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번에도 신년을 우리 애들아빠와 좋지않게 시작했다.
배다른 동생3명, 이혼한 시어머니, 몸이 불편한 시누이, 그리고 돌아
가신 시아버지.....
처음 중매로 애들아빠를 소개받았을 때는 그냥 너무 편한 인상이였다.
중매가 그렇게 신속한 결혼으로 이어질줄 몰랐다. 결혼한날 폐백을
드리는데 동생들이라 절을 하란다. 그냥 그냥 아 동생들이구나(친척)
하는 정도였는데 처음 구정날 3명의 시동생이라나 하는 사람들이 어머
니 집으로 왔다. 처음엔 모두들에게 배신감 그런것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지금은 우리가 제사를 모셔 우리집으로 전화 한통 없이 3명중
2명의 식구들이(9명)마치 여행을 다니러온 것처럼 몰려들어 왔다.
가까이 있어 2시간이면 도착해 신정을 지내면 될것을 뭐가 이쁘다고
전날 부터 와서 질퍽되고 있는지 신정때 음식은 우리가 그냥 하는 것
이니 (3집 합해서 5만원 주길래 그랬더니 거침없이 내 그러죠, 또 하
나는 전에 제사때 내려오면서 우등고속표를 끊어 놓으라나, 정말로 어
처구니 없는 것들이다.)
제사때 오면서도 정종 작은것 한병, 가자 부수러기가 전부다. 그것도
부피큰 쵸코파이 등.....
그외에도 애들아빠가 첫째라는(나머니는 배다른동생)이유로 어떤 동생
선뵈일때는 오라고 해서 참석하고, 어떤 동생 결혼때는 깜빡잊고 형을
청첩장에서 뺐다는 소리를하고 정말로 착한건지, 우유부단한 애들아빠
가 한심스럽다. 언제까지 그 인간들을 보아야 하는지.
시어머니는 오래전 애들아빠가 태어나던 해에 시아버지와 합법적으로
이혼을 하시고 친정엄마와, 동생의 아들(조카)을 키우셨다.
애들아빠는 초등학교 2학년때 어떤 아줌마 2명이 찾아와 사진을 찍자며 했다는데 그 분이 바로 시어머니시다.
그 분은 내가 결혼한지 15년인데, 신혼여행갔다 와서 시집에 인사드리고 나오는데 매달 10만원씩 붙이라 하신다. 우리가 전세 얻는데
누나 돈을 썼다나, 그래서 그당시 우리 월급이 40만원... 너무도 부족한 생활이었다.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너무도 힘든시간이였다. 그런데도 그 분은 밍크 시리즈로 갖고 계시다( 블랙그라마, 잠바, 쇼울, 목더리, 모자 까지도) 우리가 월급장이로 입던옷 입고가면 옷이 그게 뭐냐 하시면 핀잔이 시작된다.
우리 시누는 어렸을때(어머니와 시아버지가 헤어질때) 척추성 결핵을
앓아 약간 등이 굽고 하지가 짧다. 같은 여자로서 불쌍한 시누이다.
시골 친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초등학교만 나와서 수예점을 해서
그래도 어느정도의 돈은 벌었지만 지금은 경기가 안좋아 조금 걱정이다
엄마가 너무 보고싶어 20살때 주소를 들고 이모집에 찾아 갔을때 이모
가 왜 찾아왔냐는 그 표정은 잊을 수 없단다. 얼마전 췌장암, 결핵
등으로 다시 고생을 했는데 지금은 완치되어 많이 행복하다.
정말로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사연의 집이다.
그외 다른 많은 일들이 애들아빠가 장남이라는 이유로 아직도 힘들게
하는 것이 많다. 애들 아빠는 자기집 이라 싫어도 감수해야 겠지만
난, 아직도 내가 모든일들을 포용하기엔 또 다른 강도로 많은 일들이
다가온다.
새해엔 좀더 좋은 일들과 좋은 생각으로 보내고 싶었는데 이방인들
때문에 너무 우울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