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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바람을 폈다 2


BY 속상해 2001-11-03

그저께 그 일이 있은 후..
어제 하루종일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앞으로 서로에게 잘 해야겠다는 생각부터, 이 남자가 정말 죄를 뉘우치고 있을까, 또 이렇게 일 무마시키고 또 딴 짓을 하는것 아닐까..
기타등등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아이가 잠이 들고 컴을 켰다.
그런데..
거기서 또 중요한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남편이 그 여자에게 쓴 대량의 메일을 찾아 읽어볼 수 있었다.
남편.. 나한테 근래에 들어서 그냥 잠깐 사랑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었다.
그 전에는 일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다고 했었다.
내가 지난 달에도, 지지난 달에도 의심하는 목소리로 물었을때..
전혀 아니라고 했었고, 그저께 그 얘기를 다시 물으니 그 때는 정말 아니었다고 했었다.
그런데.. 7월 초부터 구구절절 사랑한다는 얘기가 도배되어 있는 메일을 보낸것이다.
어찌 그 메일을 봤는지는 묻지 말라!
남의 메일을 훔쳐 보는것은 나쁜 일이니까..
그 여자가 메일을 휴지통에 버리고 휴지통비우기를 하지 않은게 실수였다.
하여튼.. 난 다 보고 말았다.
온 몸이 떨렸다..

그저께 나랑 얘기하면서..
자기가 잘못은 했지만 결혼 생활이 힘들었다는둥 내 핑계를 대 가며 이혼하자고 먼저 수작을 하던 남자..
내가 아이보고 참으며 노력하자 했더니 자기 부모님 모시고 살자고 하던 남자..
그 소리를 들었던 것이 너무 억울했다.
남편이 들어오자마자 난 몰아부쳤다.

어제 끝난 얘긴데 왜 또 하냐고 그런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일은 다 정리를 했는데 왜 또 하냐고 한다.
난 너무 억울하다고.. 니가 잘못을 했는데 왜 내가 이렇게 마음 고생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넌 왜 그렇게 뻣뻣하게 잘못했다고 말을 하냐고 소리질렀다.
자기가 어떻게 해야 되겠냐고 묻는다..
무릎을 꿇고 빌으라고.. 아주 잘못했다는 표정으로 사죄하라고 했다.
하지 못하겠는지.. 자존심이 상했는지..
자기 그냥 간통으로 들어갈테니까 집안에 알리자고 한다.
그렇게 쎄게 나가면 내가 아니라고 할 줄 알았나보다.

내가 더 큰소리로 말을 했다.
그러자고.. 일단은 간통으로 들어가려면 그 여자도 같이 가야하니까..
그 여자한테 물어보고, 그 부모한테 다 얘기를 해야겠다고..
그 여자한테 누구가 당신이랑 같이 간통죄로 들어간다고 큰소리 치는데 같이 들어갈꺼냐고 물어본다고..
수화기를 들었다..
남편은 내가 그렇게 나올줄을 몰랐나보다. 주춤한다.

내가 다시 말했다..
전화를 할까, 무릎을 꿇을래...
자기가 무릎 꿇고 사죄하면 다 잊어 줄꺼냐고 그런다.
그렇다고 했다.
남편이 무릎을 꿇었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고 몸을 떤다.
아마 태어나서 가장 처음 겪는 수치일꺼다.
울 시어머니.. 남편과의 정이 없어 아들을 왕자처럼 키우셨으니까...
그렇지만 그 수치심이.. 내가 겪었던 마음의 고생과 무너져버린 자존심, 배반감에 비할 수나 있을까.....?

잘못했다고 한다...
그 여자한테 한 것의 몇배나 나한테 잘해야 마음이 풀어질것 같다고 했다.
알았다고 한다...
그 여자한테 사랑한다고 속삭였단 만큼 나한테 속삭이라도 했다.
알았다고 한다...
우리 가정이 행복해 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알았다고 한다...
니가 나한테 잘해야만.. 시부모한테 몇 배 더 잘 할 수 있다고 했다.
알았다고 한다...

남편이 샤워하러 들어갔다.
샤워기 물소리에.. 간혹 코푸는 소리가 들리는것을 보니까 울고 있나보다.
내가 이렇게 독하리란걸 몰랐겠지..
아니, 난 참 마음이 여린 편이다. 결혼전 엄마가 항상 그것때문에 걱정을 하셨다.
툭하면 잘 우니까.. 시부모때문에 얼마나 많이 울까 하고..
지금껏 시부모 때문에 참 많이도 울었다. 시누이들 때문에도 많이 울었다.
남편이 조금만 섭섭하게 해도 말은 못하고 눈물부터 나왔었다.
그저께도 남편과 얘기를 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어제는 눈물 한 방울 안나왔다.
내가 많이 독했졌나보다.
남편에게 그리 심하게 하면서도 눈물이 안나오다니..
이런 내를 보고 남편도 무섭겠지만.. 나도 무섭다.
환경이 사람을 이렇게 변화시키나 보다.

오늘 아침이 되었다.
아침이 되니까.. 이제 긴장이 풀렸는지...
새벽녘에 마루에 나와서 앉았는데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됐나 생각하니까 더 많이 나온다.
한참을 울고 있는데 남편이 나왔다.
내 인생 다시 돌려 달라고... 나 행복하게 해 달라고 그랬다..
내가 빨리 그 일을 잊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그 여자랑 빨리 정리를 해 달라고 했다...
우리 남편이 말한다..
자긴 독한 놈이라 정리는 빨리 할 수 있다고..

그저께부터 오늘까지..
신경을 극대로 쓰고 있고, 많이 울고, 먹지도 못했더니..
기운이 없다.
몸무게가 이틀만에 3키로가 빠졌다.
이제 기운을 좀 차려야겠다.
나도 남편한테 한 약속을 지켜야지..
의심하는 마음을 버리도록 스스로 최면을 걸어야겠다.
내일은 시댁엘 간다.
다음주에 둘째 시누이 결혼식이다.
그것때문에 시모가 예민해져 계시다.
몸도 많이 안좋으시다고 한다.
표정관리가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서 시어머니 마음 좀 풀어 드리고 와야겠다.

우리에겐 또 여러차례의 일이 있을것이다.
시누이 결혼때문에 보류되어 있는일...
둘째 아이 낳는 문제와 시댁과 합치는 문제...
시누이 결혼 끝나면 우리한테 매일 그 타령이실텐데 정말 걱정이다.
남편.. 정자수가 모자라서 지금 상태로는 불임이란다.
시어머니 아시면 남편 데리고 우리나라 좋은 병원에 다 다니며 검사를 하실거다.
그 성격에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아니면 나한테 인공수정을 권할지도 모른다.
그런 스트레스 또 다 받아야겠지...
그럴때 힘들어하는 나를 남편이 얼마나 위로를 해 줄지는 모르겠다.
지금 상태로는 시댁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내가 죽을 지경이니까..

우리 애 지금 4살이다.
몸이 아프게 태어나서 몇차례의 수술도 받았다.
태어날때 기형이 있어서 축하받지 못하는 출산을 했다.
말도 느려서 언어치료도 받으러 다닌다.
우리 시부모.. 자신들도 정상적인 손주를 안고 싶으신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은 나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손주 앞에 놓고 어른들 입에서 나올 소린가 하고 말이다.
친정부모님도 그 소리엔 너무 기막혀 하신다.
아이를 위해서.. 아이가 외로우니까 하나 더 낳으라고 좋게 말을해야지..
어찌 당신들을 위해서 낳으라는 말씀을 하실까..
휴.. 내 생활에 대해서 다 말을 하려면 정말 끝이 없다.
그건 결혼 생활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럴테지만..

이제.. 난 나부터 챙기기로 했다..
내가 살아야.. 내가 행복해야 우리 아이도 행복할테니까..
뭔가 시작할 생각이다.
시댁에 들어가는건 그 차후의 문제로 접어 둘것이다.
난 대학 졸업하고 바로 결혼을 해서 사회 경험이 없다.
간간히 과외를 해 주곤 했었지만.. 지금은 그나마도 자신이 없다.
친정 엄마가 나의 이런 심정을 아시는지.. 엄마라서 그런지 내가 말을 안해도 느낌으로 아시는것 같다.
아이 엄마가 봐 줄테니까 하고 싶은것 있으면 하라고 그러셨다.
엄마가 도와 주겠다고 하셨다..

내가 새로운 삶을 찾고, 행복해지면 또 글을 올릴것이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 졌다고...........
그때는 행복한 나.. 이렇게 글이 올려지겠지..
그럴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지금.. 너무 지긋지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