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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되신 아버지


BY 퉁퉁이 2001-09-17

내일 모레면 벌써 친정엄마 49제입니다.

불볕 더위에 상 치르면서 더운줄도 몰랐는데, 어느새 가을이군요.
전 요즘 주말마다 친정에 갑니다.
직장생활하는데, 주말마다 집을 비우니 집이 말이 아니지요.
하지만, 아무리 집이 어질러진다해도 제 속만 하겠습니까.
시어머니도 처음엔 다녀오라고 하시더니, 요즘은 그냥 모른척 하십니다. 저도 일일히 고하고 다니기 눈치보여서 그냥 아무말도 않죠.

그동안 저희 형제들과 이모들이 번갈아가며 아버지 수발을 들었는데, 이제 한달이 조금 넘은 지금, 벌써들 모두 지쳐가나봅니다.
저 역시 주말마다 제살림 팽개치고, 시댁 눈치보면서 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주말이 되면 만사 다 팽겨치고 마음이 친정으로 달리죠.
혼자된 아버지가 빨래는 어떻게 하시는지, 입맛 없으셔도 그냥 따로 드시기 불편해서 그냥 저냥 식사를 하시는 건 아닌지...
친정 아버지 쳐진 어깨를 보고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눈물입니다.

처음엔, 친정 엄마 산소에 가도 그냥, 흙이 무너지지 않는지, 그런 것만 보게 되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저 안에 우리 엄마 누워계시는구나..이제 영영 다시 우리 곁으로 안오시는구나...싶으면 가슴이 터질것만 같습니다.
제가 막내딸이라서 그럴까요? 유난히 제가 다른 사람들 맘까지 심란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곤 합니다.

이제 49제를 치르고, 정말 엄마의 영혼을 영영 저 세상으로 보내드리고 나면, 혼자되신 아버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철없는 동생 내외는 벌써부터 투닥거리는 것 같고, 딸들이 있어봤자 모두 큰며느리들에다, 작은 며느리인 전 거의 실제적인 외며느리같은 신세라서 도저히 아버지를 모실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버지 연세가 젊고 건강하시니 재혼을 권유하더군요. 하지만, 그건 엄마도 잃고 아버지도 잃어버리는 일 같아서 도저히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물론, 아버지가 혼자서 멍하니 앉아계시는 모습을 뵈거나,
혼자서 옷이랑 양말을 챙겨 신으시고 외출하시는 뒷모습을 뵐 때면,
차라리 얼른 엄마를 잊고 좋은 분 만나셔서 사시라고 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언니들이나 친척분들은 당연히 며느리 몫으로 생각하고 혼자인 올케에게 부담을 지우려 하지만, 같은 며느리 입장으로서 그것도 참 못할 일이다 싶어서, 올케가 맘에 안들게 행동해도 뭐라고 나무라지도 못하겠더군요.
오죽 답답하면, 어젠 제가 남편에게 물었죠.
주말에는 무조건 친정에 간다는 조건으로 시댁으로 들어갈까...하고 말이죠. 주중에는 시부모님께 잘하고, 주말에라도 친정아빠 곁에서 보살펴 드릴 수 있으면 맘이 편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죠.
하지만, 그것도 해결책은 아니겠죠.

매번 느끼는 거지만, 자식들 많아봤자 아무 소용 없지 싶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두배우자가 오래 오래 해로하는 것이 제일 행복한 것 같습니다.

딸자식도 자식인데, 이렇게 친정일에 신경쓰는 것까지도 왜 시댁 눈치를 봐야하는 건지 속이 상하네요. 물론 우리 시부모님 아무 말씀도 않으시지만, 그래도 괜히 제가 더 눈치를 보는 것이 속상합니다.

시부모님께도 살아 생전에 후회없이 잘 모셔야겠다...싶으면서도, 자꾸 마음은 친정으로만 달려가네요.
마음 같아서는 제가 직장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제가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싶습니다. 살림도 잘 못하고, 음식도 못하지만, 아무래도 딸인데 제가 편하지 않으시겠어요?

누구한테 속이야기도 못하고 혼자 그냥 참고 계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대성통곡이 나옵니다.
그리고 먼저가신 엄마가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네요.
그렇게 금슬 좋게 사시더니,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기어이 명줄을 놓지 않으셨어야지, 그렇게 허망하게 가시다니요.

정말 속이 상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