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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노력은 가상 하지만 내 맘은...


BY 자비 2001-10-26

결혼한지 2년차 입니다.
신랑과 저는 대학원에 다니면서 만나 결혼까지 했습니다.
죽도록 사랑해서 결혼한건 아니고, 속이 깊어보이고, 또 성실해서 밀어주면 가능성이 있어 보였습니다.
내놓아라는 집안에 아들을 둔 아주머니들이 눈독을 들였지만, 왠지 마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결혼하라는 엄마의 성화에 사귄지 몇개월 뒤 상견례를 하고 날을 잡았습니다. (딸 혼자두고 여행다니시다가 사고라도 나면 고아아닌 고아 될까봐 항상 걱정이었음)
울 부모님 딸래미 아끼는 마음에 38평 아파트 사주시고, 잡지에 나오는 집처럼 꾸미는데 아까워 하지 않으시고 비상금까지 챙겨 주시더군요. (참고로 우리 부모님 자신은 무척 검소하다고 소문이 자자함)
저는 시집에 현물로 (사철)이불세트를 최고급으로 하고, 현금으로 천만원 드렸습니다. (외아들이라 섭섭해하신다고...)
물론 신랑패물, 양복, 한복 등등 소소한 것들까지도 아낌없이 해주셨습니다.
저는 현금으로만 천육백만원 받았습니다. (시누이 적금깨다고함... 하지만 말이 왔다갔다함. 해놓고 사시는것을 보면 절대 못사는게 아님)
저희 시누이들 난리난리 났다더군요.
자신들은 자기가 벌어서 시집가는데 오빠는 패물값 왜 부모님이 주냐고...
`사' 자 신랑이냐구요?
어림반푼어치도 없습니다.
아직 직장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는 도중에 방2칸 부엌1칸 조그마한 전셋집 구해주신다는 말과 어려우면 도와주신신다는 말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남자가 하는 사소한것 까지 저희 집에서 부담했지만 우리신랑 한술 더 떠서 `다른 사람들은 신혼 여행경비 반반씩 부담한다더라'하며 실망시키고 의구심이 생기게 하더군요.
물론 우리신랑 말 아닐껍니다.
그런거 잘 모릅디다.

어쨌던 결혼 했습니다.
신혼여행가면서 섭섭했던 맘 다 날려버렸습니다.
이틀에 한번씩 전화드리고, 빈 손으로 절대 가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백화점이라도 갈때면 얼마하진 않지만 시어머니 생각나서 선물도 사드리고...

그런데 문제는 집들이 때부터였죠.
딸은 식구끼리 먹었지만, 아들이어서 친척들을 다 불러야 한다 하시더군요.(친척 엄청많음)
눈 앞이 깜깜했지만 그땐 갓 시집온 새색시라 싫은 내색 한번 못했죠.
물론 해야할 음식까지 은근 슬쩍지정해 주시더라구요.
좀 너무한다 싶었지만 `그래 아들 장가 잘 들었다고 자랑하고 싶은게지. 기 한번 살려주지 뭐' 라고 좋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당연히 친정엄마가 도와 준다고 생각했는지 전화 한통화 없더라구요.
우리 친정에서만 전화 불통 났었습니다. (어찌하고 있나 걱정이 되서)
하지만 부모님 근처에도 못 오게 했습니다.
죽이되던 밥이되던 혼자 한다고...
시집식구 먹을 음식 엄마가 할 필요 없다고...
울 엄마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딸 의리는 있다'했다더군요.
어쨌던 완벽하게 준비하고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시작이더군요.
부모님 선에서 끝낼 수 있는 경조사에 무조건 아들을 앞장세울려고 하셨습니다.
물론 제가 빠질 수 있나요.
며늘이란 자리가 중압감으로 다가왔습니다.
한 번 어긋나기 시작하니 온갖 것들이 다 섭섭 하더군요.
한 번은 신랑 통장을 우연히 들여다보았는데, 결혼전 벌었던 돈이 다 빠져나갔더군요.(어머니가 관리한다 하였는데...)
아들 앞으로 온 부조금(우리가 갚아야할)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정이 있어 밑반찬 하나 챙겨주지 않으셨답니다.
첫 생일상도 못받아보고...
대접 받을땐 아들 귀한 줄 알고, 베풀 땐 딸보다도 못한 남남이었습니다.
한번은 부모님 중 한 분이 먼저 돌아가시면 어차피 며늘이꺼 미리 가져가라 하더이다.
저 그 소리듣고 먹다 체해서 죽다 살았습니다.

시집간 딸 연년생 아이를 가지자 마음이 아팠던지 집 옆으로 이사시켜 아이 둘 봐주는 모양이더군요.
울 시누 내가 지레 겁먹고 아이 낳으면 당신엄마가 봐 줄까봐 괜히 엄마가 한 시간도 봐주지 않는다. 아이는 엄마가 봐야 제일 좋다 등등 압력아닌 압력을 가하더군요.
시어머니도 내가 뭐라하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몸이 아파 못 봐준다 하시더라구요.

이런 저런 이유로 신랑하고만 많이 싸웠습니다.
결혼이란것이 이런 것이엇으면 친구들처럼 의사나 변호사 아님 부잣집에 시집갈껄 하고 후회가 되더이다.
신랑도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팔은 안으로 굽는지 자신은 맏이고 아들이라 할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맏며늘이란 중압감이 제일 힘들었는가 봅니다.
저보고 희생이라 생각지 말고 자비를 베풀어라고 괘변을 해서 기가 막혀 웃었습니다.
받은것이 있어야 베풀지요.
아들은 배아파 낳고 딸은 하늘에서 떨어졌습니까?
신랑은 싸움후에 어느 순간은 달라진 것 같다가도 또 시간이 흐르면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평생 갈까 두려웠습니다.

밥먹듯이 이혼하자하고 끊임없이 투쟁한 결과 지금 신랑 무척 노력합니다.
집안일도 곧잘하고, 친정부모님께도 싹싹하게 대합니다.
권위적인 생각도 많이 변한것 같습니다.
제가봐도 안쓰럽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많이 틀어져서 그런지 지금은 잘 싸우지 않지만 예전 같지 않습니다.
언제 되풀이 될 지 몰라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은연중에 미운 마음이 뿌리깊게 박혀나 봅니다.
아직도 꿈에서는 이혼한다고 난리입니다.
신랑에게 불신감이 생겨 아이 가지기가 두렵군요.
저는 딸을 낳으면 없는 집 맏며늘에겐 절대 보내지 않을 겁니다.

저보다 정말 힘든 분들도 많은데 이런 글 쓰게 되어 죄송합니다 결혼이라는게 만만치가 않아 하소연 해 보았습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