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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에게 기댄다는건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


BY 미류나무 2001-05-04

누가 누구에게 기댄다는건 참 피곤하다.
나자신은 없고,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전폭적으로 기대하고 기대고...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능력없는 시아버지는 우리 남편, 당신의 둘째 아들에게 전폭적으로 기대고, 우리 시어머니는 아들들에게 당신의 인생을 맡기고..
우리 친정엄마는 외아들에게 기대고, 그래서 그 외아들의 말 한마디에 웃고, 울고..
나는 남편에게 기대고..

나자신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다른 사람에게 기대려니...기대에 조금만 못미치면, 울고불고 난리가 나고.
기대에 부응하자니, 등골이 휘어 나가고.

우리 시집, 전재산 0원.
지금 사는 임대아파트 보증금 우리 신랑이 해드린것.
그도 그럴것이 남편이 자기 돈으로 전세집얻어 무일푼인 부모님과 같이 살았는데, 결혼하면서 따로 살려고, 그러자니 부모님 사실 곳이 없고, 미리부터 준비해 두었던 임대아파트 보증금 해드린거다.
다른 아들들 뒷짐지고 부모님은 나 모른다하고, 자기네 50평짜리 아파트 빚도 없이 사가지고 들어갈 때, 우리 신랑 시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돈벌어 드리고 장가 제일 늦게 가면서 임대아파트 보증금 대출받아 해 드리고, 대학졸업하고 10년동안 회사다녀 겨우 모은돈 3000만원으로 우리 신혼살림 시작했다.

그러니, 시부모님의 기대는 다연히 우리 신랑.
재산 0 원인 우리 시부모님, 다른 아들들에게는 기대하는게 없다.
오직 아들은 우리 신랑 뿐이고, 심지어는 나 결혼하고, 첫 제사때...나보고 맏며느리 하란다. 난 엄연히 둘째며느리구만.
고거이 무슨소리냐면, 제사 나보고 물려받고, 시부모 봉양 잘하고, 당신들은 둘째만 바라보고 살고 있으니, 나보고 둘째며느리다 생각말고 난 이집안의 맏며늘이다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뜻이었지.

내 남편, 말없이 시부모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살았지만, 결혼하고 보니 속으로 피멍이 들었더구만.
나이 36에 장가가면서, 것도 대기업 10년근무하면서..것도 절대 낭비하지 않고 검소한 사람이 딱! 3000만원 모아놓고, 시집에 해 준 대출금 1500만원이 있었으니...


우리 친정엄마.
외아들인 우리 오빠한테 목숨 건다.
오빠가 조금 냉정하게 대하면, 당장 나한테 전화온다. 섭섭해서.
울고..
오빠가 조금 잘해 드리면, 목소리가 낭랑하게 나한테 전화한다. 하늘을 지를듯한 그 목소리!
오빠가 엄마 인생의 전부같다.
답답한 노릇이다.

우리 시부모님.
아들한테 바라는거 많다.
결혼하고, 첫제사 때, 우리 시아버지 나 앉혀놓고, 일장 연설을 하셨다.
둘째는 나하고 제일 가까운 아들이니, 그리 알라는 것.
아들이 변하면 다 내 탓이라는것.
당신들 인생 책임 지라는 것.
어머니, 옆에서 손뼉치시며 맞장 뜬다.
우리 인생, 책임지라고.

나 그날 먹은거 다 체하고..숨이 목에 걸려 죽는 줄 알았다.
숨통 터지는 일이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져야지...왜 남보고 자기 인생을 책임지라고 하나.

나..우리 남편에게 기댄다.
남편이 잘해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벌에 막~~뽀뽀해주고 싶다가, 남편이 좀 무심하면 세상에 저런 도둑*이 없는거 같다.
내 인생은 점점 어디로 날아가고, 남편의 한마디에 이리흔들 저리 흔들..이런 내 모습이 정말 싫다.

내 남편, 자기 하나 바라보는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아 어깨가 무거워 점점 말라가는 사람이다.
워낙에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라, 말은 도통 안하지만, 얼굴에 시름이 가득하다.
눈동자 8개가 애처로운 눈으로 내 남편만 바라보고 있다.
내 눈 2개, 우리 딸눈 2개, 우리 시부모님 눈 4개.
거기다 때때로 시부모님이 필요하다는 돈 해 주기 싫은 자기들끼리 비터지게 배부른 형, 형수눈 4개까지..
때??로, 형이 뭐 좀 안해주나...기대하고 바라는 망나니 시동생 눈 2개까지.

묵묵히 그 눈초리 받아들이면서 사는 내 남편, 가엾고 불쌍하다.

시어머니 관절이 아프시다고, 필요하면 수술 받고 싶다고 전화 하셨다.
그 말은 수술비를 대라는 말씀이시다.
남편, 묵묵히 듣고 있다가 전화 끊더니 한숨한번 길~게 내쉰다.

우리 엄마.
아들이 남편인줄 아나..아프다고 말했는데, 아들 반응이 없다고 또 울고.
아프다고 할 때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냥 듣고만 있으면 되는거 아닌가? 병원도 혼자 잘 다니시면서, 아무 말없이 듣고만 있다고, 섭섭하다고 훌쩍거리신다.
어디가 아프냐, 많이 아프냐, 어디 좀 보자, 병원에 가자...이렇게 호들갑을 떨어야 좋으신 모양인데...

내 인생 내가 책임지고, 내 인생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하고, 나만의 할 일을 찾아야 하고, 누구한테 기대지 않고 당당히 살아야 하는데, 나도 내 남편에게 기대고 살고 있으니..나도 싫고, 내 남편은 무슨 죄란 말인고.

우리 오빠는 또 무슨 죄란 말인고.

아~ 내 남편 불쌍하다.

시댁에서 먼곳으로 발령받아 온지 3년.. 내 남편 그동안 말한마디 없다가 이 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한마디 했다.
자기집 문제에서 멀리 떨어져 나온게 이렇게 사람 홀가분하게 만들줄 은 몰랐다고...

자기도 힘이 들었다는 거지. 그동안.
부모니, 몰라라 할 수 는 없고, 하자니...여태껏 그렇게 하자니, 힘들었다는거지 말은 안했어도.

그러니 우리 오빠도 같은 심정이겠지.

이런말, 우리 시어머니, 우리 친정엄마가 들으면, 그러시겠지..그래서 우리보고 빨리 죽으라는거냐????

그건 아니다.
그냥 답답해서...그런다. 오래오래 사셔야지...진심으로 바란다.
근데, 현실이 그냥 답답해서.

아~나도 정신적으로 독립해서 살아야하는데.
남편 턱밑에서 남편만 바라보고, 남편말 한마디에 죽고 살고 하면서 살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 남편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나라면, 내 턱밑에 여러명이 이렇게 나만 바라보고 있다면, 난 단 하루도 못견딜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