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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사나 몰라.


BY 아이구 2001-09-29

추석이라고 귀성하는 행렬을 보니 부럽기가 그지없다.
나도 저 긴 행렬속에 끼여 봤으면.
시집에 가서 일을 하더라도 한 번 가봤으면...
명절때마다 텔레비전 편성표 챙겨서 텔레비전만 보는 나.
남들이 들으면 정말 팔자좋다고 말할 나.
음식장만을 하나, 시집 식구들 잔소리를 듣나. 내가 생각해도 팔자가 좋은가 싶기도 하다.

울 남편, 명절이면 더 바쁜 일을 하는 사람이라 추석전에 이미 시집에 혼자서 다녀왔다.
돈도 거금으로 200이나 드리고 왔다.
나한테 생활비는 눈꼽만큼 주면서..
나, 나는 시엄니가 오지 말라고 해서 지난 6년동안 한번도 못가봤다.
나만 보면 열이 오른다는 우리 시엄니.
나는 시엄니 전화 목소리만 들어도 부들부들 떤다.
그러니 오지 말라는 소리에 가지 않는다.
내가 뭐가 아쉬워서.
하긴 시엄니 이해한다.
애도 못 낳는대는 며느리 볼려는 시엄니 없을 테니까.
그래도 서운하다.
매달 생활비에 기념일은 꼬박꼬박 돈 받아가시면서 며느리는 싫다니 이제는 할말도 없지만 화가 난다.
돈이나 적게 가져가나.
분수도 모르고 마구 요구해서 현금서비스를 받더라도 돈은 달라시니 남편이 죽을 지경이다.
그래도 아들이라고 꼬박꼬박 잘 드린다.
나한테 한 번 그래 줘봐라.

오늘도 현관문밖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남편이 나를 데리고 나갈때만 현관문밖을 벗어난다.
친구도 못 만나고, 예전 직장 동료들도 못보고, 친정식구 본지도 한참이다.
남편이 같이 가줘야 가는데 가줄 생각을 않는다.
친정근방까지 가서도 친정에 들러보지 않는 남편.
덕분에 친정엄마는 내 얼굴 잊어먹었단다.
활달해서, 너무 활달해서 내가 좋다던 남편은 결혼후에 나를 집안에 가둬놓고 키운다.
쇼핑은 인터넷으로, 반찬거리는 닷새마다 남편이랑 시골장으로 간다.
내 외출은 딱 이것뿐이다.
그렇다고 돈이 후하나.
한달 50만원의 생활비.
보험이랑 통신비 내고 나면 30만원 남는데 그 돈으로 가게에 가서 먹을 도시락까지 날마다 싸주어야 한다.
죽을 맛이다.
그러면서도 울 남편은 생색이다.
'세상에 너만큼 편한 여자가 어딨냐? 시어머니 시중을 드나. 아이가 있어 속을 썩이나. 내가 술 담배를 하나. 집에 가만히면 있으면 세상풍파도 모르고 안전하게 살 수 있으니 니 팔자가 상팔자다'
속으로 말한다.
'그래. 내 팔자가 상팔자다. 니가 한번 갇혀 살아봐라'
인터넷만 가지고 노니까 친구나 형제자매들과도 메일로만 연락한다.
그러다가 일전에 친구랑(남녀공학 고등학교라 남자친구도 있음)연락한 메일을 보고 노발대발.
메일 내용에 '밥은 잘 먹고 잘 지내니? 남편은 잘 해주니?'라는 문구에 간통고소하는 사람이 울 남편이었다.
나중에 취하를 하기 했지만, 덕분에 그 많던 고교 동창들이 모두 떨어져 나가버렸다.
울 남편이 그렇다니 모두들 간통죄로 고소당할까봐 내게는 연락도 안한다.
하다못해 동창회를 한다해도 여자친구들조차 내게 오라고 않는다.
이런. 씨...

오늘도 가게에서 전화했다.
아니, 하루에 일곱 여덟번은 전화한다.
데려다놓은 애완동물이 집에 잘 있나 싶어서.
나, 잘 지낸다.
그런데 사람이 그립다.
전화를 쓰면 요금 많이 나온다고 잔소리라 전화도 잘 못한다.
그래서 나는 내게 전화해주는 사람이 가장 반갑다.
(시엄니와 남편만 빼고)
친구나 친정식구들이 전화하면 나는 죽자고 늘어지며 통화를 한다.
혼자서 놀아보니 너무 심심하다.
극장을 가본지도 10년(결혼한지 10년이니까), 놀이동산 가본지도 예전.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놀아본지도 10년.
친정식구들과 윷놀이해본지도 10년.

이제 세상 사는것에 등신이 다 되어 버린 이 기분.
그 기분으로 올 추석도 지낸다.
남편은 내리 닷새 가게에서만 지내고, 나는 이 집에서 인터넷만 하겠지.
정말 내가 왜 사나 몰라.

저거 엄마한테는 돈도 많이 드리면서 내 친정에는 5만원짜리 선물세트 하나를 택배로 부티는 그 성의.
너무 눈물겨워서 절이라도 하고 싶다.
너무 심심하고 허전하고,.....
추석도 싫고, 남편도 싫고, 내가 사는 것도 싫고.
방법이 없는 이 삶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