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삼년차, 내일은 결혼기념일이다. 결혼기념일을 기념하여, 자작한 노래를 불러본다...
제 1절)이집 들어와 한 게 모 있냐?
결혼과 동시에 임신하고 첫해에 한 일이라곤 집에서 피둥피둥 놀다가 딸을 하나 낳은 것 뿐이다. 시외할머니 한 번 오시면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노세노세 딸네집(시어머니집)서 노세...종일 따라다니며 수다에 수다가 꼬리를 물어도 그렇게 살아야 하나부다 하고 부른 배를 안고 꾸역꾸역 참고 지냈다. 주말이면 시누이부부(도 신혼이었다) 콘도 1박2일 여행온 사람들 마냥 아구아구 먹어대고 늘어지게 놀다가 일요일 오후 돼야 돌아갔다. 그렇게 살아야 하나부다 꾸역꾸역 참고 지냈다. 한 달이면 열흘은 기본 이주씩 출장이다 집을 비우는 남편이란 사람의 양말에 빤쓰에 구겨진 와이샤쓰 부여잡고 살았다. 그렇게 살아야 하나부다 꾸역꾸역 참고 지냈다. 일년에 달랑 네 번 제사에 차례 까짓거 모가 힘이 드나 시키는 것만 하면 땡이다 아주 쉽다 별거 아니다 뒤뚱뒤뚱 부은 다리로 열심히 했다. 할 줄 아는 거 없어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다 등줄기 식은땀 한줄기 찍. 그렇게 살아야 하나부다 꾸역꾸역 참고 지냈다. 남편 혼자 벌어다 준 돈으로 호의호식 편하게 사는 여편네구나 귀염둥아귀염둥아 우리 조카야 웬 년이 꿰차고 들어와 생고생을 시키는구나 너만 아니면 더 좋은 혼처 여기저기 줄만 대면 줄을 설텐데 난데 없는 시고모 시어미노릇에 대낮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도 벌떡벌떡벌떡증이 말도 못했다. 그렇게 살아야 하나부다 꾸역꾸역 참고 지냈다. 수건 한 장 새로 살 일 없어 얼마나 편한가 내 집 들어와 사니까 좋지? 말끝마다 시집살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이상한 논리로 갖다 맞추는 명랑시어머니 교묘한 심리전에 휘둘려 찍소리도 못하고 헤에 병신등신바보멍충이처럼 헤에 웃었다. 그렇게 살아야 하나부다 꾸역꾸역 참고 지냈다. 내 소리가 말 같지 않더냐 그렇게 네 멋대로였더냐 이러면서 불같이 진노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가게 나와 심부름도 좀 하고 여기저기 자기 놀러다닐 때 대신 나가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 계산기 탁탁 두드려놨는데 자기 맘대로 안 움직여 뿔이 났던 거다. 나도 사람인데 부른 배로 시집살이 견디는 것도 숨이 찬데 가게라니요 이 말이 목구멍 근처까지 올라왔다 도로 쑥 들어가게 무서운 소리로 화를 냈다. 눈물만 후두둑후두둑 엄마 생각 간절한 적 평생 처음이었다. 미친년 멍청한년 내가 바보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낼모레면 출산인데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부다 꾸역꾸역 어떻게든 붙어있어야 하는가부다...
제 2절) 나 도라버리겠네...
딱 2년만 살아보자 정 같이 못살겠거든 그때가서 얘기하자 자기가 먼저 시원시원 여장부인양 제안할 땐 언제고 어머니 저 사실은 나가서 한 번 살아보고 싶어요 주제도 모르고 한 마디 했다가 한밤중에 머리채 잡혀 내쫓길 뻔했다. 수건 한 장 안 사도 되니 시집살이란 얼마나 좋은가 역설하지 말고 수건 한 장 손수 골라 살림사는 재미 한 번 못 붙이니 가엾다 불쌍하다 이렇게 생각해줬더라면...당신 딸이 이렇게 산다면 어떻겠느냐 말끝에 실수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러나 어쩔 것인가 이미 터진 말을. 시어머니 가슴 치며 통곡을 한다. 아이고 아이고 불쌍한 놈 이놈아 저런 인간 같지 않은 년을 마누라라고 끼고 사냐 별의별 상소리 레파토리 길기도 길었다. 빨랑 아들 하나 더 낳아 친정 엄마한테 맡기고 너는 너 하고 싶은 일 나가 하면서 살아라 나는 손주 못봐준다 내 인생 즐기며 살고 싶다 이러는데 열이 확 받아 그만 친정 근처로 이사가면 어떨까 했다가 세상에 몹쓸년 죽일년이 돼 있었다. 평소에 그 다정 그 고상함 어디다 벗어버렸는가 빤쓰를 내리고 맨 궁둥이 이름쓰기 쑈를 해도 이보다 망가지진 않았으리라. 그녀의 착한 아들 얼이 빠지고 그녀의 악한 며느리 혼이 나갔다. 젠장 어린 딸년만 아니면 그냥 그 자리에서 칵 죽어버렸으리라. 이년아 너 이 집 들어와 여태 한 게 모 있냐, 이 말까지 나왔을 때 삼십년 전 울엄마가 할머니한테 들었다는 이게 바로 그 소리구나 싶어 엉엉 울었다. 여자란 여편네란 얼마나 하잘 것 없는가. 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질긴 뿌리 이년아 너 이 집 들어와 여태 한 게 모 있냐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떨 수 있는 최고의 위세 명언...내 너를 딸처럼 대하노니, 이딴 소리 주절거리지나 않았더라면 좋았으련만...그의 착한 아들이 내 등을 향해 애원한다. 울엄마한테 빌어죠 제발 잘못했다고 말해죠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씨발이다 이 색기야...
제 3절) 나쁜년, 머리를 풀어헤치고 노래 부르다
이제 삼년차 내일이면 만 2년. 벌써 서른인데 얼른 시집가야지시집가야지 귀에 못이 박혀 여봐라 젠장 그래 나 결혼한다 짜증에 오기에 없었던 거 아니지만 그래도 정 싫었으면 못했을 결혼이다. 과연 나는 좋은 마누라 훌륭한 엄마 착하고 만만한 며느리 순한 올케 너그러운 외숙모였던가 어쩌다 한 번씩은 반성도 한다. 안 될 것 같은 일은 질질 미련 두지 않으려고 애도 써본다. 시누이네 식구들 시외할머니 시외숙 시외숙모 시이모들 느닷없이 들이닥쳐도 여전히 그러려니 꾹 참는다. 내 집이 아니니까 생각 들 수 밖에 없다. 남편은 왜 네 집이 아니라고 생각하느냐 다그치고 따져 묻는다. 여봐 남편, 여기가 내 집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맘에 안 들면 당장 나가라 보따리 싸라 마라 하는 여기가 내 집 맞어? 당신이 남편 맞어? 당신 엄마의 꼴난 착한 아들, 당신한테 마누라가 있긴 있어? 우리는 집 사려고 아등바등 살 필요 없지 좋지 그치그치 지랄하더니, 그래 이 집이 당신 집 되려니 생각하면서 밤새 어린 여자들 벌거벗겨 놓고 술 부어 마시니까 맛이 나데? 개색기...카드 빵꾸 났다고? 카드 모서리 뾰족하게 갈아 똥침을 놓고 싶다. 돌아오는 결혼기념일에 사진관 가서 이십만원 주고 가족사진 안 찍어 왜 못 찍어 왜 싫은데 따지지마 색기야 너같으면 같이 웃으면서 찍고 싶겠냐 아직도 생각만 하면 살이 부들부들 떨린다 환멸환멸환멸 그 자체다 이색기야 니가 이 너덜너덜한 기분 알기나 해? 뭐? 내가 너를 무시했다고? 존중받고 싶으면 노력을 해야지. 나이 서른이면 이제 늙는 일만 남았어 색기야. 늙은 마마보이 아주 꼴사나워. 엄마 품에서 엄마 찌찌죠 이러면서 늙어갈 작정인 놈 모가 존경스럽겠냐 너 같으면 오냐 멋지다 오냐 훌륭하다 하겠냐.
아침부터 샴푸에 린스에 정성껏 머리를 감고 좋은 냄새 풍풍 맡으면서 맑은 정신으로 앉아 한다는 짓이 겨우 꾸역꾸역가 부르는 일이다...근데 속이 시원하다. 남편도 남편 나름대로 노력한다 생각할 것이다. 자기 엄마와 마누라 사이에서 훌륭한 조율자로서의 역할을 다하려고 애쓸 것이다.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여전히 가슴이 답답하다. 외국 발령 목빠지게 기다려도 회사서는 엉뚱하게 점점 더 안에 붙잡아 가두려는 심산이다. 같이 당구 치고 포카 치고 놀아줄 사람 없을까봐 그러는가...시어머니와 한 이년 아니 사실은 한 삼년 아니 솔직히 한 오년 아니 톡 까놓고 한 십년 아니 계속계속 오래오래 따로 살아보고 싶다. 신혼도 없이 살았으니 이제 풀어줄 때도 되지 않았는가. 코딱지만한 오피스텔 아니 원룸도 좋다. 누가 삐까뻔쩍 운동장 같은 아파트 사달라고 했는가. 좁아터진 집에서 애하고 셋이 살 걱정 들다가도 염치 없어 슬그머니 꼬릴 감춘다. 좁아터진 집에서 애하고 셋이 함 살아보고 얘기하고 싶다. 나가 살아보니 어머니 생각이 간절합디다 죄송합디다 그동안 마음 못 열고 툴툴거린 게 존나게 죄송합디다... 어서어서 아들 하나 더 낳아야지 낮이나 밤이나 테레비 아가만 나오면 귀에 대고 주문을 외우는데 먹은 밥알이 곤두서서 도로 쌀통에 들어갈라구 한다. 싫어싫어정말싫어다. 순수한 사랑이니 가족간의 화목이니 나발이니 웃기는 얘기다. 아무 것도 필요없다. 나좀 내보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