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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서 펀글


BY 4587 2003-07-31

예정일 : 6월 12일

출산일 : 6월 10일

유도분만

6월 7일 토요일 새벽 1시에 자다가 진통을 느끼고 깼다.

그 전날 현충일이라 남편과 함께 시내를 돌아다녔더니 피곤해서

초저녁부터 일찍 잠자리에 들었었기에 깨고나서 다시 잠들수가 없었다.

시간을 재면서 텔레비전을 봤다.

아침이 되면서 부터 진통이 더 잦아지고 더 아팠다.

이제 낳는구나..하면서 엄마한테 전화했더니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래서 남편이 태워다 주고 (회사 야유회)갔다.

엄마는 아직 덜아픈거 같다고 하늘이 노랗게 보일때 까지 집에 참고

있으라고 했다.

오후 2시가 넘어설때..밤을 새웠더니..잠이 슬슬 왔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배를 움켜잡고 누워서 자다가 깨다가 했다.

그때만 해도 태동이 있었다.

태동이 이상했다.

이녀석이 발버둥을 몇차레 치더니만 그 후로 조용해졌다.

배도 아프지 않았다.

엄마는 나보고 진통이 아니라고..오늘 안나오려나 보다..하시면서

예정일 까지 기다려 보자고 했다.

담날 전혀 태동이 없다.

불안했다.

당장이라도 병원에 가고 싶었지만 일요일이고..

월요일인 내일을 기약하며 하루를 또 그냥 넘겼다.

월요일이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했더니.. 엄만 돈이 썩어빠졌냐고..

예정일 삼일 남았는데 그새를 못참고 병원가려느냐고 욕하는 엄마를

제치고 병원에 갔다.

병원이다.

선생님보자마자 태동이 안느껴진다고 했다.

초음파를 보는 내내 의사선생님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이상하네,,심장이 안뛰네요..기계가 잘못됐나? 다른 선생님께
보내드릴게요.. 다시 확인해 보세요."

딴 방에 들어섰다.

이번 의사선생님은 초음파 하자마자 딱 잘라서 얘기했다.

"오늘까지 쳐서 한 삼일됐네요."

난 무슨말인지 통 이해가 안가서 되물었다.

"뭐가 삼일됐는데요?"

의사선생님은 나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벌써 뱃속에서 부패가 된지 이삼일 됐는데 전혀 몰랐습니까?
탯줄을 목에 감고 있는데..탯줄로 매듭까지 지어져있는거 같네요.
서둘러서 유도분만을 하던지 수술을 하던지해서 아기를 꺼내야합니다. 보니깐 혈소판감소증이 있으시던데 대학병원에 연락을 넣어드릴테니까 바로 준비해서 이동하십시오."

한동안 온몸이 떨리면서 움직일수가 없었다.

전화를 걸어서 남편목소리를 확인하고서야 눈물이 쏟아졌다.

바닥에 쓰러져서 통곡을 했다.

주위사람들이 부축해서 의자로 앉히면서 울면 아기한테 좋지않다고

울지말라고 한다.

- 중 간 생 략 <울산 대학 병원 으로 옮김> -

4층..산부인과 병동 분만실에 들어왔다.

몇시간을 통곡하고 울부짖다가..이젠 반쯤 정신 나간사람 마냥

멍하게 누워있는 나에게 계속 주소,전화번호,남편회사,등등 묻는다.

소식을 들은 가족들이 달려왔다.

한꺼번에 면회가 안되나보다.

한명씩 가운을 입고 들어와서 내 손을 붙들고 운다.

남편이 들어와서 그런다.

장모님이 너무 미안해서 날 못보겠다고 그런단다.

면회시간 끝나고 관장,제모,피검사,항생반응검사 등등,,,끝나고 나니깐

분만실에 사람들이 많구나..라는걸 느꼈다.

날 제외한 모든 임산부들이 밥을 먹는다.

날 제외한 모든 임산부들이 아기 심장박동 소리를 듣고 있다.

나만 뱃속에 죽은 아기를 낳으려고 기다리고 있다.

자정 12시에 촉진제(질정제)를 투여한다고 했다.

너무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었다.

아기를 진통하는 시간보다 더 아팠다.

열달동안 함께했던 추억들,,

아기를 임신하고 웨딩촬영,웨딩마치,신혼여행,임산복 사러다녔던 일들,

태교하던 시간들....

머릿속을 어지럽히면서 얼마나 울었던지 눈이 너무 부어 뜨기가 힘들었다.

자정 12시....

촉진제 투입..


새벽 2시가 넘어서 부터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의 진통이 시작됐다.

3시..4시,,

태어나면 만날수 있단 희망이 나에게 없다..

이미 죽은 아기를 뱃속에 넣고 진통을 하며 울부짖는 날 느끼면서

내 스스로가 참 가엾단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도 잠시..

너무 아파 견딜수가 없었다.

수술담당 여자선생님이 내 이마를 쓸면서

"어린나이에....

.........힘내세요.... 넘 잘하고 있어요.."

위로를 해준다.

견딜수 없는 고통에 난 비명보다 울음소리가 더컸을 것이다.

"아기는 언제 나오나요..빨리 꺼내주세요!!!!!!!!!!!!!!!!!!"

오후 12시 넘어서 나올걸로 예상하고 있다고 했다.

살아있는 아기라면 아기가 밀어내는 힘도 있기에 진행이 빨리되는데

죽은 아기라서 난 가망성이 반반이라고 했다.

촉진제로도 안되면 수술해야한다고 했다.

아기머리가 밑으로 보여도 인위적으로 꺼낼수 없었다.

난 혈소판감소증이 있어서 꺼내다가 잘못하면 자궁이 파열되서

피가 안멎고 나까지 죽을거라고 끝까지 힘주기 해서 낳아야 한다고 했다

의사가 시키는 데로 다 했다.

호흡법, 머리위 손잡이를 꽉쥐고 밀면서 힘주기, 양 다리붙들고 일어나 앉으면서 배꼽보며 힘주기등등 얼굴에 핏줄이 터지도록 힘줬다.

"으~~~~~~~~~~~~~~응!!!!!!!!!!!!!!!!!!!"

정말 수도없이 힘주기 했다.

결국 오전 8시즈음에 천사를 낳았다.

조용했다.

물론 아기 울음소리는 들을수가 없었다.

난 정신을 잃지않으려고 끝까지 안간힘을 쓰며 버텼다.

열달동안 내 뱃속에서 함께했던 우리 아들을 꼭 보고싶었기에...

"선생님......우리 아기 보여주세요..제발요.."

울지않기로 약속하면 보여준다고 했다.

그런다고 했다.

"잠시만 기다려요. 예쁘게 닦아서 보여줄게요..아기몸에 물집이 잡혔는데... 보고 울지 말아요..약속했어요."

아기를 수건에 싸서 내품에 잠시 안겨줬다.

지금 후회한다. 무겁다고 했던걸...

무겁다고 했더니..들어서 아주잠시 보여줬다.

손가락,발가락를 더듬는데 내 손이 부들부들 떨려서 제대로 만지지를

못했다.

차가웠다.

남편닮아 검을줄 알았던 피부가 하얗고,

나 닮아서 곱슬일줄 알았던 머리카락이 생머리였다.

눈썹,눈,코,입술,손가락,발가락,고추...내 눈에 담았다.

"살아있는거 같아요! 유빈아 눈떠봐!유빈아!!유빈아!!!!!!흑흑흑...."

의사는 얼른 아기를 데리고 갔다.

남편이 분만실에 들어왔다.

아기를 보고 운다.

의사는 그 와중에 묻는다.

"아기 부검 하실거에요, 데리고 가실거에요?"

남편은 아기를 직접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의사는 못마땅해 한다.

이젠 흥정한다.

"부검하세요. 부검하시는게 좋을 건데요."

나도 그랬지만 그때 오빠도 멱살잡고 한대 후려갈겨주고 싶었단다.

의사들은 내 아기를 실험용으로 쓰고 싶어했다.

결국 아기는 베넷저고리 입히고, 속싸게 싸서 데리고 나와

화장해서 내 부탁데로 뿌리지 않고 남편과의 추억이 있는 동구캠퍼스

에 묻었단다.

아직 내몸이 회복되지 않아서 찾아가보지 못했다.

어젠 비가 많이와서 떠내려 가지 않았나...걱정되서 종일 울었다.

아기낳고 입원실로 옮겨서 내 상태가 좋지않아 수혈을 하며 일주일간을

병원에서 보내고 이번주 월요일에 퇴원했다.

유즙분비호르몬 억제제를 꾸준히 먹으면서 젖을 삭혀도..

붕대로 칭칭 감아도..

젖이 불어서 흘러 나오고..

흘러 나오는 젖을 닦아 내면서 울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기 보고 울고,,

눈을 감아도 떠도 자꾸만 생각이 나서 눈물만 나온다.

남편은 한약도 먹으면서 내몸이 완쾌되고 일년후에 아기를 갖자고 하지

만.. 난 무조건 빨리 갖고싶다.

아니면 이렇게 울면서 세월 보낼거 같다.

가슴이 넘 아프다.

한번씩 숨을 못쉬겠다.

숨이 막힌다.

어젠 친정엄마랑 다퉜다.

몸조리 딱 사흘만에 짐싸들고 집으로 왔다.

진작부터 친정집에 가는게 아니였다.

엄마때문에 우리 아들 잃었다.

엄마 보고싶지 않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내내 눈물은 흘렸지만..

이제 이순간 부터 독해질거다.

독하게 맘먹고 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