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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속상하다.....


BY 양철지붕 2005-08-22

나에게 언니가 한명있다.

물론 동생도 있지만 오늘은 언니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 언니는 가난한 집에 장녀로 태어나 너무도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낮에는 회사에서 밤에는 호프집에서 투잡을 가지고 열심히 벌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집에 생활비를 대고도 28살 결혼 할 당시 혼수며 예단이며 결혼식 비용일 체를 다 부담하고도 친정에 돈을 주고 떠나갔다.

결혼 하고 나서도 형부 혼자 외벌이 하는데도 알뜰하게 생활을 하며 가난한 친정에 생활비 조금 보태고도 조금씩모아 지금 제법 넓은 빌라로 집을 넓혀갔다.

내가 결혼하기전 어느날 언니집에 놀러 갔었다.

싱크대 찬장에 있는 맥주컵에 천원짜리 오천원짜리 뿐만 아니라 동전들이 들어있었다.

이것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부식비로 사용할 돈을 월 30만원을 책정하고 하루에 만원꼴로 분배되는 돈에서 남은 돈은 찬장에다 모았다가 월말에 친정으로 송금한다고 했다.

그돈과 자신이 만원짜리 옷을 사야 하면 오천원짜리로 사고 하는 여러가지 아낄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모이는 돈을 합해서 친정에 생활비를 보낸다고 했다.

언니는 외벌이 하는 형부에게 책잡히기 싫어 그렇게 자신이 먹고 입는 것을 줄여 친정에 생활비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언니더러 당시 철없던 나는 지지리 궁상이라고 왜 그리사냐고 말해버렸다.

 

반면

나는 아무리 직장을 옮겨도 용케 자질을 인정받아 어디서건 제법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버는 돈의 한도 안에서는 열심히 쓰면서 생활했다. 당연히 모이는 돈은 일원땡전 한푼도 없었다.

거기에다 나 쓰기 바빠 친정에 생활비를 거의 보탠 기억이 없었다.

그런 나도 결혼이란 것을 하게 되었고

5년전 게 나에게 눈 먼 남자를 만나 정말 일원땡전 한푼 모은 것 없이도 그럭저럭 결혼했다.

당연히 이때도 언니는 나에게 500만원 가량 주었고 그 돈으로 거의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예단 생략 하고 순수하게 결혼식만 올리는데도 그돈이 다 들어갔다.

시댁도 우리 친정과 별반 다를게 없어 나는 시댁에서 금20돈만 예물로 받고 언니에게서 받은 돈 중 200만원드린걸로 나머지는 다 생략했다.

시댁에서 조금 안 좋은 눈치를 주면 눈에 콩깍지가 낀 내 남편이 모든걸 무마시켜 두말 나오지 않게 해 주었다.

나는 남편과 맞벌이를 하면서 번 돈을 아무 생각없이 통장이 바닥 날때까지 써버렸다.

당연 모이는 것 하나 없었다.

결혼하고도 정신을 모차리던 나는 아이를 임신하고 집에 들어 앉은 후에도 그 씀씀이를 줄이지 않았다.

심한 입덪으로 하루 세끼를 모두 사먹었고

먹고 싶은 것은 진해에서 강원도까지 가는 것도 불사하고 다 사다 먹었다.

물론 화장실 변기만 좋은 일 시킨 꼴이지만......

입덪 기간은 어이 없게도 임신 2개월부터 임신9개월까지 계속되었다.

이런 나를 언니는 늘 걱정스러운 마음에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사람은 당하지 않고는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깨닫지 못한다.

나도 당연히 그런 언니의 말을 소귀에 경 읽듯이 대했다.

 

입덪이 가라앉고 슬슬 아이 양육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즈음.......

마이너스 통장이 바닥이 났다.

내일 당장 아이가 태어난다면 정말 병원비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제야 머리속에서 번개불이 일었다.

자신의 미래 뿐만아니라 아이의 미래까지 책임지지 못한 이 과소비의 심각성을 그제야 깨달았다.

이미 발등에 불은 떨어졌고 끄기에는 늦은 감은 없지만

차츰 내 뒤를 돌아보게 되고 어떻게 아끼며 살아야 한 아이를 키울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나름의 노력으로 알뜰하게 살려고 노력을 해왔다.

군인인 남편의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살아가려고 노력을 했고 지금 마이너스도 차츰 채워지고 있다.

 

한번 사람의 머리에 각인된 인상은 절대 지워지는 법이 없다.

늘 어제의 나만을 생각하는 언니는

늘 내가 위태위태하다.

언니로서 충분히 그럴 수 있고

그럴 빌미를 내가 제공했기에 기꺼어 그런 언니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가끔 언니도 내가 변했다고 느끼곤 한다며 말을 한다.

하지만

언제나 변함이 없다.

언니 앞에서는 나는 언제나 어제의 그 한심한 동생이었다.

언니를 만날때마다 나는 언니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언니의 걱정스러운 말을 묵묵히 들어주어야 했다.

그리고 언니가 나를 걱정하는 마음을 알기에 기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언니가 여름휴가차 친정에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보고싶은 마음에 퇴근하는 남편을 윽박질러 친정으로 갔다.

물론 언니가 친정에 내려오면 언제나 언니를 보러 달려갔기에 남편은 씻지도 못하고 군복만 대충 벋고 나를 따라나섰다.

반가운 언니를 보고....... 역시 다음은 늘 마찬가지로 언니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정말 서글펐다.

언니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일년에 고작해야 명절, 아버지 기일, 그리고 간혹 그 날과 같이 어쩌다 한번 휴가삼아 내려올때가 전부로 한 5~6일 정도 된다.

그리고 언니나 나나 마흔줄을 바라보았으니 길게 살아야 앞으로 40년

기껏 많이 만나봐야 240일...... 이것도 넉넉잡아서 만든 날짜다.......

피붙이인 언니와 나는 얼굴을 마주 할 날이 고작 1년도 되지 않는데.......

친정엄마가

언니얼굴을 보자고 달려와 남편의 출근때문에 세시간도 못 앉아있다 간 내가 불쌍해

언니에게 한소리를 했단다.

아무리 동생이 철이 없다고 해도 자기 볼라고 매번 이렇게 달려오는 동생에게 왜 그렇게 심하게 말하느냐고.......

사실 우리 언니는 40년 살면서 너무 많은 일을 당해 왔던 터라 언행이 좀 거칠고 그 거친 언행은 나에게도 여지 없이 잔소리와 함께 쏟아진다.

나는 그날밤 잠을 이루지 못했고 이번만은 참을 수 없어 다음날 친정으로 전화를 했다.

따져보겠노라고......

하지만 언니의 목소리를 듣자 마자 바로 내 마음은 녹아

그저 조심해서 올라가라 말을 하고 끊어버렸다.

서운한 감정을 그렇게 사르라 들었지만

아직도

언니를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답답해 진다.

앞으로도 나는 언니를 보고 싶어하며

언니가 친정으로 내려 온다고 하면 기꺼이 달려 갈것이고

그런 내게 언니는 걱정스러운 맘을 비칠테고

나는 또 마음이 싸해질 것이다.

 

왜 난 30대 초반까지 그따위로 살아서

하나밖에 없는 언니의 늘 변하지않는 걱정거리가 된 것일까.......

모든것이 다 내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