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골종가집 둘째며느리랍니다.저희 시댁은 달랑 아들만 셋입니다.제게는 3년 전쯤만해도 위에 동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형님은 경제적인 궁핍함과 아주버님과의 불화로 딸아이 하나만 남겨두고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났습니다.돈 벌어서 나중에 꼭 딸아이를 찾아가겠노라고.그러니 그때까지만 아이를 잘 돌봐달라는 부탁까지 남기곤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처음 시집오실때는 모든게 문제가 없었습니다. 직선적인 성격과 조금은 이기적인면은 있었지만 나름대고 좋은 며느리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려고 많이 노력하시더군요. 하지만 언제부턴가 종가집며느리란 자리에 부담감을 표출하기 시작하더군요. 정신적이 압박감이 크다는걸 친정에서도 느끼며 자랐기 때문에 (저희 친정엄마도 7남매의 맏이에게 시집오셨거든요)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드리고자 저 역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희 시어머님께서는 형님께는 언제나 관대하시고 멀리 시집왔다는 이유로 설명절에도 친정으로 보내고 싶어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4년동안 생일날이면 바쁜농사일중에라도 시내까지 나오셔서 미역국을 끓여 주셨습니다.전 그런 형님이 너무나 부러웠는데 형님은 그것마저도 부담이라고 언제나 저희에겐 불만을 토하시더군요. 알수 없는게 부부사이고 저역시 한남자의 아내고 세아이의 엄마이기때문에 이혼한 형님댁 가정사에 끼어 누굴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혼후 저희 아주버님은 아직까지 형님을 잊지 못하고 방황하십니다.점점 엄마를 빼닮아 가는 조카땜에 더 잊지 못하시는것 같더군요. 여러번 새출발하시라고 권유 했지만 형님과 헤어지면서 3년동안 각자의 길을 가다 다시 만나자는 약속이 있었다며 마냥 기다리시겠다더군요. 참 답답했습니다. 아이도 있고 진짜 몇년간만 떨어져 지낼맘이었다면 이혼을 요구하지도 3년동안 아이의 안부를 묻는 전화 한통 없을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후부터 집안에 굳은 일만 생기더군요. 멀쩡하시든 시아버님께서 비닐하우스 개폐기에 머리를 다치셔서 제작년 1월부터 병원생활을 하시고 계십니다. 장애1급 판정까지 받으시고 말씀도 하실수가 없습니다.
1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조카까지 네아이를 키웠습니다. 저역시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많이 힘든 1년 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카의 한마디말로 인해 고맙다는 말한마디 못듣고 아주버님께서 아일 데리고 가시더군요. 작은엄마가 저만 미워한다나요? 조카는 7곱살인데 아직까지 오줌을 못가립니다. 달래고 약도 먹여보고 혼도 내봤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더군요. 매일 버려내는 이불을 직장생활까지 하는 저로선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3살짜리 제 아들도 가리는 오줌을 못가리는 조카가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혹시 상처가 될까싶어 3번 혼낼꺼 1번 혼내는 정도였는데도 조카는 할머니와 지아빠한테는 부풀려 이야기하고 그러나 보더군요.그래도 참았습니다. 하지만 조카는 동내 아줌마들한테도 작은 엄마가 밥도 안준다고 그러고 다닌다더군요. 속사정을 다아는 동내 언니들이라 저한테 살짝 귀뜸을 하더군요. 참 많이 울었습니다. 해도해도 표도 나지않는 내 신세가 참 ....
남편마저 우리애들한테도 하는 꾸지람을 제가 조카에게 하는걸 못마땅해 했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남편과의 불화. 어머님과 아주버님의 무리한 바램이 저를 자꾸만 나쁜사람으로 몰고 가더군요. 어느새 전 제가 진짜 그렇게 나쁜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착각까지 들더군요.
1년동안의 숨막힘은 말없이 조카를 데리고 가버린 아주버님께서 끝을 내 주시더군요. 하지만 전 잃은게 더 많은것 같았습니다. 아무도 제가 힘들었던 시간에 대한 인삿말 한마디 없더군요. 뭐든 제가 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란걸 그때서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형님계실때 대신 제사모시고 만삭때라도 딸기 하우스에서 엉덩이를 끌고서 딸기를 땄던것도 모두가 저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저 역시 당연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왜? 요즘에 와선 이렇게 답답할까요?
새로 시집가서 아들까지 낳고 살고 있다는 우리 형님은 지금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을까요? 지금은 행복한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