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637

아줌마는 무엇으로 사는가?


BY 은술잔 2001-11-15

아침부터 그동안 밀려두었던 손빨랫거리 하고
아이들이 겨울신발로 갈아 신으면서 벗어둔
운동화 몇 켤레 빨아놓고
화분을 모두 목욕탕에 갔다놓고 샤워기로 물주고
어제 사다논 알타리무 다듬어 절여놓고
츄리닝 차림으로 빵집에 뛰어가 아이들 간식거리 사다놓고
작은아이 오자마자 같이 점심먹고
목감기로 고생하는 아이 데리고 병원 다녀오고
오는 길에 시장과 문구점에 들려
필요한 것 사들고오고
아이 숙제 봐주고 준비물 챙겨놓고
피아노학원보내고 들어와서는
아침과 점심에 먹은 설거지 해놓고
커피 한잔 타서는 신문 대충 훑어보고
큰아이 집에 오자마자 간식주고는 학원보내고
그 아이 갈때 지저분한 계단 청소하고
다시 들어와 목욕탕에 있던 화분들 제자리에 갔다놓고, 물청소하고
알타리무 씻어건져놓고
찹쌀풀 쑤어 식혀서 고춧가루 개어놓고
마늘빻고 쪽파다듬고 저녁쌀 씻어놓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카레만들고 된장국 끓여놓고
저녁먹고 애들 학습지 채점하고 피아노 연습시키고
인터넷 영어공부시키고, 일기숙제했나 확인하고
청소기돌리고 걸레질하고
또 설겆이하고 아침쌀 씻어놓고
아참, 김치담가야지, 얼른 알타리 버무려 두 통에 나눠담고
티브이 좀 볼까나 했더니 벌써 마감뉴스...
빨래 개고 앉았다가 연락도 없는 남편이 궁금해 핸폰 걸었더니
그쪽동네는 무진장 즐거운지 음주가무가 스테레오로 들려오고
다이어리를 펼치니 오늘 내가 막상 하려던 중요한 일은
또 물건너 간 채 이렇게 하루가 가버렸다.
정신없이 하루가 가긴 갔는데 도대체 오늘 무엇을 했는지 허무하다.
꼭 무엇을 도둑맞은 것처럼 허탈해서 맥이 빠져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