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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고 싶다


BY 찰리 2001-05-01

아침에 보니 큰 애 먹을 것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이제 두 돌을 넘겼는데, 동생을 보더니 한 달짜리 우유 먹을 때마다 함께 먹는 통에 하루종일 젖병을 물고 삽니다.
노동절이고 오늘 집에서 쉬는 날이니 장을 보러가자고 했죠. 혼자서 한 달짜리랑을 데리고 장을 볼 수가 없어서요. 그러자고 하더군요.

그리고 왠일로 친절하게도 큰 애 낮잠 재우다 잠든 나를 깨우지도 않고 두 시간동안 작은 애를 안고 보더라구요. 물론 그냥 안고 있었던거지만요.

제가 일어나고 나서 교대로 잔다고 해서 그러라구 했죠. 6시가 넘어서야 일어나 할인점으로 장을 보러갔습니다. 작은 애는 가까이 사시는 시댁에 맡기고요. 한 시간쯤 장을 보고, 시댁에서 저녁먹기 무섭게 친구랑 게임하러 간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12시까지 여기 있을래, 지금 갈래하고 묻더군요. 가겠다고 했죠. 손빨래 할 아이 옷가지며, 장난감도 치워야 하고.... 그랬더니 제가 열쇠를 안 가져온 걸 탓하는 겁니다. 결국 데려다 주면서 내려놓고 그냥 가더라구요. 저는 큰 애 우유랑 고기, 쥬스등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큰 애 손을 잡고, 작은 애는 안고 혼자 올라왔지요. 현관 열쇠만 삐죽하니 주는 남편이 얼마나 미운지...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갔다가 애 데려다 놓고 내려가는 게 10분이 걸리는 것도 아닌데...

애 둘을 키우는 동안 혼자 아이 목욕시킨 적이 없습니다. 아이가 우유를 얼마나 먹는지도 모르구요. 응가를 해도 못 씻어주고 아파서 자는 저를 깨우는 게 보통이구요. 작은 애를 낳고나서는 뻔히 잠 못 자고 시달리는 거 알면서도 저 혼자 애들 재우고 젖병 삶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널고, 청소하고, 다림질하는거 보면서 누워서 텔레비젼을 보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이나 12시전에 들어올까? 들어와서 자기 바쁘고, 요즘엔 아침에 아이들에게 뽀뽀도 안 하고 나가기 일쑤고... 당연히 부부간의 대화는 있을 수가 없죠. 요즘에는 회사 동료인 여사원과 일주일에 두 세번은 쪽지를 주고 받고 있더군요. 둘의 관계를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메일을 보내면 생전에 싸우지 않고서는 답장도 안쓰는 사람이 그렇게 자주 꽃이 지네, 주말 잘 보내시게 하면서 소식을 전하는 걸 보면 솔직히 같잖습니다. 그런 거에 연연해하는 나도 싫구요.

요즘은 아예 혼자 살면 남편 치닥거리는 안 해도 좋으니 더 편할것 같네요. 그냥 애들이랑 살고 싶은 생각도 들구...

정말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조금만 더 고생하면 우린 애들 다 키운다는 오늘 그 사람 하는 말을 듣고 걱정이 되더군요. 애들 다 키운다음에 서로 정 떨어지고 싫어지면 어떻게 하나...

밖에서는 가정적이고 다정한 사람같은데, 왜 자기 집에서는 못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도망가고 싶어요.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지 아이에게 손 올리는 일도 잦구요. 아직 철이 들려면 먼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