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다리 다쳐 입원하시고 시아버님 때문에 어찌해야 하나 마음만 불안하더니 위에서 다행이
1주일씩 맡아서 하자고 했다고 하네요,
제가 다 기쁘더군요.
아범님 집에서 깔금하게 돌봐드리는 큰형님도 고마왔고
이번주에 제 차레는 아니지만 아이가 학교를 쉬는 관계로
병원에서 2틀밤을 보낼수가 있었습니다.
8살 11살 아들들이라 맘이 게속 불안했지만 혼자서 수술실 들어갈 것같고 또 제 차례에는 어머니 시중이 없어져 편해질것 같아 미리 다녀 왔습니다. 제가 좀 사서 고생하는 타입이라..
시어머니 게신곳 할머니들만 모여있더군요. 얼마나 자식들 흉을 보았는지 등에 시선이 따가왔지만 걍 편히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주변 병실사람까지 제가 뉘집 며늘인지 알더군요.
저보고 우리어머니 보험다니냐고 하데요. 전화도 많이오고 시끄럽다고 옆병실에서도 싸우는 소리 다 들린다고
같은 병실에선 수술후 아프다고 하면서 앓는 어머니께 조용해서 좋다고 하더군요.
시간이 흐르니 아픈게 좀 낮나 봅니다.
어머니 제 칭찬합니다. 너무 좋다고 하지만
전 정말 아버님 때문에 어머니가 싫어도 합니다.
정말 싫습니다.
매일 말하는 자식 자기가 힘들게 키워줬다는 말도 싫고
병신자식이 효도한다는 말도 싫습니다.
매끝에 효자난다면 자기가 미워서 때렸겠냐고 합니다.
제일 많이 맞은 셋째와 막내가 잘한다고 하는 말입니다.
속으로 아니 큰소리로 이 분 친모 아니라고 떠들고 싶습니다.
맛있는 음식있으면 자기입부터 채우고 다음 아버지가 마지막 이랍니다.
어쩌다 어린맘에 젖가락이 가면 때리던 숟가락 몇번을 당하다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고 나서야 부모님 먹는 음식 손을 안댓다 하더군요.
어머니 병원에서 또 떠듭니다.
니 남편은 징그라게 이도 많고 더러웠다고
화가 났습니다. 요새애들도 안딱으면 이가 생긴다고
머가 자랑이라고 그런걸 흉보냐고 당시에 잘 닦아 주지않고
댑두니 생기것 아니냐고 공격했습니다.
슬그머니 꼬랑지 내리더니
자기가 처음 계모로 왔을 때 애들 아빠가 배가 볼록나온 세살백이
아이였고.
눈은 왕눈이에 배가 볼록나온 모습이 개구리 같았다고 말하면서
울 애아빠가 부르던 노래를 하더군요.
무지 웃겼다고
가슴이 아프더군요.
애기아빠 어린 세살이지만 새엄마가 친구들을 주루루 데려와
벌거벋기채로 노래 부르면서 춤추라고 합니다.
개구리랑 똑같다고 하면서 안하면 사람들 앞에서 긴 훠초리로
후려갈기고 결국은 울면서 불렀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사람들 웃어대고 정말 너무도 많이 당했다는데
난 다시 말합니다.
자식이 속상해 하면 시키질 말아야지 웃음꺼리를 때려가면서 왜 만드냐고 했더니 어머니 화를 벌컥내더군요.
재미있으니깐 시키는데 안하니깐 때리지 때린게 뭐가 잘못이냐고
맞기전에 하면 안맞는데 미련해서 꼭 맞아야 한다고...
여기에 한 번인가 제가 써서 올린적이 있습니다.
혼나다 도망나오면 문을 걸어잠그고 열어주지 않아 굴뚝옆에서
때론 역에서 잠을 자고 온다고 합니다.
친척 결혼식에 갔다가 어떤 할머니가 애아빠를 보더니 경악을 하더군요 제손을 잡고 울아들을 쓰담드고 제 남편을 두드리면 눈물을 흘리더군요. 너무도 불ㅆ쌍했던 애가 사람됐다고
꼬깃꼬깃 접은 만원짜리를 주시는데 거절도 못하고 받아들고는
맘 찡해서 있던 기억이 납니다.
애 아빠 중학교 1학년때 부부싸움끝에 애들 아빠에게 새 엄마가 화풀이 시작했고 아버진 더 화가나서 줄을 갖고와 기둥에 애들 아빠를 팔을 뒤로꺽어 묶고나서 각목으로 팼다고 합니다.
하늘을 보면 그렁그렁한 눈물을 삼키며 그 공포감을 말하던 남편 그 길로 집을 나와 이미 도망나온 형들을 찾아 서울로 와서 형들을 만나 중국집에 취직했다고 합니다. 돈을 한달간 번 애 아빠 너무도 시아버지가 보고싶어 월급을 쥐고 집압을 서성이고 있었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와
몇시간을 망설이다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 뒤로 시어머니의 폭행은 없어졌다고 합니다.
아주 열심히 돈을 벌어다 주었고 형들은 막내가
성인인 다 되도록 공부도 못한 막내가 안쓰러워 다시들어와
같이 벌면서 밤에 야학이라도 다닐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고
애 아빠와 우리 아주버니들 지금 잘 살고 있습니다.
나쁜짓한번 안하고 착하게 살아서 그런가 봅니다.
이런 지독한 시엄마가 있었기에 아이들이 근면성실하게
자랄수 있었구나 싶다가도
오늘 같이 시어머니 말하는 날은 줬던 밥도 뺏고 싶군요.
조금도 미안해 하지않고 당당하게 간병인 요구하고 병원비
당연하게 말하고 남들 병원비 본인이 낸다하면
집에 돈이 많은가 보다 하면 또 부러워 합니다.
자식들 돈으로 먹고 쓰고 입는데 최고의 사치를 누리고 살아왔던
노인네가 왜 재산이 안 모이는지 이유를 모릅니다.
지금도 계약금만 있으면 그 몇십배짜리 할부를 들이고 생활비드려도
할부에 허덕이고 허덕여도 또 몫돈만 있으면 사고치는 자신을
모르는 노인네가 너무도 싫습니다.
아버님 돌아가시면 모른채 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잘살고 공부도 좀 했다 싶으니
부모가 모두 잘 가리킨줄 알고 생활비
적게 준다고 모라합니다.
아범님 간병비 생각해서 생활비를 백오십원정도 받아야 한다는 노인네
누가 붙잡지 않았는데 아버님과 정 땜에 살면서도 항상 우리위해 아버님을 자기가 맡았다고 하니 그 말을 듣고 사는 사람들.
그때가서 그 사람들이 우리 형제들에게 돌을 던질지라도 정말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