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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유증..그리고 회의..


BY 계절탓 2001-09-11

추석이 다가 오네요.
예전에 티비에서 보면 여자들이 추석이면 스트레스로 소화불량이나 두통..뭐 이런거에 시달린다고 하잖아요.
전 그런 얘기 들을적마다 시댁에서 일하면 좀 피곤하긴 하지만 뭐 저 정도냐 싶었어요.
그런데 얼마전 시가에 시어머니 생신이라 갔었지요.
식구들끼리 저녁에 갈비를 먹으러 갔습니다.
음식 먹는 도중에 아버님께서.. 다들 이렇게 어머님 생신 챙겨주고, 그래서 고맙다고 그러시더라구요.
그랬더니 옆에 있던 큰사위가 그러더군요.
어이구, 당연한 걸 가지고 뭘 그러세요.
아버님 말씀 하실적마다 각본이라도 짠 거 처럼 둘이서 감사하고 당연하고..뭐 이러는데 씁쓸하더라구요.
-지금 사정상 시어른들을 맏이인 저희가 아닌 바로 아래 시누가 모시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걸 모신다고 해야 할지 딸 뒤치덕거리 한다고 해야 할지..참 애매하네요.
여기다 그 말까지 하려면 너무 길어질거 같아서 대충 생략하구요.
제사도 시누집에서 치루고,그일로 서방님네 내외는 아예 처음부터 삐뚤어지고...
정말 부끄럽네요.
이런 말 하려니...
좌우지간 그래요.
전 맏며늘이라지만 나이도 젤루 어리고,의무는 의무대로 늘 맘이 불편해요. 그래도 어른들 마주하면 불편한 심기 드러내기 어렵고 해서 울 며늘들 늘 웃잖아요.
저도 그렇거든요.
저희 아직 식도 못 올리고, 월세 산다는 이유로 저희집에서 제사도 못 지내고 시누네집으로 가서 명절마다 제사 지내고,....
작년인가부터는 아버님이 노골적으로 제사 모셔 가라고 하시더라구요.
아무말도 못했어요.
그 앞에선 정말 울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도 못했어요.
왜 울고 싶었냐구요.
제가 나이 어리다고 ..친정아버지가 안 계시다고 이 설움 당하고 사나 싶기도 해서요.
아이가 다섯살인데, 식도 못 올리고 남편 나이가 좀 있으면 마흔인데 전세도 아니고 월세방에 살려니 더 비참하고....
남편은 남편대로 그나마 적은 봉급에서 자기 용돈 챙기고 월급 가져다 주는것도 얄밉고,...
아이는 자꾸 크는데 전 어찌해야 하나 늘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우린 맏이인데 왜 의무만 짊어지고,없는 살림이더라도 맏이는 늘 손을 펴고 있어야 집안이 평안하다라고 하시는 시어머님도 야속하고...
그나마 등돌린 작은 아들..큰 아들도 행여나 등 돌릴세라 울 아들은 그럴리 없어 하시며 절 경계하시고,...
전 정말 바보에 대책없는 여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 이 남자에게 왔을까?
나이도 많고, 맏아들에,재혼까지 한 남자에게...
연애할적에 나이도 속였고, 재혼한 사실도 지금의 시가에 들락거리고 나서야 알았는데,왜 그때 단호히 끊질 못했는지 너무 한심스럽습니다. 내가 선택했으니 제가 모든걸 감수해야 한단걸 알지만 요즘같은때는 정말 너무 힘들어요.
시어머니 생신 보내고 집에 돌아와선 얼마간 너무 아팠습니다.
병원에 다니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나도 이제 속절없는 아줌마가 되나 보다 라는....
명절이 다가오면 두통에 시달리고, 시가에 들러 먹은 음식으로 고생하는 제 자신이 너무 속물스러워 보입니다.
이렇게 밖에 될 수 없는건가요?
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