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452

11년도 넘는 동안...


BY hje4478 2001-10-22

1990년 3월식 차를 폐차하려고 폐차장 견인차가 이제 막 주차장을 떠나 갔어요.
여유없이 시작한 결혼생활에 처음 장만한 차였지요.
이젠 제법 살 만 해져서 바꾸자고 여러번 졸랐었지만, 그때마다 남편은 이렇게 엔진소리 좋은 차 봤냐고, 마누라보다 더 정이 들었다고 , 돈이 있어도 설 때까진 안 바꾼다고 했었죠.
큰 아이가 90년 5월생이니까, 이 차가 더 형님인 셈이었지요.
10월 초에 아이들 학교 재량 휴업일 때 놀러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구룡령에서 오토바이랑 부딪혔는데, 오토바이는 멀쩡하고 우리 차만 무지 불쌍하게 구겨졌어요.
왜 있지요? 수천만원 하는 오토바이, 동호인들이 무리지어 타고 다니는...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고 상대방도 과실을 인정해서 수리비를 보상해 주기로 하고, 현장 수습이 되었지요.
서울에 돌아와서 카쎈타에 물어보니 이렇게 많이 망가진 차는 자기들은 견적을 못 낸다네요. 공업사에 연락 해서 나온 견적이 120만원.
남편은 오토바이 주인에게 연락했더니, 너무 비싸다고 깎아 달라고 했대요.
제 남편은 남들이 법없으면 못 살 사람이라고, 법이 꼭 지켜주어야만 할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순하고 착한 사람인지라, 바쁘기도 하고 여러 말 하기도 싫어서 그럼 반만 내라고 했대요. 그 오토바이맨은 한 술 더떠서 10만원만 더 깎아달라고 했고 제 남편은 또 그러라고 했다네요.
정말 답답하지요? 혹시 바보가 아닌가 싶었어요. 요즘 시대에 조금만 접촉사고가 나도 온가족이 입원들 하고 난린데.
달달 볶으며 따졌더니 지금 당장은 아니었지만 바꿀 계획이 있었던 찬데 그래도 50만원이나 생겼다고, 보험 가액은 27만원밖에 아니라나...
이래저래 폐차할 수 밖에 없는 상태라 아이들에게도 차에 있는 짐도 치우고 작별인사하라고 했더니 정이 많이 들었는지, 눈물 날 것 같다고들 하고. 어찌 지 애비하고 똑같은지...
아침에 학교 보내놓고 폐차장에 전화했더니, 즉각 달려왔네요.
견인차에 매달려 끌려가는 차를 보니까요, 글쎄 저도 눈물이 나려하지뭐예요? 두 아이를 낳을 때마다 병원에서 데려와주고, 11년 넘도록 온갖 곳에 다 데려다준 고마운 차를 저는 똥차라고 무지 갈궜거든요.
폐차장에서 고철값이라고 2만원 주더군요. 그돈으로 저녁때 남편이랑 맥주라도 마실까해요.
제 명줄이 다한 줄도 모르고 끌려가던 것이 주인에게 목까지 축이게 해주는군요.
마음이 오늘 새벽공기처럼 차갑기만해서 올립니다.
다들 차 깨끗이 오래오래 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