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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 그때를 돌아보니 지금의 내 모습은...아~ 봄이 왔구나.


BY 예쁜이 아빠 2001-04-01

밤 10시 둘째 아들이 전화가 왔다.
아빠 나 집에 들어왔어.
그래 알았어.

어제는 밤 9시 반경 큰애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금 00 이 들어 왔어요.
그래 혼내지 말고 밥 좀 먹여

누군가 세월이 약이라고 하더니만
이젠 집이라도 들어오니 다행이라 생각한다.
1시면 끝나는 수업이지만...

매일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에게 묻는다.
오늘 학교에서 밥 많이 먹었어?
응! 오늘은 세 그릇이나 먹었어.
왜, 오늘은 뭐가 나왔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이 많이 나왔어.
그래 많이 먹어. 많이 먹고 튼튼해야지.
많이 야위어진 그들
막내는 그래도 밤에 나를 안고 잔다.나도 걔를 안고 잠을 청하지만
슬픔은 어쩔 수가 없다.

아침이면 샌드위치나 콘프레이크에 그러하니 점심급식이라도
잘 먹어야지...
어느 날 아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생선찌개 냄새가
나를 슬프게 한다.
단 한번도 해주지 못하는 찌개나 국거리.
핑계? 남자라서?


지난 여름
묵호에서 배를 탔다.
휴가철.
배안에는 가득 찬 사람들
그러나 배는 바람에 출렁이고 모두가 배멀미에 난리다.
그러나 나는 애엄마를 찾는다는 기쁨과,고통에 배멀미를 하지 않는다.
그 긴 시간 대부분이 다 하는데....
정신은 오직 한가지에 집착하다보니...

울릉도
내가 태어나서 처음 와보는 곳
맑다.
선착장에서 지프택시를 타고 애엄마가 채팅으로 만난 그 총각의 본가로 향한다.
꾸불꾸불 언덕에 높은 산을 지나 그곳에 도착했다.

그 총각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이 계셨다.
그 날밤 그 총각 할머니 부모님과 식사를 한다.
술을 곁들여서
우리 일행이 일곱명
할머니나 부모님 착한 사람들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 집의 장손인 그 친구와 애엄마가 인터넷 채팅으로
만나 집을 나가 이곳까지 찾아 나선 것이다.
서울에서 울릉도까지...

그 날밤 방이 두개인 그 집에서
며칠 전 애엄마와 그 아들이 같이 잤던 그 방에서 나는 우리아들
셋과 잠을 잔다.
기가 막힌 내 운명에 새벽2시쯤 밖으로 나서니 바닷바람과 파도소리만이 나를 맞는다.
멀리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이 밝다.

다음 날 애들은 바닷가에 즐겁게 놀고 멀리서 바라보는 나.
그 날 오후 울릉도를 떠나 그 친구가 산다는 포항으로 나왔다.
밤 7시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나는 멍한 정신에 내 가방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사진 켐코더 녹음기 주소록 수첩 애들 옷 기저귀 등등..

밤9시경
그 친구 자취방으로 향한다.
나는 차안에서 빌었다.
그렇게 찾아 헤맸던 나는 제발 애엄마가 그곳에 없었으면 바랬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누군가에게
연락을 받고 도망가고 없었다.

방.
보지 말아야 했을 방
듣지 말아야 했을 주인아주머님의 얘기.
옆방 세 사는 아가씨의 말. 말. 말들.

아!
그 방 모습.
장모님의 허탈한 모습.

며칠 전 둘이서 싸우더니 대문밖에 나가 애엄마를 두들겨 패더라는 말
그 날밤 애엄마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말.

현실.
내 눈앞에 펼쳐진 그 현실이 나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이미 슬픔 고통은 없고 초연해진 내 모습을 보았다.

며칠 후 8월24일 충격으로 잠모님은 식물인간이 되고 만다.
지금까지도....

밤마다 나는 온갖 상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며
왜 나는 이런 고통을 느껴야 하는지
왜 나는 애엄마를 그토록 찾아야 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다.

사랑?
정?
무너지는 내 삶?

오늘
술을 한잔 먹다보니 글을 쓴다.
이제는 글을 쓰는 것조차도 힘들다.
아주머니만 있는 이곳에 내가 괜히 오해나 받지 않을까?
아니면 비웃음을 당하지 않을까?
단지 지금 이 순간에도 애엄마가 그 총각의 가슴에 묻혀 있는 것을 상상하면
아~~~~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같이 나누기 위해서....
아니 바보 같은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