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은행을 털었다. 한 나무에서 굵고 하얀 은행이 한해에 보통 한가마니씩 수확되는데...돈은 되지만 몸이 너무 힘이든다.
이제 갓 첫돌을 지난 딸 키우면서 짓는 농사일은 그야말로 중노동이다.
새벽부터 동동거리며 밭에서 살아도 돈은 되는것도 없고 아기는 아기대로 힘든 엄마땜에 자주 아파서 하루가 멀다하고 병원문턱을 드나들고...
결혼해서 두달만에 시엄니, 애기도 못 갖는년 데리고 왔다고 사람 있는대로 스트레스 주어서 결국은 같이 못 살고 가까운데로 분가를 했는데, 분가하자마자 아기가 들어섰다. 그러자 시엄니, 자기가 지어준 보약 덕분에 애가 가졌다며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다. 그래도 임신 8개월의 만삭때까지 나 혼자서 비닐하우스 천평 농사를 다 지었다.
결혼전에 울 친정아부지, 그렇게 기를 쓰고 결혼을 말린걸 들을걸 너무 후회했다. 농사일이 생똥 싸는 일이라며 등돌리고 신랑 인사도 안 받을정도로 반대를 했는데....
결혼식날도 친척들 아무한테도 연락도 안하고 부모님 두분만 오셨다가 우리 시모 난리치는 통에 사진도 한방 못찍고 바로 돌아가셨다.
두고두고 마음에 맺힐 것이다.
임신기간동안 입덧하느라 먹지도 못하면서도 수박농사 짓느라고 뜨거운 비닐하우스 속에 들어가서 순잡아주고 있으면 너무 서러워 눈물이 하우스 온도보다 더 뜨겁게 흘러내린다. 그래도 이를 악 물고 일을 했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농사라고는 첨 지어본 사람이 그래도 그만큼 노력했으면 한마디라도 고생했다고 해야 하는데, 그해에 수박값이 형편없어서 겨우 씨앗값밖에 못 건지자 우리 시모, 농사라고 그따위로 지었다고 난리였다.
서울서 10년동안 편하게 사무실서 직장생활만 하다가 시골가서 농사 지으려니 온몸이 아픈곳밖에 없다. 어쩌다 몸살이라도 나서 하루정도 누워 있으면 우리 시모 동네방네 돌아다니면서 난리다. 한번 방광염에 걸려서 넘 아파 피를 쏟으며 병원에 갔는데, 서서 오줌 싸는 년이 내 집으로 시집와서 내 아들 등골 빼먹는다며 온 동네에 난리도 아니였다. 아파서 하루 쉬면 내 아들 피 빨아 먹는년이라며 난리를 쳐서 쉴 수가 없다. 그렇게 아프다고 하는 년이 밤이면 서방맛은 알아서 헤헤거리며 자빠져 잘거라고 한다. 완전히 인간 이하의 발언이다.
재왕절개로 아기 낳고 삼일만에 혼자 밥 끓여 먹어야했다. 몸조리도 나 혼자서, 배에 힘이 없어 엉거주춤 서서 미역국 끓여 먹으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시엄니, 애 낳느라고 고생했다고 하기는커녕 딸 낳았다고, 그것도 제대로 낳지도 못하고 돈 잡아먹게 수술했다고 오히려 구박했다.
그러면서 요즘엔 또 아들 낳으라고 성화다. 미칠 것 같다. 지금도 힘이 들어 죽겠는데 거기다 또 아기 가지고 어떡하라고...
내일 또 은행 마저 털어야 되고-냄새가 너무 고약하다.
모레는 감 따서 곶감 깎아야 되고,
또 담날은 벼 베기 전에 기계 들어갈 수 있게 논 가장자리 벼 미리 베어놔야 되고-허리 무지하게 아프다.
벼 벤 담날부터 삼일은 그 많은 벼이삭 다 펴서 말려야 하고,
또 담날은 깨, 콩 털어야 하고,
또 담날은 하우스에 심어 놓은 감자 물대줘야 하고,
또 담날은 마늘 비닐 씌워줘야 하고,
또 담날은 감자고랑 풀 매줘야 하고.....
징그럽다. 일이 끝도 없다. 그렇게 일을 해도 매일 농협 이자걱정, 생활비 걱정이다.
애기 낳고 몸조리를 못해서 아픈 다리도, 병원에서 비싼 MRI찍어서 검사만 하고 치료도 못하고 있다. 그놈의 돈이 웬수지...
그냥 두면 결국 수술해야 한다는데 매일 병원가는 돈이 부담되서 가지도 못한다...
불쌍한 울 신랑, 자기 엄마가 넘 몰상식하게 하니까 나한테 면목도 없어 맨날 큰소리 못치고 산다. 직장 다니면서 농사일 하느라 잠도 하루 다섯시간도 채 못자면서도 매일 씩씩한척, 웃고 다닌다.
그래도 울 신랑 보고 살지. 나 이렇게 힘들게 일 시켜서 밉다고 하면서도 울 신랑 보면 미운 맘보단 안쓰럽다.
오늘도 컴컴해질때까지 은행 털고, 줍고, 자루에 담고, 아기 유모차에 태워서 집에 와 보니, 컴컴한 마당에 아기 기저귀빨래 하얗게 널려 있고, 신랑 또 야간일 들어가야 하는데 잠도 못자고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다.
빨래 개고, 아기 씻기고, 늦은 저녁지어 먹으면서 아무 소리도 안했다. 내가 울 신랑 볶으면 울 신랑 더 힘들어지니까...
그나마 시엄니가 손녀딸은 잠깐씩이라도 봐주니까 그거에 감사해야지.. 딸 낳았다고 구박하면서도 아기는 이뻐한다.
오늘 또 뜨거운 물로 아픈 다리 지지고 일찍 자야겠다. 그래야 낼 울 신랑 아침에 퇴근하면 잠깐 재우고 또 일을 하지...
울 아기나 아프지 말아야 할텐데...엄마 떨어져서 하루만 지내면 아기는 바로 병이 나 버린다. 스트레스가 심해서인지...불쌍한 울 신랑, 울 애기...또 불쌍한 나....
엄마, 아빠, 나 시골가서 농사짓고 산다고 할때 더 적극적으로 말리지...울고 싶다.
언제나 이 지긋지긋한 생활이 끝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