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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뭐냐구요.


BY 맹탕 2001-06-16

아무것도 아니라고 칠 수도 있을 일에 속이 상해 몇 자 적습니다.

우리 집에서 제일 1순위로 돌봐야 할 사람은 4살짜리 아들이 아니라 바로 남편입니다. 뭔 소리냐구요?
바로 우리 시어머니 기준이죠.

저희는 시댁과 불과 10분 거리에 살면서 아이를 시댁에 맡기는 맞벌이 부부죠. 평소엔 정말 난 복 받았다고 생각하고 삽니다. 시댁에서 아이를 봐 주시는 것도 그렇고, 시댁이 가까워서 가끔 아침, 저녁을 때울 수 있는 것도 그렇고, 시부모님 수더분하셔서 별로 감정 상할 일 없는 것도 그렇고.

근데 한번씩 속이 뒤집히는건, 아직도 한 가정의 가장인 남편을 그저 당신들의 철없는 아들로 보는 시부모님의 시선 때문입니다.

우리 어머니, 아무리 말썽부려도 당신 손주 엉덩이 한대 못 때리게 하시는 분입니다. 근데, 그런 귀한 손주도 당신 아들(제 남편이죠)한테 업히기라도 하면, "우리 아들 힘들게 하는 못된 손주새끼"가 되는건 시간문제죠. 그럼 저한테 업히면요? 그 땐 그냥 "엄마 힘든데..."하고는 그만이시구요.

반찬을 하셔도 늘 남편 입맛에 맞는 것만 하시구요,
날이면 날마다 술 마시고 들어오는 남편 때문에 같이 맞벌이로 힘들면서도 남편 양복이야, 와이셔츠야, 아이 때문에 힘들어하는 저한테, 당신 아들 스트레스 안 받게 잘 받아주고, 아침 저녁으로 꿀물 대령하라고 하십니다. 그럼, 전 직장에서 스트레스 안받고 안피곤한가요?

아이가 말썽을 부리면, 당신 아들은 클 때 그렇게 순했는데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죠. 물론 별로 악의는 없으신 분이라 그냥 웃으면서 하는 말씀이시지만, 그런 소리도 한두번이죠.

서른도 훨씬 넘긴 당신 아들은 아직도 맘이 약하고, 순해빠진 사람이고, 집에만 들어오면 맘을 탁 놓아버려서 아무데서나 곯아떨어지는 사람이니, 마음이 강하고 의지력 강한 제가 다 받아주고 챙겨줘야 하는 줄 아시는 분이시죠.

처음엔, 그저 좋으신 분들이라 같이 남편 흉보고 그랬는데, 요즘은 슬슬 짜증이 납니다. 전 남편을 돌보기 위해 결혼한게 아니라, 남편의 돌봄을 받고 싶은 여자인데 말이죠, 왜 절 당신 아들의 보호자 취급을 하실까요?

그리고 그런 어머니한테 짜증난다고 하면서도 가만히 보면 아직도 부모님 앞에서는 초등학생 아이처럼 투정부리는 우리 남편도 갈수록 꼴보기 싫어집니다. 본인은 그게 효도라고 하더군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화가 납니다.

이런 것쯤이야, 다른 님들의 크고 작은 일들에 비하면 속상할 거리도 아니겠지만, 그냥 퇴근무렵이 되서 또 혼자 아이 데리려 갈 생각을 하니 울적해져서 몇 자 적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