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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에 대한 보고서-- 부디 좋은 곳으로 가소서...


BY 그리움 2005-06-07

5월 29일 일요일 , 이른아침 7시. 갑자기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깼다.

뜻밖에 큰오빠였다,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놀라지 말란다...

" 뭐야!  아버지가 어떻게  되셨어?!  아님 엄마야 ?!"

 

"영철이가 (가명)오늘 아침에 죽었댄다. 어제 동네 사람들이랑  낚시하러 갔다가...  영철이 처남들이 지금 사고 현장으로 가고 있다는데, 우리도 조금 있다 떠날거야......"

 

이게 꿈인가? 꿈이겠지.  머릿속은 멍해지는데, 몸은 사시나무 떨리 듯 하고,  자동으로  눈물부터  떨어진다.

작은 오빠가 죽었댄다.  침대에서 몇번을 굴렀는지, 침대에서 바닥으로 , 다시 바닥에서 침대위로 ,... 몸을 어떻게 가눠야 할지 ... 그리고 난, 내가 뭘 해야할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러다  뒤이어 엄마가 생각이 났고,  얼른 얼른 아이를 깨워서 밥을 먹인다음 , 서울로 올라가  엄마한테  어떻게든  알리고  그리고  오빠의 시신이  서울의 한 병원으로 옮겨지면 그리로 모시고 갈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 30분 쯤 지났나?  다시 오빠다. 우리도 내려 오란다. 내려가는 건 문제가 아닌데, 엄마한텐 어떻게 알리냐고 했더니, 일단 내려 오고 그 문젠 같이 의논하자고...

 

9 :40분 쯤  충주의 한 의료원에 도착.

큰 오빠 내외와 그 쪽 처남둘 , 그리고 동행했다는 동네 아저씨들 둘- 인상이 험악해 보였다

그러니까 셋이 갔다가 새벽에  오빠 혼자 실족해서 물에 빠졌단다.

 

큰오빠는  이상하리 만치 침착했다.  나와 오빠 둘, 그 단촐한 남매 중에서  나를 제외한 오빠 둘은 유난히 사이가 좋았었다. 작은  오빠가 큰 오빠를 더 많이 챙긴 거였지만 어쨌든  많이 붙어 다녔었는데,  그래서 이 번일로  큰 충격을  받을 거였는데, 오빤 의외로  냉정해 보였다.

둘째 올케도  보인다.  맘 같아선  둘이 얼싸 안고 슬픔을 나누고 싶은데, 나를 보고 외면한다.

저 올케가 우리 친정에 발길 끊은지가 언제부턴지  나는 정확하게 기억도 안난다.

다른 이유-시어머니나 나하고의 불화 -같은 건 없다.

단지 시댁에 왕래를 해봤자, 국물도 나올게 없다는 게 이유라면 이율까? 치매에, 중풍으로 한 쪽다리를 잘 못쓰는  시아버지에 그를 간병하는  시어머니 가 계신 집에 그것도 뺀질한 큰 동서믿고 왕래하다간 불똥이 자기 한테 튈지 모른다는 부담감이 컸을 것이다.

 

큰 오빠는 아까 부터 병원을  어느 쪽으로  정할지에 대해   망설인다. 자꾸만 저쪽 올케 편만 들면서   그 쪽 집근처 병원을 거론하다,   그 쪽하고 의논하자며 둘째 올케를 불렀다.

" 마지막이니까,  제 편의를 봐주세요" 둘째 올케 왈.

큰오빠가  OK하려는  찰나, 내가 가로 막았다.아무래도 이건  아닌거 같았다.

그 쪽 사돈네 집근처에서  장례를 치를 경우 , 여기 엄마가 무슨 수로 오며가며 아버지를 챙길거며 , 시댁측 손님들이 많이 못갈 거라고 했다.

 

그랬더니, " 시댁식구 누가 오는데!" 라며 악을 악을 쓰다, 지 동생한테  저 x년 내 보내란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는 와중에도  욕이 나오려는 걸 오빠를  생각해서  억지로 참았다.

얼마 뒤, 그 쪽 큰 처남이란 사람이 (인상이 너무 태연하고 생글거려서 첨엔 큰 처남일거라고 상상도 못했었다. 35세쯤) 나한테 한다는 말이

"많이 놀라셨죠" 하며 말하는 표정ㅇ이 너무나 밝다.

그냥 놀라기나 한것 같았으면 ,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다면 너무 좋을 걸, 이렇게 속으로 삭이며, 또 한번 아연해 졌다.

주위에서 뭐라고 했는지, 순순히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옮긴 후, 정신없이 2박 3일이 흘렀다.

 손님이 적은 저쪽 사돈집의 빈 자리를  이 쪽 엄마 아버지 손님들이 찾아주셔서 , 다행히 장례비를 메울 수 있었다. 그것도 신기하게 10원의 오차도 없이 딱 들어맞았다. 남편은  이건 작은 형님이 도와주신 거라고 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그날 충주 병원에서 , 올라오며, 나는 차마 엄마한테 전화로 알릴 수가 없었다.

내 목소리에서 뭔가를 알아낸 엄마는 애가 탄다며 자꾸 재촉을 하셨지만, 나는 그럴 수록 더 목이 메어와  전활 끊었다가 다시 하기를  몇번이었는지,..

그 후 친정에 도착해서도 엄마에게 작은 오빠의 사망소식을 알리기에는  나로선  너무 나 큰 용기가 필료했다.

일흔이 훨씬 넘으신 나이에  중병이 든 아버지 돌보시랴 ,(우리 아버진 아직도 작은 아들이 죽은지 모른다)살림 혼자 꾸리시랴 ,이젠 지칠대로 지쳐 희망이라곤 별로 없어 보이는 그  엄마께 나는 도저히 안 떨어진는 입을 떼고 있었다.

 

벌써  9일째,  우린 아직도 잠을 못이룬다.

 

오빠 친구들하고 갔다가  그렇게 됐다면 이핼 할것이다.  하지만 오빤 죽는 순간까지도  처갓집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잘 모르는  처갓집 동네 아저씨둘과 갔다가 ,  그것도  다른 빈자리 나두고  하필이면  그렇게 뚝 떨어진 왜진 장소에서 다른 사람  다  자는 그 한밤중에 소리소문없이 ,것두  얕은 쪽 다 놔두고  젤 깊은  앞쪽에서 제대로 실족을 했단다.

 자다가 일어나 보니, 오빠혼자  빠져 있더라나?

목격자 하나 없다.  오로지 그들의 진술 뿐이다. --것두  그 중 한사람의 .

 

애초에 경찰이 제시했던 '부검'이란 그땐   너무나 끔찍한  단어였다. 이젠 후회하지만....

 

 

오빠가  올케의 주장으로  살던 전세금빼서  처갓집에 주고  들어간건 내 기억으로 벌써 6~7년 정도다. 그 땐 손아래 처남들이 다 학생 때였으니  부지런한 성격의 오빠가 그 집안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는 안봐도  훤하다, 약간  말수가 적은 오빠는  유독 그 장인장모에게 싹싹했다. 지 색시는 본가에 찾아오지도 않은데, 오빠는  내색하나 없이  두 집안을 오가며 굳은 일을 도맡아 했었다.

언젠가 추석전날, 시댁에 가던길에 난 내 나름대로 준비한 추석음식들을  친정에 전하기 위해 잠시 들렸더랬다. 그런데, 거기엔 올케대신 작은 오빠가 전을  부치고 있었다.

난 너무나 화가 나서 작은 올케를 욕하며, 어쩜 그럴 수가 있는지를 따졌었다.

그 때 오빤 , 그냥  애써 담담해 하며, 자긴 오기 싫다는 사람 억지로 끌고 오긴 싫다며  말을 아꼈었다.

그런 오빠였다. 너무 답답할 정도로 착한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처남이란 사람들은 마치 친형과도 같았을   매형의 죽음 앞에 너무나도 담담하다.

그걸 넘어 명랑하기까지 해 보인다. (그게 성격일까?)

게다가 결혼해서 벌써 애까지 있는 둘째 처남은 아예 이튿날 서부턴 오지도 않고  발인날 조차 회사에 출근을 했단다.

게다가  그 장모분은  둘째날 병원에  찾아와서는 ,  손주들 맡길테니  그리알라나?

 

글재주가 없어서 두서 없이 몇시간째,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남들은 이제 좀 맘이 가라앉았냐고 묻지만, 가라앉기는 커녕 , 점점 더 보고 싶을 뿐입니다.

혹시 꿈에라도 볼까 잠을 청해보지만,  한번도 나타나 주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에 작은  오빠한테 유골함을 선물했습니다. 

서로 사는 형편이 어렵다 보니 ,  살아 생전  변변히 선물하나 한 기억이 없었는데, ... 제 손으로 다른 것도 아니 유골함을 선물하게 되다니요....

 

저는 요즘 부처님전에  기도합니다 -  다음 생애에는 부디 사랑받고 존경받는 사람으로 부디 귀한분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