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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생활 5년이면 이런가요...


BY honey 2001-06-13

그냥, 요즘 사는게 신나지가 않아서요.
이런게 권태기인가 싶기도 하고, 남편하고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선배님들의 조언을 좀 구하고 싶어서요.
이제 결혼 5년째이고 5살, 3살된 두 딸이 있습니다.
남편하고는 같은 모임에 있다 만났구요.
결혼 전엔 주변 사람 모두 제가 결혼같은 건 하지 않을 거라고들 생각했죠. 저 스스로도, 이렇게 빨리 결혼해서 나이 서른에 두아이 끼고 다닐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으니까요.
어쨌든 그런 말하는 애들이 더 빨리 시집간다는 통설대로
졸업하고 1년 조금 뒤에 결혼했구요. 첫아이가 2달만에 생겨서
사회생활도 많이는 못했습니다. 악바리처럼 버텼어야 했는데
체력이 영 딸려서 힘들더군요. 첫아이 낳고 7개월만에 둘째가 생겨서
지금까지 오는 동안 정신없이 아이만 키웠죠.
남편은 보통의 평범한 남자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진부하지도, 고루하지도, 우월적이지도, 권위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책임감이 없지도 않고, 성실한데다가 유머감각도 좋습니다.
시댁 어른들도 너무 좋구요.
고부간의 갈등이니, 시집살이니 하는말은 거리가 아주 멀죠.
친정아버지가 워낙 가부장적인 분이셔서 그런 것에 질려 있던 터라
남편과는 친구처럼, 동료처럼, 선배처럼, 애인처럼 살면서
보기좋게 늙어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결혼 결심하는데도 갈등이니 고민같은건 없었죠.
모든 것이 너무 순탄해서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니까요.
그런데, 5년이 지난는 지금은...
겉으로는 아무문제가 없습니다. 큰 소리로 싸울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양쪽집에 갈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도 고마울 정도로 잘
커주고 있고...그런데...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이 안드는 군요.
분명 한방에서 자고, 아침이면 얼굴 마주치고, 가끔은 밥도 같이 먹는데 부부라서 생기는 그런 끈끈한 정같은게 느껴지질 않습니다.
지금까지, 아이문제로 몇번 다투기는 했지만, 그정도는 어느 부부나
다 그렇지 않나요?
남편은 아이들에게 그다지 섬세하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아빠를 극도로 필요로 할때만 응해 줄 뿐 제가 두 아이 데리고 동동거릴 때도 부탁하기 전까지 꼼짝도 않했었습니다.
가사는 둘째치고 아이들 문제에 대해서만이라고 반의 책임은 다 해야 하지 않냐는 문제로 다투기도 했었는데, 문제의 원인을 찾는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죠. 집에 있는 시간이 워낙 적으니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런 거였습니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몰라서.
문제를 알고 나니 해결 방법이야 뭐..
그런데, 그런 문제로 몇번 다투고 나서 모르던 남편의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냉소적이고, 직설적이더군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말로 받는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잖아요.
제가 아이들때문에 힘들어 하면, '너 혼자 애 키우냐' 이렇게 말해버립니다. 제대로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위로는 못해줄 망정...
그런 일이 몇번 정도 쌓이다 보니, 소원해 지더군요.

최근 며칠동안은 더위를 타는지 두통약으로 버틴적이 있습니다.
아침시간에도 어지러워서 못일어 나고 누워만 있었는데
한 마디 말도 없이 출근하더군요.
저는 또 성격상 아프니까 봐달라고 응석도 못부립니다.(남편과 저는 3살 차이 입니다)

지금, 제일 속상한 것은..
왜 남편과 내가 이런 상태로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 저에게는 4년 정도 사귄 친구가 있었습니다.
같은 모임에 있던 친구라 주변 사람들은 모두 당연히 제가 그 친구와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고, 그도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우린 동갑이었고, 아니 그 친구가 햇수가 바뀌게 몇달 느렸죠.
그는 지나치게 친구같았습니다. 그 가벼움에 전 실망했고 오묘한 시점에 선배같고 자상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사랑이란게 뭔지 그때서야 알았죠.
우린, 정말 사랑했습니다.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정도였죠.
그 친구와 주변사람들...친구로서 동료로서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는데도 다 잃어도 좋을 정도로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왜 이렇게 변한걸까요..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제가 사치스런 고민을 하고 있나요?
그런 생각도듭니다. 남편은 직업이 PD 입니다.
상대적으로 단조롭고 지루하기도 한 내 생활과 내 모습이 싫어지는게
아닐까...헌데, 그보다 더 슬픈일은 제 마음이 냉정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어떻든 간에...
아이들에게 서로 사랑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도 보여주고 싶고,
남편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만 하며 지내고 싶은데..
마음이 자꾸만 닫힙니다.
이 길의 끝은 뭘까..불안하기도 하구요.

그래도, 두서없지만 쓰고 나니 홀가분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