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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울지 않을려고 주저리주저리 씁니다.


BY 울보 2001-09-13

저는 막내로 자라서 그런지, 결혼전엔 집에 혼자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가끔 부모님이 계시지 않더라도 언니나 오빠가 같이 있었으니까 그럴 기회가 없었지요.
그런데, 요즘 2개월째 남편이 없이 혼자 지냅니다.
주말엔 남편이 올라와서 같이 있다가 다시 지방으로 출장을 가지요.
결혼하고 처음에 혼자자게 되었을때는 무서워서 밤을 꼬박 세웠습니다. 아침6시가 되는 것을 보고 잠을 잤었으니까요.
그리고 두번째는 마루 쇼파에서 잤습니다. 안방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워서...그리고 누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나면 바로 소리지르려고...
그러다가 계속 반복이 되니까 요즘은 저녁때쯤에 안방에 들어가서 자다가 새벽쯤에 일어나서 밤을 셉니다.
조금씩 대담해지고 있지요.
가끔 친정언니가 와서 자줄때도 있고, 시어머니가 며칠 계시다가 갈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도 없습니다. 두사람 모두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외면당한 기분입니다. 물론 이유야 있겠지만...
앞으로 며칠만 이렇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좋겠지만, 앞으로도 3달은 족히 그래야합니다.
저도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 오후에 퇴근을 해서 집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때면 늘 한번에 못들어옵니다. 혹시 도둑이 우리집에 있으면, 도망갈 시간을 줄려고 한참 소리도 요란하게 내고 천천히 들어옵니다.
그리고도 집에들어와서 한동안은 집안의 여기저기 조심스럽게 쳐다봅니다. 나갈때하고 똑같은지... 그나마 아이의 방(지금은 빈방인 상태)은 무서워서 방문을 열어보질 못합니다.
제가 남들보다 더 무서움을 많이 탄다는 것은 압니다.
남들보다 더 눈물도 많고... 한마디로 아직 철이 없지요.
무늬만 엄마지 아직 엄마다운 어른스러움이 없는것은 압니다.

남편은 참 착한 사람입니다. 고집이 약간 센것 말고는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제 일도 적극 도와주고 많이 이해해주는 편입니다.
남편은 회사와 야간대학원을 같이 다니느라고 무척 시간이 없고 몸이 지칠겁니다. 남편이 회사에서 하는 일을 잘 할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혼자 집에 있는 내가 너무 서러워서 메일로 막 뭐라고 화를 냈습니다. 아마 지방에 내려가서 일하면서도 손에 잘 안잡힐겁니다.
조금전에도 전화가 왔는데, 자꾸 눈물이 나와서 받을수가 없었습니다.

죄없는 남편한테 그러면 안되는거 아는데...
남편이 신경안쓰고 일만 할수 있도록 도와줘야하는데...

근데, 제가 잘 조절이 되질 않습니다.

집에 혼자 있는것이 저한텐 너무 스트레스입니다.
저는 강의를 하고 있는데, 내일 강의준비를 밤세워서 해야하는 상황인데도 책이 눈에 들어오질 않고 있습니다. 눈은 퉁퉁부어서 글씨가 촛점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다 울었다고 세수하고 진정하자고 해도 한번 터진 눈물보는 그칠줄을 모릅니다.

제가 참 바보스럽고 못나서 싫습니다.
남편한테 힘이 되어주고 싶은데, 자꾸 약한 모습만 보입니다.
여기서 더 울면 내일 출근할때 지장이 있는데...
이제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을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마 제가 이해안가실 거예요. 저희 친정에서도 혼자자는 것이 뭐가 무섭냐고 걱정도 하지 않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남편이 어리광을 너무 많이 받아줘서 갈수록 태산이라고...
전, 진짜로 심각한데...

저도 멋진 직장여성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기일에 충실하고, 자기중심적이고, 자신감있고...자꾸 의존적인 여자가 되는거 같아서 혼자 주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혼자 있는 편하고 자유스러운 시간들을 멋지게 설계해보자고 마음속으로 다지고 있습니다. 책도 많이 보고, 공부도 많이하고...
머릿속으로는 알찬 계획들로 가득한데,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더라구요.

그래도 이렇게 쓰다보니 조금 진정이 됩니다.
이제 정말로 커피한잔 하고 공부를 할려고 합니다.
저도 미래를 설계하는 멋진 아줌마가 되기 위해서...
너무 남편한테 의존적인 답답한 아내가 되지 않기위해서...
제가 할수 있을까요? 할수 있을겁니다. 다른 대책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