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부모님랑 같이 산지 2년좀 넘었습니다.
사정이 여의치않아 어쩔수없이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만 시집살이 아닌 시집살이... 이런 저런 불편함들 이루 말할수 없죠??
전 이제 22살... 집에서 애보고 살림살기엔 넘 이른 나이죠. 철없던제 자신이 저지른 그 한번의 실수로 결국은 제 무덤을제가 파헤친 격이 되었지만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수있다는것 그 자체만으로도 첨엔 행복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된 시댁에서의 생활들속에 저에게 많은 변화가 오기시작했지요. 그리고 전 그 일상의 반복된 생활속에서 차츰 차츰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고 많은것들이 저에게 스트레스와 많은 심적부담으로 작용하기시작했습니다. 형편만 되었어도 당연히 분가를 했겠지만 정말 맨손으로 시작된 결혼생활은 아직까지 그대로고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너무나 달라져 버린저의 모습과 환경들 그리고 며느리란 자리가 가져오는 그 무게있는 부담감들을 이제 버텨낼수가 없을것같습니다. 남편에게도 힘들다고 지친다고 제 속마음 하나 잘 말하지않는 제가 오죽했으면 남편에게 엉엉 울면서 친정으로 가겠다고 까지 했을까싶어여... 아퍼도 아픈내색제대로 못하고 어쩌다 몸살이라도 한번나 누워있는것 조차도 가시방석이고 마은편히 발뻗고 누워있는것 조차 눈치보고 ... 시부모님이 물론 아픈사람 나몰라라 하시는분은 아니시지만 그래도 누워있는그 순간들이 저에겐 참 고통이었습니다.
집안일에 식구들 뒤치닥거리에 제가 해야했던 일들은 다해주고 눈치보고 제 개인적인 생활들은 희생해야하는것인지 전 이게 넘 화가납니다.
늘 식구들 기다리다 들어오면 밥이나 차리고 들어오는 시간도 다 제각기다르니 어쩔땐 밥상을 3번이상씩 차려야 될때도 있었습니다.
겨울이면 불도 안들어오는 주방에 따뜻한물도 안오는 그 차가운 물에 고무장갑끼고도 손이 시려워도 꾹 참고 설겆이 다 했구요.
잠도 정말 일찍 제대로 자본적이 없었던것 같아요.휴일때도 정말 늦잠한번 맘편히 못자보고시부모님 아침밥상 차리는게 일입니다.
어쩌다 친구들 한번 만나도 시간에 쫓겨 제대로 이야기도 한번 못나누고 집에들어오자마자 쉴틈도 없이 밥차리는게 또 일입니다.
평일같은 낮에도 낮잠한번 자는것도 허락되지않더군요.
친정은대구인데 부산에서 기차타면 1시간반이면 되는 그거리이지만 명절때 빼곤 가보지도 못했구요. 친정부모님 생일이나 행사가 있어도 가보지 못하고 전화한통이 전부입니다.
왜냐구요.... 집에 여자라곤 시어머니와 저 딱 둘이거든요.
시어머님은 일다니십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찍 나가셔서 늦게 들어오시죠. 그러니 당연히 살림은 저에게 떠맡겨 지더군요.
밥챙겨줄 사람이 저 밖에 없으니 ... 저희 시어머님은 다 제가 하겠거니 하고 아예 믿어버리십니다.그래서 심적인 부담이 더 가중되어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전 아직 부족한것도 많고 이 살림살기가 아직은 넘 버겁기만 합니다. 우리 세식구만 살았다면 이렇게 힘들게 살진 않았게지만요. 이것저것 하나하나 모든걸 신경써야하고 시어머님은 저에게 맡기기만 하시니 전 정말 이 생활들이 그저 죽을지경입니다.
저만의 공간과 저만의 자유가 없다는게... 그리고 때론 세상 밖으로의 탐험도 해보야하고 자유를 즐길 권리를 당당히 누려야 하는게 당연한것이지만 전 그 자유들속에 구속되어있습니다.
정말이지 넘 갑갑합니다. 2년동안 집이란 이 감옥속에서 오직 살림과 아이양육...그리고 시댁식구들의 뒤치닥거리에만 매달려 제 자신은 조금도 돌아볼여유가 없었습니다. 이젠 제 자신을 좀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남편에게 분가를 권유했지만 돌아오는말은 좀더 나를 희생하란 그 말이었습니다. 물론 남편도 제 그심정 이해는 하고 있습니다만자기자신도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단걸 저도 남편도 다알기에 좀더 고생하잔 그말이었습니다.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그 현실이절 미치게 하고 있으니...
앞으로의 이 생활들을 얼마나 더 버틸수 있을까 두려움이 앞섭니다.
사는것의 행복감도 없이... 즐거움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또 그렇게 전 아침에 눈을 떠 밥을하고 설겆이를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하고 식구들을 기다리고 밥을하고 그렇게그렇게 파출부 처럼 일만 하고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