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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를 마시며...


BY 휴우... 2002-05-06

남편과 싸운지는 오늘이 일주일째.
여전히 아주 꼭 필요한 말 한두마디 외엔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노동절에도 그냥 집에 있었는데, 남편 노는 토요일인 어제 그리고 어린이날인 오늘 역시 집에서 길거리의 사람들만 내다봤다.
아직 돌도 안된 우리 딸. 아직 어린이날이란게 뭔지 모르니 아무 상처 받지 않을거라 애써 위로하며.

정말 꼴도 보기 싫은 남편과 하루종일 함께 있는다는게 얼마나 갑갑하고 짜증이 나는지 모른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은 아이가 불쌍해 주섬주섬 아이 옷을 입히고 나도 옷을 입으려는데... 아이 낳고 몸이 많이 불은 탓에 변변한 반팔 웃옷도 없어 집에서 입던 박스 면티를 그대로 입고 나왔다.
뭐가 창피해, 어차피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그래, 나도 이렇게 변하는 구나. 후훗, 웃음이 났다.

집근처 큰 공원에는 차마 유모차를 혼자 끌고 갈 용기가 없어서 집뒤의 놀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엄마랑 모래놀이 하자~" 라며 즐겁게 유모차를 밀고 갔는데...
놀이터 작은 벤치마다 부부가 앉아 즐겁게 얘기 나누며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찍이서... 아무리 용기를 내보려 했지만, 도저히 그곳에 낄수가 없어 다시 집앞 조그만 놀이터로 갔다.
모래에 시소 두개, 그네 두개 뿐인 놀이터. 아이를 안고 시소에 걸터 앉아서, 이젠 뭘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또래쯤 될까, 어떤 아줌마가 편의점 봉투를 들고 걸어오더니 등나무 벤치에 걸터 앉더니 봉투를 뒤적여 맥주를 한캔 따서 놀이터를 바라보며 조용히 마시기 시작했다.
좀 있다 한 캔 더, 또 한 캔 더.
왠지 친구같아, 나만큼 외로운 사람인것 같아, 말을 붙여보고 싶었는데, 머뭇거리는 사이 조용히 자리를 떴다.
아마 그녀도 혼자 아이를 안고 시소에 앉아 먼데만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말을 붙여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 맥주. 나도 맥주를 사다 마셔야 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역시 다정한 가족들이 북적이는 마트엘 가서 아이 먹을것도 사고 맥주를 사들고 집에 왔다.
남편은 불도 안켜고 마루에서 자고 있다.

그래서 나는...
먹고 싶던 카레를 만들어 맛있게 먹고, 아이 밥도 먹이고, 젖 먹여 재운후 이렇게 맥주를 마시고 있다.
오늘은 아주 많이 취해서 마구마구 울고 싶단 생각에.

오늘 많이 울고, 빨리 설거지 하고 잠을 자야겠다.
그리고 또 내일 아기랑 행복하게 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