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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여자친구


BY 동틀무렵 2001-01-08

제가 속이 좁아서 그런건지.. 속이 상해서 글을 올립니다.

저희 부부는 대학교 때 같은 과 선후배였습니다. 일명 CC 커플이지요.
학교 때 부터 6년의 연애 끝에 어렵게 결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저희 집안의 반대가 워낙 완강했었거든요)

아무튼 제 남편 J에게는 과는 다르지만 같은 동아리였던 S라는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제 남편은 워낙 여자친구는 없는 편인데 그 언니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말을 하기도 하고 친하기도 하다기에 학교 때부터 저도 몇차례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제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이 늘 저보다 자기가 제 남편(당시에는 그저 남자친구였었죠)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제 남편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면 "그건 네가 J를 잘 몰라서 그러는데"라든지 "J는 내가 잘 아는데"라는 식으로 얘기하더군요. 물론 친구로서 그를 더 잘 아는 면도 있겠지만 그의 여자친구인 제 앞에서 그런 얘기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 아닌가요?

한참 후 그 언니가 결혼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제 남편과 친하다는 언니 결혼식인데다 남편될 사람이 또 저희 과 선배였기 때문에 저희는 함께 그 결혼식에 갔습니다. 그런데요, 그 언니는 제 남편을 발견하자마자 식장에서 자기 남편과 서 있었던 시간 외에는 제 남편에게서 떨어지려고를 하지 않는 것이었어요. 참 웃기지 않나요? 식장에 들어가기 전에도, 식을 마치고 나서 피로연에서도 제 남편 곁에만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저의 과잉반응이 아닌 것이 함께 갔던 다른 선배가 그러더라구요. 그 언니 보고. 너는 J(제 남편)가 니 남편이냐고. 남편 곁에 좀 가 있으라고. 그러니 제 기분이 어땠겠어요? 좀 너무한다 싶었지요. 그때도 아마 지금의 남편과 한참 싸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 언니 좀 심한거 아니냐고. 어쨌건 결혼한 사람이라 한동안 잊고 살았었죠.

한 석달이나 지났을까? 그 언니로부터 남편에게 연락이 왔는데, 자기 이혼하고 싶다고 하더랍니다. 결혼 잘못했다고. 도저히 못 살겠다고.
그 때는 저희 결혼하기 전이었으니까 친구한테 속풀이 하나보다 하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물론 기분은 별로였지만요.

저희가 결혼하고 나서도 두 사람은 연락을 했겠지요. 제가 다 알수는 없지만. 두 사람이 연락하는 것도 제가 신경쓰인다고 하면 너무 속 좁다 그러시겠지만 제 남편은요, 제가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가는 것도, 옛 남자동창들하고 전화 한 번 하는 것도 못하게 한답니다. 가정 주부가 왜 남자랑 전화를 하고 만나야 하냐는 거예요. 오죽하면 운전면허증을 딴 게 언젠데 남자 학원 강사는 안된다고 해서 아직도 이름뿐인 면허증을 가지고 있다니까요. 남편이 그런 걸 워낙 기분나빠하니까 저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정말 친구들과 연락 한 번을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조금쯤 억울한 마음 드는 걸 이해하시겠죠?

지난 주에 저는 요즘 유행하는 독감으로 심하게 앓았습니다. 두돌이 조금 지난 아들래미는 엄마가 아픈 걸 아는지 모르는지 하루 종일 놀아달라고 보채지요, 정말 몸은 아프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퇴근 시간 쯤 남편에게 전화가 왔더라구요. 오늘 친한 동료 몇 명이서 술을 한잔 하기로 했다나요? 제가 아프니까 변변한 저녁도 지어놓지 않았는데 차라리 잘 됐다 싶어 알았다고 했지요.
그런데 제가 몸이 아프니까 너무 늦지 말라고. 남편은 11시쯤 되어서 또 전화를 했더군요. 차 한잔만 딱 더 하고 들어간다고. 그가 돌아온건 12시가 다 되어서였구요, 그날따라 뭐라고 뭐라고 말이 많고 웬일로 아기 동화책도 읽어주고 그러더라구요. 조금 이상하다 싶었죠.

다음 날에는 책 한권을 들고 들어오데요, 저 읽어보라고 한 권 샀다나요? 그런데 그 책은 제 남편이 사들고 올만한 그런 책이 아니더라구요. 그리고 S언니네 얘길 하는 거예요. 걔네 되게 힘든가 보더라, 못 살겠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했더니 그 언니 남편한테 전화가 왔었다는 거예요. 근데 그 선배하고 저희 남편은 그렇게 썩 친한 사이가 아니거든요? 웬일로 그 선배가 전화를 다 했냐고 꼬치꼬치 물었더니 머쓱해 하면서 고백할 게 있다고 하더라구요. 자기 어제 그 언니를 만났었다구요. 그래서 어떻게 만났냐니까 그 언니가 자기 너무 힘들다고, 꼭 상의를 하고 싶은 게 있다고, 만나자고 그러더래요. 제 남편이 아니면 얘기할 수가 없는 얘기라고 하면서요.

그래서 회사 앞에서 만나서 우리 동네까지 남편 차를 타고 같이 와서 저녁 먹고 술 한잔 하고 차 한잔 마시고 들어온거래요. 그래서 무슨 얘기를 했냐니까 그 언니 곧 이혼할 거라고, 도저히 지금 이대로는 못산다고 남편 험담을 막 늘어놓더래요. 그래서 그 얘길 왜 당신을 불러서 하냐고 하니까 자기 밖에는 그런 얘길 할 사람이 없다고 부모님한테도 친구한테도 못하는 얘기고 오직 제 남편한테 밖에 얘기할 수가 없다고 한대요. 이게 말이 되나요? 또 그 언니네 집이 우리 집 근처라 집에까지 바래다 주고 왔대요.

제가 너무 과민한가요? 늘 저보다 제 남편을 잘 안다고 하는 그 언니, 힘든 상황인건 안된 일이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자친구가 한 명도 없는 건 아닐텐데.. 그것도 매일 못살겠다는 얘길 왜 제 남편을 잡고 하는건지..

남편은 그저 친구일 뿐이라 자기 밖에 상의할 사람이 없다길래 만났다고 하지만.. 글쎄요. 그런 얘기로 불러내는 언니나 만나는 남편이나 똑같이 미운 마음 뿐이네요.

주절주절 두서 없는 얘길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