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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속풀이나 좀....


BY greyman 2001-01-10

홀시아버님 모신지 9개월 된 6년차 주부네요.

이밤에 잠도 않오고, 입맛이 없어 오늘 점심저녁도 거르고, 살림도 하

기 귀찮고, 일 마치고 좀 앉았는데 커피달라 과일 달라는 남편도 밉고

사는게 그저 싫습니다. 이거 우울증 맞나요?


우리 아버님은 드라마나 주위에서 듣는 유별난 시아버지에 비하면 현

명하신 분이시네요. 예를 하나 들자면 며느리 싫어할까봐 속옷은 절

대 내어놓지 않으시지요. 깐깐하고 철없는 큰 며느리하고 5년을 사시

는 동안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하신것 같아요.


그런데... 속풀이 좀 하려구요.

우리 아버님은 드라마 광이십니다. 드라마 시간이 되면 식사도 제대

로 못하시고 드시던것 들고 방으로 들어가십니다. 하루종일 방에서 티

비보다 주무시고, 취미도 없으시고 친구도 없으십니다.

노인교실 같은걸 참 많이도 권해 드렸는데 그게 돈이 되냐 뭐가 되냐

며 그저 싫다십니다.

6살된 제 딸이 우리 할아버진 잠만보야 하더군요.


제 딸 야무지고 예쁜 아입니다. 하나뿐인 손녀딸 이쁠만도 하실텐데

살갑게 놀아주시지도 않습니다. 옆집 아줌마가 한번은 아버님이 제 딸

에게 '야,야'하고 무뚝뚝하게 부르는걸 듣고는 그렇게 하시게 하지 말

라고 하며 저보다 더 열받더군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힘든건 목욕을 안 하시는 겁니다. 제가 사우나 갈

때마다 모르는 척하고 같이 가자고 권해드려도 싫다십니다. 욕조있는

욕실도 혼자 쓰시는데 왜 그러시는지. 노인분들은 깔끔하게 하셔도 냄

새나는거 어쩔수 없는 일인데, 목욕조차 안하시니 그 냄새 때문에 정

말 미칠지경입니다. 그래서 자동분사되는 향기제품을 사다놓았더니 칙

칙하는 소리가 싫다며 치우라시네요. 심하실땐 앉으시는 변기에 때가

더덕더덕 묻어납니다. 땀을 많이 흘리시면 더 그렇게 되시는것 같더라

구요. 욕실 청소할 때마다 그저 미치고 싶습니다.

한번은 현장을 남편에게 보여주며 제발 같이 사우나에 모시고 가라고

부탁을 했지만 그게 참 말씀드리기 민감한 부분이라 아직까지도 그저

그러고 있네요.

남편에게 자꾸 말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같아서, 그냥 마지막으로 이랬

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아버님 모시는거 신나고 즐겁진 않지만 좋은

마음으로 하려 한다고, 하지만, 내가 지금 아버님을 좋아하는 마음이

100 이라면 욕실 청소할때마다 그 마음이 점점 줄어든다고.


제 친정어머닌 29에 혼자되셔서 저희 자매 키우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

셨습니다. 저흰 신혼초에도 엄마 집에서 같이 살았고, 직장때문에 분

가하긴 했지만 나중에 엄마 모시며 같이 살리라 했었고 그렇게 될줄

알았습니다.

시아버님 모시게 되었다니 엄마가 농담처럼 그러시더군요.

나중에 늙어 힘없고 쓸쓸해지면 너랑 같이 살려고 했는데 이제 갈데

가 없구나. 하며 웃으시더라구요.

저는 금방 목이 메어서 그날 밤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이런 마음 만으로도 충분이 가슴이 막막한데 이런 어려운 사정이 있다

보니 정말 힘듭니다. 이젠 집안 대소사까지 다 제게 떠넘겨 지기까지.

제 선배가 이런건 자꾸 가슴에서 풀어내야 한다고 하네요. 아는 사람

에게 할 얘기도 못되고. 그래 두서없이 속풀이 했습니다.

가슴이 좀 후련해질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