 받다가 애 아빠한테 당신이 싫다는말 한마디로 정말 눈뜨고 볼수 없을정도로 매를 맞았습니다. 거의 일주일동안을 일어 나지 못하고 있다가 그 집에서 살다가는 죽을것 같아 도망을 쳤습니다.그리고 나서 이혼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4일만에 집에 들어가 애 아빠한테 무릎꿇고 빌었습니다. 헤어져 달라고 아무것도 필요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 식구들은 아무것도 없이 살다가 살 만하니깐 날 버리듯했습니다. 돈 100만원받고 월세방 얻어서 애랑 살기 시작했는데 5살먹은 아들하고 살수가 없어 애를 두달만에 보내면서 한달을 밖에 안 나오고 방에서만 지냈습니다. 먹는것은 죽지 않을만큼 먹었구요..
매일 울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한달만에 나와서 일을 시작했고 2년이 다될즈음 애가 너무 보고싶고 해서 다시 결합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것이 나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 줄지는 몰랐습니다. 애 아빠는 그 동안 만났던 여자들을 정리를 하지 않았고 내 앞으로는 은행빚을 지고 말았습니다. 그러길 1년 조금 넘어 애 아빠는 다른 여자랑 살기 위해서 집을나가고 (다시 혼인신고는 하지 않고 1년넘게 살았슴;사는동안도 같이 사는 것도 아니었슴) 난 아들과 함께 다시 시작했습니다. 다시 헤어진지 벌써 7년이 되었네요..그런데 빚을 갚으면서 애랑 사는데 안 좋은일이 생겼습니다. 아들이 잘못하는 바람에 할머니 집으로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나의 의사와 아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가게 되었고 그러면서 그집과 내가 싸우는 일이 생겼고 자연스레 아들을 볼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몇년후 아들이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데 돈 좀 해 달라고 해서 아들 생각해서 돈들 해주었습니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땐 벌써 그 집에 돈이 두번째 보낸거였죠..난 그 집에서 한푼도 받지 않고 나왔던 때였습니다. 돈도 집에 안 가져왔던 애 아빠,(필요한것을 매일 타서썼습니다. 한달에 8식구 생활비 40만원정도) 여자를 너무 많이 바꿔서 누가 누군지 모를정도, 내가 낳지 않았던 애때문에 겪었던 일들(시누이들이 색안경쓰고 봤던 그 말을 할수 없는 일들), 종교가 맞지 않아서 엄청 많이 당한일들, 술을 거의 매일 먹는 애 아빠땜에 겪었던 일들, 엄청나게 정기적으로 매를 맞고 살았던 날들, 그 지옥같은 시간들이 아직도 안 끝났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합니다.
그러면서 난 애가 잘 크길 바라면서 기도하면서 살았는데 애가 유학간다고 했던 그날 부터 일년뒤 길에서 아들을 우연해 보게되었고 뒤로 알아본결과 애가 한달만에 호주에서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 사실을 난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있다고 애를 찾아갈수가 없었습니다. 그 집에 간다는것도 싫었고 애가 엄마를 다시 만나면 애가 맘을 못잡을것 같아서 혼자 열심히 살았습니다. 돈도 모아서 빌라지만 집도 마련을 했는데 어느날 아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거의 3년만에 본 아들은 키가 170정도가 되어 있었고 애 아빠네 집이 형편이 아주 어려워져서 애가 아주 비참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또 엄마랑 하루라도 빨리 살고 싶어해서 만난지 얼마 안되어 내가살고 있는 집으로 옮겨와서 지금 7개월째살고 있는데 문제는 그 집에서 애가 보고 싶다고 전화를 하고 (머리에 열리 오라서 미칠지경임) 혼자버는 형편이 좋지도 않은데 아들한테들어 가는 돈이 만만치 않은 형편입니다. 학원비에 옷도 하나도 없어 계속 사주고 있고 신발 가방 다 돈이 들어 가는 형편인데 그 상황에 작년 중학교 1학년때의 학비를 2기분이나 안 내서 내가 내야 하는 상황에서 이번달에 32만원이 들어 가는 일이 생겼고 몇일전 아들이 보고 싶다고 전화를 해서는 나의 속을 다 뒤집어 놓은 일이 있었습니다..자기들은 보고 싶다고 맘대로 전화를 하는 사람들 이해 할수가 없습니다..
나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아 터질것 같은 마음을 글로 옮겨 보았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아줌마들이여..어떻게 해야 이 상처난 억울한 마음을 없앨수 있을까요??
난 지금 내일 40을 바라보는 아줌마입니다...아들은 중2 15살이구요..
여기 사이트를 아는 동생이 알려주어서 글을 올려 봅니다..그럼 새해엔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