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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맨날 놀아서 좋겠다.


BY hstljh 2001-03-06

초등학교 2학년인 큰아들이 어제 잠자리에서 이런 얘길 하더군요.
"엄마, 여자랑 남자랑 왜 똑같이 공부하는데 남자들은 커서 아빠처럼
직장 다니면서 일하는데 여자들은 집에서 놀아."라구요.
가끔 학교가기 싫을때 "엄마는 집에서 놀아서 좋겠다"라구 얘기할땐 "그래, 엄마는 집에서 노니까 좋다."라고 받아넘겼었는데 어제는 좀 심각해지더라구요.

큰아이 낳고 일년후에 다니던 직장에 복직해서 직장생활 가정생활 충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직장에 다니기도 했지만 아이 하나만 낳아 잘 키워보자는 생각이 아이가 커가면서 우리부부 세상떠난후 아이혼자 세상에 남겨질것을 생각하니 안됐어서 작은아이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정말 단순히 큰아이 동기간 만들어주려는 마음으로 노산에도 불구하고 6년 터울로 씩씩하게
둘째아이 낳았습니다.

경상도 남자의 대표인 우리남편, 저 직장 다닐때 손톱까딱 안하면서
집안의 행사나 아이가 아플때마다 어김없이 하는말 "회사 그만둬"
5년을 꿋꿋이 버티다 둘째아이 출산과 만성피로를 등에지고 퇴직했습니다.

꿈은 원대했습니다.
나도 아침이면 된장찌게 보글보글 끓여서 남편먹이고 그렇게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던 아이와 하루종일 놀아주고 가르치며 이젠 좀 가정답게 살아봐야지.

그랬습니다.
아이가 하나일때와 둘일때의 차이가 엄청납니다.
집안이 꽉찬듯한 느낌이 들고,이런게 가정이구나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큰아이 처음 며칠 아침에 눈뜨면 "엄마 정말 회사 안가도 돼."라고
물으면 세상에서 가장 인자한 엄마의 얼굴로 "그럼! 엄마 인제 회사 안가."라고 대답해주고 된장찌게도 끓였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났습니다.
여자벌이 쥐벌이라고 제 월급 무시했지만 맞벌이로 집 대출금 다갚고
저축한 돈도 조금있어 돈걱정은 안하고 살지만, 요즘 남편은 가끔 '이제 애도 둘인데 내월급만가지고 애들 가르치겠어."라고 말하고, 가슴아파하며 키우던 큰아이는 엄마는 집에서 할일없이 노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직장다닐때 키우던 큰아이는 엄마와 그렇게 떨어지기 싫어해 가슴을
찢어놓더니 둘째아이는 가까이 사시는 외할머니가 이뻐하셔서
기쁨조(?)로 아침에 남편출근할때 외가에 보내면 하루종일 잘 놉니다.

봄을 알리는 봄비는 촉촉히 내리는데 제마음은 찬바람 매서운 겨울로
돌아가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