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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각. (내용이 너무깁니다. 읽으실 분들만..)


BY 며늘.. 2001-12-19

오늘 아침.. 생각이 참 많네요.
너무 앞선 걱정으로 우울합니다.

어제... 오랫 동안 알고 지내던 학교 선배 부부를 만났습니다.
신랑끼리도 잘 알고 지내면서 친하게 지내던 사이지요.
그분들과 저희는 딱 일년 차이로 같은 날에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결혼 기념일 즈음해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벌써 몇 해째 계속 되고 있습니다.

선배는 세돌이 막 지난 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이가 없습니다.
음.. 불임이라서가 아니라, 남편과 합의해서
아이를 아주 낳지 않기로 했답니다.
남편도 저도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특히 우리나라의 구조 상 아이가 생기면 거의 여자가 자기
생활을 희생해야 하잖아요.
전.. 그걸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오랜 대화 끝에... 생각이 달라지지 않는 이상은
아이를 갖지 않고.. 둘이 살기로 했습니다.
아이 대신 3년 후에는.. 남편과 함께 유학을 떠날 계획입니다.

하여튼...
선배는 정말 심성이 둘도 없이 착한 사람입니다.
바보 같이 순하기만 한게 아니라
정말 이해심이 많고 세상을 너그럽게 보아주는
강한 사람... 정말 좋은 인품을 가졌지요.
그 선배의 남편은 차남입니다. 그런데..
남편의 형님.. 그러니까 아주버님네는 아이가 없답니다.
3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요..
불임이라는데... 그래도 큰 스트레스 안 받고 산답니다.
선배의 형님은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고,
어찌나 자기 일에 욕심을 가지고 사는지..
보기 좋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선배네 부부가 어머니와 살고 있죠.
손주 사랑도 대단하시고 워낙 정갈하신 분이라
사는 데 어려움 없다..고 웃곤 하던 선배..

어제 아들을 시어머니께 맡겨놓고 와서인지..
마음 놓고 술을 마시더니... 갑자기 눈물이 글썽 합니다.
자기가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네요.
장남, 차남을 가리자는 것은 아니지만,
어째서 일방적으로 자기만 시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건지..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 다 포기하고 왜 아들과 남편 챙기다
시간이 다 흘러가 버리는 건지..
형님은(동서) 하고 싶은 일 다 하며 사는데..
어쩌면 그렇게 당연히 자신은 개인을 포기해야 하는 건지..
정말 요즘은 납득을 할 수가 없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다.. 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살았는데..
하루하루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게 두렵다 합니다.

그렇게 취한 선배를 보내놓고
저와 남편은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저는 제가 가해자가 된 느낌입니다.
저.. 맏며느리 입니다.
개방적이고 현명하신 부모님 맡에서 자란 덕에...
성장하면서 제가 여자라서 남자에게 차별받고 있다는 느낌..
받으면서 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혼하면서 많은 갈등이 있었지요.

인품 좋으시지만
자식에게 집착이 강한 시부모님을 보면서,
딸이라면 끔찍히 위하시면서도
결국 아들에게 기대시려는 시부모님을 느끼면서,
물질적인 건 크게 중요한게 아니다 하시면서도
친정에서 돈 가져다 집 늘리라는 시부모님께 치를 떨면서,
며느리도 딸이다 하시면서도
늘 따뜻한 곁을 안주시는 시부모님께 서운하면서...
5년이 흘렀습니다.

저 그간의 상처 많아서
저희 신랑에게 공언 했습니다.
시부모님 모시고 살자 하면 바로 이혼이다.
우리 신랑... 제가 받은 그간의 상처 아는지라..
그러자고 합니다.

울 시모에게 울 도련님 세상에서 하나뿐인 잘난 아들입니다.
그런 도련님이 내년에 결혼을 한다더군요.
학벌 중요시하는 우리 시부모님 마음에는
택도 없는 학교를 나온 아가씨지만,
요즘 제일 인기있는 신부감이라는 선생님이 직업이랍니다.
우리 시부모님.. 좋아서 어쩔줄 모르십니다.
그러면서 또 한번 제 마음에 상처를 주시더군요.
저는 그 앞에서 별볼일 없는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우리 신랑.. 한번은 어머니께 너무 이중적인 모습이
실망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신랑.. 결혼 전까지는 자신의 어머니가
훌륭한 인품과 넉넉한 마음을 가지신,
인간적으로 존경할 수 있는 분이라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우리 시어머니... 부모 마음은 다 그런거라 합니다.

저는...신랑에게 이제 동서 될 사람이 우리 시부모님의
유일한 며느리라 했습니다.
저는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만 하겠다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은 동서와 상의 하셔야 할 것이며,
동서에게 의지하셔야 할거다..
물론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 한 날이 온다면,
당연히 시동생과 동서가 모시고 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가혹하고 냉정한 제안에
우리 신랑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리 친정 어머니는 이런 나를..
독하다, 어찌 마음 씀씀이가 그리 박하냐... 하시며
나무라십니다.
하지만.. 전.. 저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저에게 어제 선배의 모습은
많은 생각을 던집니다.
저는 동서될 분에게 아무런 미운 감정 없습니다.
다만.. 제가 못하는 일..
제가 되어 드릴 수 없는 좋은 며느리 자리를...
내어 주려는 것 뿐입니다.
동서는 우리 어머님이 그리 바라던 좋은 직업에
넉넉한 집안의 딸이니까...
우리 어머님 마음에도 훨씬 만족스러우실 테니까..

하지만 제 이런 뒤틀린 마음이..
동서될 사람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편치 않습니다.
우울하네요...

너무 긴 글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어쩌면 질책이 쏟아질지 모르겠습니다.
위로 받자 쓴 글은 아닙니다만... 아컴 여러분이
현명한 생각을 저에게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보다 저와 모두에게 현명한 일인지...
좋은 하루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