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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아내의 불륜이라는 멍에에 짓눌려 살아오던 당신의 남편, 그 바보같은 남편이 이제서야 처음으로 입을 열었어.
지방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 온 나에게 당신은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지. 밤늦은 귀가, 외박... ... ...
이유 없는 짜증... ... ...
그리고 남편을 경계하는 듯한 몸짓... ... ...
느낌은 분명히 왔지만 지금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많은 밤을 보냈어. 마음 같아서는 당신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하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것마저 쉽지 않았어. 언제부턴가 당신은 가족을 거추장스러워 했고 함부로 대했지. 아이들은 웃고 있다가도 당신이 들어올 시간이 가까와지면 긴장된 표정으로 바뀌어 버리곤 했어. 나도 마찬가지였고...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물어뜯을 것처럼 날카로워진 당신에게 아무도 쉽사리 다가 갈 수 없었어.
그렇게 몇 달이 흘러갔고 어느 날 나는 하는 수 없이 당신의 전화를 몰래 녹음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로부터 불과 며칠 뒤, 나는 당신이 변해버린 이유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어. 출근 길 운전 중, 카오디오에 녹음 테잎을 밀어 넣자마자, 당신과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동시에 나는 거의 혼절할 뻔했어. 더 이상 운전을 할 수가 없었어. 다리가 덜덜 떨려서. 길옆에 가까스로 차를 세워놓고 마음을 진정시킨 뒤, 다시 한 번 들어봤어. 두 손을 모으고 그게 아니었기를 바랬건만 분명 그건 당신의 목소리였어. 그리고 당신과 정답게 연인처럼 대화를 하던 상대방은 어이없게도... 어이없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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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도청... 그게 불법이라는 것쯤은 나도 알아. 그러나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나를 몰아간 건 당신이야. 왜 그랬어? 차라리 나 모르게 하지 그랬어. 그리고 왜 상대가 하필이면...
차라리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그동안의 내 고통은 훨씬 덜 하였을텐데...
내가 아는 사람과의 관계라는 사실이 나에게 얼마나 더 큰 고통을 가져다 주었는지 알아? 그건 아무도 몰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구.
아내가 아무런 말도 없이 한밤중에 귀가하고 때로는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기도 하는데 가만히 있는 남편이기를 바랬던 건 아니잖아. 당신을 사랑했었기에, 우리 가정을 끝까지 지키고 싶었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했고 그만큼 방황의 시간도 길었어.
모든 걸 다 알고 나서부터 또 몇 달을 그렇게 고통 속에서 보냈어. 누구에게 이 일을 가장 먼저 얘기 해야하나 하고. 그러나 그 얘길 들어도 될만한 사람은 내 주변에 없었어. 상대가 내가 모르는 다른 사람이기만 했어도 고통의 세월은 그리 길지 않았을 거야. 아내의 불륜 사실을 내 형제들에게까지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간 당신... ... ...
그 때 난 그냥 꽁꽁 묶인 채였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풀어 나가야할 지...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어. 만약 내가 술을 좋아했다면 그때 난 아마도 술 때문에 죽었을지도 몰라.
몰래 화장실에 들어 가 문을 걸어 잠근 채, 벽에 어깨를 기대고 혼자 눈물 흘린 날도 많았어. 그리고 나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추스리고 나왔고, 어쩌다가 아이들과 마주칠 때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얼굴을 만들려고 애썼어.
거의 반년 동안, 우리나라 상담소의 거의 모든 곳을 찾아 다녔어. 약속이나 한듯 그들은 거의 같은 수준의 애매한 해법밖에는 제시하지 못했어. 용서하고 같이 사는 길밖에 없다는...
요즘처럼 무더웠던 어느 날, 이젠 여기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 남성의 전화라는 상담소에 갔었어. 우선 얼마를 내라는 거야. 지푸라기라도 부여잡고 싶은 마음에 주머니를 모두 털어 오만원을 내고 어렵게 얘길 꺼냈어. 대답은 마찬가지였어. 같이 사는 길밖엔 없다는. 그 이후론 아무 곳도 찾지 않았어.
나 혼자만의 고독하고 피곤한 작업이 또 다시 시작되었어. 비밀 유지를 위하여 나를 처음 보는 사람과만의 상담이 필요했어.
그러던 어느 날 고마운 사람 하나를 만났어. 전화로. 그는 진지하고 성의 있게 나의 아픔을 이해해주고 상담에 응해 주었어. 얘기를 모두 듣고나서 그는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했어. 며칠 후 그는 전화를 해주었어. 핸드폰이 울렸고 그 때, 옆에는 당신이 앉아 있었어. 하는 수 없이 그냥 회사 직원이 업무상 전화를 한 걸로 말을 만들어 그냥 넘어갔어. 그 한 통의 전화가 나중에 당신으로부터 내가 두고두고 괴롭힘을 당하는 계기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
잘못에 대하여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남편으로부터 무언가 잡아내지 않으면 내 인생은 끝이라는 위기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당신에게 그 전화는 마치 구세주와도 같았었나봐.
그 날로 그 전화 사건은 무참히 조작되고 말았어. 내가 여직원과 딴 살림을 차렸다는 어이없는 소설로...
3년이 지난 지금도 당신은 당신이 저지른 일을 아무도 모르고 있는 걸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애. 그와의 관계, 그 깊이가 어느 정도였는지까지 난 다 알고 있는데... 아이들마저도. 당신은 살기어린 표정으로 밤마다 가족들을 못살게 하는 걸로도 부족해서 나를 딴살림 차린 패륜아로 몰아갔어.
어떻게 그리도 터무니없이 조작할 수가 있는거야? 그 조작된 얘기를 친정식구들에게 알려 아이들의 외할머니,외삼촌,이모... 모두 달려 와 집안을 어지럽혔지.
당신이 저지른 불륜의 죄값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궁리해낸 게 겨우 그거야? 강제로 그걸 인정하라고 밤마다 당신이 소란을 피웠을 때 나의 심정이 어땠겠나를 생각해봤어? 딸의 거짓말을 믿고 사위에게 쫓아와 폭력을 휘두른 당신의 어머니... 그 분이 나에게 휘두른 그 때의 폭력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어. 너무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그냥 얼떨결에 당했지만 모두 제 정신이 아니었어. 당신도, 당신의 어머님도, 당신의 남동생도, 여동생도...모두가...
더욱 가증스러운 건, 당신의 불륜을 그들이 모두 알고 있는 상태에서 나에게 폭력이 가해졌다는 사실이야.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줄 알고.
사람은 어려울 때의 행동으로 그 됨됨이를 평가할 수 있다고 하지.
내 딸이, 내 누나가, 내 언니가, 불륜을 저질러 가정에서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을 때 취할 수 있는 행동이란게 고작 사위(매형, 형부)를 궁지에 빠뜨림으로써 잘못을 상쇄시켜보려는 속셈에 밖에 미치지 못할 사람들이리라곤 전혀 생각 못했어.
난 그들과의 인연을 이미 끊었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런 경우에 처했더라도 그건 마찬가지일거야.
여보, 1년이 넘도록 각자 다른 방에서 자고 있는 우리...
그건 당신이 제 정신으로 돌아와 잘못을 자신의 입으로 인정하는 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나의 몸부림이야.
당신은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는 지 모르겠지만... 나는...
앞으로 당신과 내가 영영 한 이불을 덮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혼자 잠 못 이루며 긴 긴 밤을 하얗게 새운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어.
여보,
세월이 흐른다고 지나 온 모든 일이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는 건 아니야.
잊혀지는 일이 있고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해.
100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을 나쁜 일을 저지른 당신...
모두 잊어버린거야? 당신?
아이들과 시어머니가 보시는 앞에서 식칼을 휘두르며 나를 찌르려 했던 했던 그 일을... 그것도 한 두번도 아니고...
TV리모콘, 의자, 핸드폰, 밥상, 전화기, 카메라... ...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마구 집어 던지며 소리소리 지르던 엄마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이들의 눈동자를 생각하면 요즘도 눈물이 쏟아져 내리는 걸 참을 수 없어.
당신이 집어 던져 부서진 의자는 다리가 부러진 채 아직도 마당 한 구석에 저렇게 흉한 모습으로 뒹굴고 있는데...
이제 시간은 많지 않아. 언제까지 당신을 기다려줄 순 없어.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어. 그러면 내가 다시 생각해 볼께.
이혼하기로 서류까지 모두 준비하고 마음의 정리까지 마쳤던 내가 아무런 변화도 없이 예전처럼 살아갈 수는 없는 거야. 이혼을 하자고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거부했던 당신...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진 않았어. 최선의 선택은, 늦긴 했지만 용서를 빌고 새 사람이 되는 거야. 만약 그것만큼은 도저히 못하겠다면 더 늦기 전에 나와 헤어져야 해. 그게 차선의 선택이야.
여보, 나 아직 당신에게 해 줄 일이 많아. 세상 모든 남편들이 그러하듯 인생의 중간쯤에서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보면 삶에 지친 나머지 아내에게 쏟아야 했던 정을 마음만큼 베풀지 못하며 살아 온 날들이 나에게도 많았어.
별처럼 수많은 날들이 남아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이 어쩌면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요즘 당신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저려 와.
쏟아야 했지만 쏟지 못해온 사랑... ... ... 그건 내가 당신에게 진 빚이야. 그 빚을 꼭 갚으려했는데... ... ... 왜 그 빚을 갚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 거야. 바보같이...
갚고 싶어. 꼭... 무슨 일이 있어도.
두려움 때문에 끝까지 이렇게 산다면 그건 어리석은 일이야. 진정으로 두려워 해야하는 건 먹칠된 당신의 명예야. 남편의 명예에도 강제로 먹을 칠하여 똑같이 까맣게 된 상태에서 맘 편하게 살아가려는 당신의 끝없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쓰러지지 않고 여기까지 온 당신의 남편... 불쌍하지도 않아? 쓰러지지 않고만 있을 뿐, 몸과 마음 모두 이미 까맣게 죽어있는 거나 마찬가진데... ... ... 그리고 어린 나이에 그 기나긴 시련을 겪으면서도 엄마에게 그 일에 대하여 한 번 따지고 든 적 없는 바보처럼 순진한 아이들... 겉으론 괜찮아 보일지 몰라도 속은 상처투성인 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야. 그들에게 속죄할 기회를 놓치지 말기 바래. 어서 마음을 바로 잡고 지금이라도 그들을 끌어안고 눈물로 용서를 빌어.
여보, 나 지금 많이 힘들고, 지쳐있어. 맺히고 맺힌 한을 담배로 삭여 왔어. 하루에 두 갑 넘게 피면서... ... ...
당신에게 당신의 인생이 있듯, 우리에게도 각자의 인생이 있어. 나와 아이들이 선택코자 하는 삶의 길에 당신이 박아 놓은 돌뿌리를 이젠 좀 치워 줘. 제발. 그 돌뿌리를 볼 때마다 마음 속의 상처가 온 몸으로 번져 가는 게 느껴져. 눈앞에 매일 보이는데 그걸 외면한다고 안 보이는 건 아니잖아. 침묵하며 세월을 보낸다고 당신 명예에 칠해진 먹이 서서히 벗겨지는 건 아니잖아.
여보, 나, 끝까지 기다릴 순 없어. 그러나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잊지 말기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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