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비라고 아이디 올린 사람이예요
지금 갑자기 안개꽃이 생각나 아이디를 바꾸었네요
웬만해서 글을 잘 않올리죠,,,, 예전에는 많이 올렸지만 어쩌면 제가
얘기하는 넋두리에 내가 질려 요즘 눈독만 합니다.
71년 같은 띠 친구군요,,,, 전 안개도시인 춘천이 고향이고 여기서
살아요,,,
여자가 결혼을 한다는것이 그렇게 힘든 고비고비가 있다는것을 예전에는 몰랐읍니다.
그저 사랑하나로 남자 하나만 지켜보는것으로 알았지 그 넘어에 시댁에 연줄들이 널려 있는것을 몰랐답니다.
시어머니 시집살이 고추당초 맵다지만 동서시집살이 더 매운것은 몰랐답니다.
나 시집오기전에 맺힌 한을 십년도 넘은 어린 동서한테 칼을 갈아 던질줄은 몰랐던 순수했던 저였답니다.
농사 지어야 한다고 매년 봄때 맞추어 이다음에 갚아준다고 어머니 특사로 돈가져가 흙떨어지는 집에서 자취하던 동생은 그래도 자기 형이라 자기 고등학교라도 보내주었다고 감사히 여기던 사람,,, 정말 수중에 단돈 백오십이 전부였어요(마침 돈보낼려다 보니 통장을 누가 훔쳐가 돈을 다 찾아서,,, 실명제 위반으로 보상받는데 신입여직원이라 백오십에 합의 했더군요)
지금 와서도 이야기 하지만 만약 내나이 2년만 더 먹었다면 사랑은 했어도 아마 결혼은 망설였을거라고 얘기했을만큼 24살의 저는 사랑과 성실 하나만으로 모든것을 이겨낼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어떤 도움 바라지 않는 내가 미웠는지 아니면 먼저 선입견으로 손벌릴까 두려웠는지 무던히도 사사건건 트집잡던 우리 형님,,,
차라리 결혼 않하고 동거하겠다고 두손들던 나를 달래어 우리어머니 눈에 눈물보이며 웨딩드레스를 입었읍니다.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남들에게 욕먹지 않을 만큼 피해주지 않을만큼
내자신 희생하며 열심히 살았고 똑같은 인간 되고 싶지 않아 도리 찾고 경우 찾아가며 시댁에도 했어요
하지만 나만 잘한다고 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알았어요
주는것 없이 내가 미웠나 봅니다. 아쉬운 소리 않하고 잘못된 틈을 않보이는 내가 부담스러웠나봅니다.
둘째동서한테 어른대접 못받았다고 막내동서만은 자기손으로 골른다고 했던 맏동서 그래서 결혼 반대하다 2년만에 맨손으로 대출로 결혼한 우리가 손않벌리고 재산 일구며 사람도리 하는것이 싫었나봅니다.
그저 유복자라고 불쌍타고 하던 어머님도 아들없는 큰시숙이 불쌍해
장에 가서 날품 팔아 아이들 학비 보태고 동생한테 잘하겠다 싸우지 않겠다는 유치한 약속에 땅하나씩 막내몫으로 남긴 땅들 주시고 지금은 땅을 치는 현실입니다.
그래도 전 어머니가 좋아요 어쩔수 없는 옛날 사상으로 지금도 이자식저자식 불쌍해 하는 그 어머니를 원망할수 없읍니다.
요즘 큰집과 작은집의 재산싸움으로 엉망이 되어가고 있어요
현실 , 경우 따지는 저역시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읍니다.
그 가운데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그 존재가 남편의 발목을 잡고 있읍니다.
나한테 미안해 우리집에 못오시는 이유보다 큰아들 동네에서 손가락질 당한다고 구박다고 어른대접못받아도 오늘도 장에 가서 저녁에 물에 밥말아 넘기시고 구석방에 다리 못피고 주무실 그 어른을 어찌 원망할수 있나요?
님아,,, 한때는 그런 맏동서를 같은 여자로서 이해할려고 동정했읍니다. 저여자도 남의 귀한 자식으로 시집와 모진세월 살다보니 저리 변했겠지,,,
하지만 이제는 그런 동정의 맘 , 미움도 넘치는 찬사라 접고 있읍니다.
그저 당신의 딸들이 그저 당신같은 동서나 시어머니로 만나 몸소 겪기를 바랄뿐이지요,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