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의식, 우리들의 상식 (하)
결혼한 첫해 추석 아침이 그렇게 지나가고 점심때는 서울 아빠 있는데 또 모이고 ,담날 인천 친정 엄마한테 가서 같이 식사를 하고(명절이면 서너탕 뜁니다,켁~) 남편한테 물었지요. 당신네는 명절 연휴때 외식같은거 하러 안가냐고. 저희 친정은 의식주중에서 ‘식’을 무척 중요하게 여길뿐 아니라 식구들 대부분 미식가에다가 때 되면 외식하거나 판 벌리고 먹는걸 좋아하는지라 남편네는 어떻게 지내나 궁금했거든요. 남편이 그러데예. 우리집은 남은 음식 먹고 조용히 지낸다고. 울 부모님들도 그걸 더 좋아하시는 분이라고. 남편말을 어케 믿습니까. 곰팅말을. 어머님한테 전화를 넣었드니 심심해서 가게나 열까 그러고 있다시데예. 그래 제가 ‘ 연안부두에서 전어랑 소라 사 갖고 올라갈께요, 어머님’ 했더니 좋아하시데요. 아무튼 남편은 자기 부모들이 뭘 원하는지 항개도 모르는 잉간입니다.
막상 사긴 했는데 이걸 우찌해야 맛있게 하나 고민되서 둘째 외숙모님한테 여쭙자 저만큼이나 해물 좋아하시고 또 뭐라도 할라는 새댁 이쁘게 봐주시는 외숙모님이 그럼 우리집으로 갖고 온나, 여기서 다 오시라 해서 먹자 하시데예. (이분 저의 영원한 우방이십니다. 저를 보면서 대리만족 느낀다, 너는 우리세대처럼 살지마라. 내가 옆에서 응원한다 그러는 분이시지요)
결국 남편 이모님 내외까지 합세해 외숙모님댁에서 저녁에 또 한상 벌리기로 했지요. 저랑 남편은 전어에 소라랑 바리바리 싸들고 외숙모님댁에 먼저가 전어 손질하는거부터 초무침 하는거 배우며 상차릴 준비하니 저녁때 되니까 시부모님과 시누이가 오시더군요.
남편이 자다가 나와서 오셨어요 인사하는데 시아버님 왈, ‘니가 여기저기 다니느라 피곤한가보구나’ 하시는데 못마땅한 표정으로 남편을 일갈하데예. 흘.
긍까 이혼해 따로 사시는 장인, 장모한테 따로 따로 마누라한테 이끌려 다니느라 피곤하겠구나 하신거지요, 돌려서. 서운터이다. 남편만 피곤합니까. 그래도 며느리노릇 하겠다고 집에서 남편이랑 오붓하게 쉬고 싶은걸 시아버님, 시누이 좋아하는 전어까지 공수해서 또 부엌에서 종종거리는 저는 안보이시는건지.
게다가 시누이. 딴 때 같으면 부엌으로 쪼로록 와서 일은 안해도 맛있겠다 어쩌니 같이 수다라도 떨 사람이 그날 부엌 근처에도 오지 않고 뾰로통. 그래 이게 인생선배들한테 듣던 어쩔 수 없는 시집식구 마인드구만 헐. 어제 아침에 내가 한딱가리 했다 이거지..한살 많은 시누이 언니야, 니가 지금 시누이 태를 내고 싶은 기구마잉..그으래..? 흠.. 대찬 며느리 마인드 본색도 드러내볼까나..
상 차려지고 맛있게 전어회에 초무침에 이런저런 이바구 하면서 저녁을 먹는데 그래도 시누이 고개 외로 꼬고 제 눈도 안 마주치데예. 식사 마치고 치울때 되자 외숙모님이 치울 준비 하시는데 제가 주방에서 거실까지 들리게 그랬습니다.
‘외숙모님, 이제 설거지는 *씨들 시켜요. ’ 남편이랑 시누이 시키자는 거지요.
긍까 제가 한술을 확 더 떠 버렸습니다. 남편이 언능 일어나 부엌으로 가자 울 시어머니 며느리가 첨으로 시누이도 설거지좀 시키자는뜻 알아차리고 남편이 뭘 할 줄 아냐며 시누이보고 니가 해라 그러데예. 저 가만 있었습니다. 영원한 나의 우방 외숙모님도 눈치 채시고 안말리시데예. 결국 시누이 뾰로통 한 얼굴로 설거지 다 했지요. 설거지 끝내고 다 같이 과일을 먹는자리. 뭔가 낌새를 눈치챈 남편 이모님이 슬슬 말을 끄내시더이다. 부잣집 대단한 홀어머니 외아들 시집살이 끔찍하게 치러낸 분이신데 새댁이 뭔가 눈치가 다르니 저 맘 달래시려고 그럽디다.
‘나도 첨에는 내가 뭐 식모살이 하러 시집 왔나 그런 생각 들었는데 살다보니 다 자기 생각 하기에 달렸드라고.....’ 그래 이 말씀이 물꼬가 되어 그날 생각지도 않게 2라운드가 벌어지게 된것입니다. 이모님이 이런저런 말씀을 하고 끝내고 나서 제가 조용히 아뢰었지요
‘요즘 옛날처럼 며느리들이 식모살이는 안한다 해도 아직 우리 사회가 너무 남성위주의 사회다보니 좀 불합리하다 생각 드는게 조금은 있는 것 같아요, 이모님...’ 하면서 차례, 제사 문화에 대해 얘기를 슬슬 꺼냈지요.
‘사실 페미니스트중에는 제사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저는 결혼전에 제사 지내는거 알고 있었고 또 제가 제사를 거부하면 갈등과 분란이 일어 날것 같아서 제사 자체를 거부할 맘은 없어요, 그런데..’
여기까지 말했는데 울 시아버님 눈이 화등잔 만해 지십디다.
‘페미니스트들이 제사를 거부한다고? 왜?’
‘그게요, 아버님..제사가 남성중심 문화, 가부장제의 정수이자 상징 같은 거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여자들도 제사에 참여하고 여자들도 그 집 식구로 인정되어 자손들이 제사를 모시지 않냐’
‘네 맞는데요, 친정에서 뿌리가 뽑혀서 부가입적되어 그 집안의 귀신이 됬을때 그 가문의 배우자의 지위로 대접을 받는건데 그걸 평등하다고 볼 수는...’
제사 신봉주의자이신 시아버님 여기까지 아뢰자 뭐라 반론 하시기 보다는 그래도 조상을 몰라보는건 어떤거며 몇말씀 훈계를 하시더니 화제를 바꾸시어 며느리의 도리와 헌신, 희생을 거론하시며 서로 희생하고 인내하는게 미덕이지 그걸 식모살이 한다고 생각하면 못사는거지, 딱 그러시데예.
못사는거지라고라..? 음...기분 상해서 암말 못하고 있는데 아버님이 오버하셨다 싶으셨는지 어조를 한결 누그러뜨리시며 아직 서로의 가풍에 대해서도 잘 모르니 이해할건 이해하고 차차 고칠건 고쳐나가자 하시데예. 그래 제가 다시 낯빛 바꾸고 특유의 붙임성 너스레를 발휘해 웃으면서 ‘아버님 그러면요, 우선 자리가 좀 비좁아도 다 같이 상에 앉아서 밥먹구요, 남자들도 같이 일하면 안될까요? 저 어렸을적에 아들만 끼고 남자어른들 끼리 밥먹은거에 한이 맺혀서요, 아버님’ 이래 없는 애교까지 부리며 아뢰었지요.
아버님,‘그러자, 다 같이 밥먹는게 뭐 어렵냐. 안방이 비좁은거 같아서 그랬는데 거실에라도 상 하나 더 피고 그러자꾸나. 그런데 첨부터 갑자기 바꿀수는 없으니 남자들 일하는거는 차차, 천천히 바꿔나가자꾸나’ 그러시데예.
그래서 일단 ‘네, 감사합니다’ 이러고 마무리 할라는데 아놔, 시집도 안간 철 없는 시누이 촐싹 끼어들데예.
‘**이네는 그럼 그렇게 평등하게 명절 지내고 그래?’ 목소리도 제법 뾰족하고.
‘네, 완전하게 평등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누, 올케, 남동생, 제부 다 같이 음식하고 한상에 앉아서 밥먹고 하나밖에 없는 올케만 부엌에서 종종거리게 안해요. 제 여동생이랑 저랑 번갈아 설거지 하고 그러지요’
그동안 설거지 한번 안했던 시누이 들으라 이거지요. 제 말 끝나자 외숙모님이 시누이보고 이거 먹어라 넌지시 불러내더군요, 주방으로. 시누이 니가 낄 자리 아니다, 일루 와라 불러내신 거지요.(이래서 영원한 우방 한명은 꼭 필요한거 같아요^^) 근데 시누이 한마디 더 톡 내뱉고 가데예.
‘큰집 언니(형님)들 안그래도 사이 안좋아서 어렵게 이번에 다 모였는데 앞으로 안올지도 몰라’
아놔, 겨우 한살 꼴랑 더 먹어서는 시누라고. 결혼도 안했으니 언니 니가 몰 알겠냐. 순간 열받는걸 참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꿍시렁 꿍시렁...
쯔쯔. 언니(시누이)야, 그 사람들 안온다고 내가 겁나냐. 내가 차례, 제사 꼭 지내야 한다고 앞장 서서 깃발을 들기를 했냐. 그 말을 나한테 왜 하냐.
아무튼 대충 그렇게 마무리 되고 시어머님께서 최종적으로 ‘앞으로 남자들도 바뀌어야 되, 암튼. 늦었으니 그만 일어나자’시자 해서 일단 그날은 그렇게 넘어갔습니다.
담날. 어머님께서 차나 한잔 하자 부르시데예. 내려가보니 다기 꺼내놓고 정식으로 녹차 우려 따라 주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풀어가시더군요.
‘다른게 아니고 혹시 니가 그동안 불만이 있고 그랬으면 이제 같은 식구니까 맘에 담아두지 말고 할 얘기 있으면 어려워 하지 말고 얘기 하자고 불렀다’
원래 인자하시고 맘 좋고 심약하신 시어머님이지만 이래 편하게 대화를 이끄시니 고맙기도 하고 무척 편하기도 하데예. 그래서 저도 편하게 말씀 드렸습니다.
우선 명절날 아침에 어머님 심려 끼쳐 드려 죄송하다, 이런 자리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 사실 친정이랑 너무 다른 명절날 아침 풍경에 적응도 안되고 좀 놀라기도 하고 또 어머님이 이 연세에 일도 하시는데, 누구 믿고 아버님께서 제사를 가져 오셨나 싶은 생각이 든것도 사실이다, 저희쪽에서 지내야 한다면 제사나 명절 문화를 남자들도 같이 거들면서 지내는 좀 평등한 방식으로 바꿨으면 좋겠다...
‘그래 니 말이 다 맞다만 어디 하루 아침에 바뀌기야 하겠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니가 성급했다 보일 수 있으니 앞으로 차차 바꿔나가자. 시숙들도 집에서는 다 같이 일한다더라. **이(시누)도 앞으로 일 배우라고 내가 시키마. 안그래도 내가 어제 일렀다. 설거지라도 내가 하마 하면서 밀쳐내고 팔 걷어부쳐야지 그런걸 모르냐 한마디 했더니 남의 부엌에서 내가 설치는것도 그렇고 해서 그동안 그랬다 하더라. 내가 안그래도 아버지랑 어제 너는 어디가서 된 시집살이를 해봐야 한다고 했다’
울 어머님 현명하시지요? 시누이는 쫌 말이 안되는 말이고.
나는 결혼전에도 시집 부엌에서 설거지 했구만 시집 부엌은 뭐 내 부엌이냐. 머리도 좋은 시누이 그걸 변명이라고.
그래도 웃으면서 네 네 했지요. 우야든동 말씀이라도 그리 하시니 며늘 입장에서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래 감사하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그랬습니다.
‘어머님, 감사하구요. 앞으로 그럼 제가 여쭐 말씀 있으면 여쭐께요. 사실 저도 앞에서는 시어머니한테 네, 네 거리고 뒤돌아선 혀 쏙 빼무는 그런 이중적인 태도는 싫거든요. 진심이에요’
진심은 통한다니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사회가 가족애, 가족애 얼마나 유난을 떱니까. 근데 그 가족애가 얼마나 여성들의 일방적인 희생과 인내위에 형성되는겁니까. 그리고 사실 가족관계가 들여다보면 얼마나 왜곡 되있습니까. 웃어른이라고 한마디도 못하고 속 앓고 억압당하다보니 저 노인네 언제 죽나 싶은게 오늘날 시집식구, 며느리들의 자화상아닙니까. 그래도 내가 선택한 사람 부모님들인데, 엄청난 악인들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일진데 얼른 돌아가셨으면 하는 맘이 들게 하는 이 구조적 문제, 고쳐야 하는거 아닙니까.
얘기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며 이런저런 이바구를 나누다가 어머님이 뭔 얘기 끝에 그 동안 니가 얼마나 잘했냐, 우리도 기특타 여겼다. 근데 이번 행동은 니가 좀 성급했으니 담번에 형님들 만나면 싹싹하게 잘 해라, **이(시누이)가 그러더꾸나. **이(저)가 집안에서 상종가를 달리다가 주가가 쫌 떨어진거 아니냐고.
흘. 어머님이 저 상종가였다 강조하실라다가 어머님도 말씀을 쑥떡같이 하시긴 했겠지만 시누이가 그랬다니 또 한마디 안할 수 없더군요. 그래 저도 웃으면서 한마디 더 드렸습니다.
‘주가는 뭐 괜히 혼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나요 뭐, 주위의 환경과 재료가 반영이 되서 상한가도 치고 하한가도 치는거지요’ ( 아싸. 내가 생각해도 명언이다! 그리고 속 후련하네!)
그렇게 결혼한 첫해 명절이 지나가고 그 이후로는 저도 웃으면서 할말 하기 전략으로 바꿨습니다. 웃으면서 할말 다하는 푼수때기 며느리 컨셉 있잖습까 왜.
저번에 잠깐 언급했지만 어머님이 며느리는 김장 담그자 해놓고 시누이보고는 니는 사먹어라 그러시면 ‘어머님! 저는 담가야되고 언니는 사먹어도 되요? 어머님 며느리 맘 상했어요. 몰라요 몰라’ 머 이정도 컨셉입니다.
올해 김장때도 갑자기 날을 평일로 잡으시데예. 그래 남편이 자기가 있어야 무도 씻고 날르고 하는데 주말에 하자 그랬더니 배추가 그날 온다고 어쩔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그러고 남편보고 웃으시면서 ‘너 없는날 해치울라 그런다’ 이러시데예?
그래 제가 또 푼수 며느리 컨셉으로 그랬슴다.
‘어머님, 아들 아끼려는 작전 이시죠? 저 삐졌어요. 담부터 주말루 꼭 날 잡아주세요’
물론 이런 멘트를 날릴라면 기분 좋게 미리 챙길 것 챙기면서 해야겠지요.
같이 해서 갖다 먹는 김장이니 당근 생새우, 굴이라도 내 돈 들여 사 날르고, 며느리 도리가 아니라 내 목구멍으로 넘어갈 음식이니 당근 같이 해야 한다며 몇일 전부터 저는 뭐 준비하냐 전화도 하고 그런 다음에 날리니 어머님도 뭐라 못하시는거겠지요. 어떤 경우에는 푼수 컨셉 아니라도 아니다 싶으면 정색하고 못한다 합니다. 아들내미 버젓한데 취직 떡 하니깐 울 어머님 쪼매 목에 힘이 들어가시면서 그 해 명절따라 아침에 차례 지내고 큰큰집에 가서 세배드리고 점심 먹자 하시데예.
친척들한테 아들내미 자랑도 하시고 싶고 아들, 며느리 한복 입혀 대동하고픈 심정 모르겠습니까마는 친정에서 점심때 다 같이 모여 밥먹고 싶은 친정 식구 심정은 또 어케 되는 겁니까.
‘안되는데요 어머님, 친정에서 다 기달려서.’
어머님 아버님 안색 별로고 아버님께서 옛날에는 여자들은 시집오면 그 집 식구 되고 법도에 따르고 그러시길래(컥~)
‘아버님, 저는 **씨란 한 개인과 결혼을 한거지 *씨가문 귀신 될라고 시집 온거 아니에요’ 딱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언능 차례상 치우고 세배만 드리고 친정으로 넘어가는걸로 합의. 그리고 명절 전날 남편델꼬 친정 가서 음식 하고 남동생, 제부, 남편 다 불러모아 음식 시키고 모여앉아 술도 한잔 하고 전야제를 합니다. 남편한테 그랬습니다.
‘당신 부모님들도 며느리 들어왔는데 이야기꽃 피워가며 명절 전야제 하고 싶으시겠지. 내가 그거 다 알지만 내 생각같아선 한번은 우리집 먼저, 한번은 시집먼저 가고 싶지만 ,당신네는 차례도 지내고 자식이라고 꼴랑 둘인데 명절 당일날 우리 빠지면 너무 썰렁할 것 같아서 대신 내가 전야제라도 우리집에서 하겠다는기야. 그러니 당신, 당신부모님 서운해도 어쩔수 없어.’
몇 번의 명절을 지내면서 이젠 어느정도 교통 정리가 되가는듯도 하고 그해 추석 이후로 시누이도 일도 많이하고 남편도 명절날 설거지 해도 이젠 감히(?) 말리는 사람도 없습니다. 한번은 막내 형님이 자기 남편은 죽어도 안할사람이니 미안해 그런가 죽어도 개수대앞에서 안비키길래 제가 할 수 없이 물러났지만 다 들 들으라고 그랬습니다. ‘여보, 그럼 그냥 쉬어. 그리고 친정가서 해’ㅋㅋ
제 맘에 불만이 많이 해소 되니 오히려 시집식구들이 부담스럽지 않더군요. 시부모님 이만하면 괜찮은 분들이고 시누이도 걍 이땅의 시누이다 보니 가끔 시누이 컨셉이 나와 그렇지 식성부터 성격까지 비슷한지라 잘 통하기도 하면서 서로 부딪히면 크게 한판 벌어지겠다싶으니서로 조심하는거겠지요. 아무튼 그 날 이후로 저도 맘 편하게 드릴 말씀은 드리고, 못하는건 못하겠다 말씀드리고, 일주일에 전화도 한번 정도 하고 주말마다 시집간다 그런 원칙 없이 남편 월급 받는 주에는 외식한번 하고 어머님이 갖다 먹을거 있다 불르시면 한달에 두어번 내려가고 특별한 일있으면 가고.. 오히려 관계가 더 편안해지더군요.
버뜨. 여전히 아직 숙제로 남아있는것. 제!사!문!화!
추석 이후로 제사를 두 번 겪고 우울증 비슷하게 빠졌더랬습니다. 남편이 버젓이 취직도 하고 아쉬울거 없고 시집식구와의 관계도 무난한데 제사 때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제사 당일날 되면 페미니즘 까지 들먹일 것 없이 도저히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 일련의 문화들이 저를 짓누릅니다.
근데 울 아버님, 엄하시지만 그래도 인자하시고 경우바른 분이십니다. 근데 며느리가 제사 안좋아하시는거 알면서 우째 그리 큰큰집 제사까지 아들, 며느리 델꾸 가고 싶어하시는지. 게다가 천천히 바꿔가자 하시더니 맘약하신 시부모님들 시숙들 눈치보시느라 바뀌는거 별로 없고 그저 울 남편이 설거지 하는정도. 시숙들 눈치 보니 그나마 울 남편 저거, 저거 마누라한테 꼼짝도 못하는거..이런 눈치고. 그래 어느날 제사 지내고 우울감에 집에서 꼼짝 안하고 유별난 내 자식의도 탓해봤다가, 그래도 이건 불의야 불의! 이랬다가 속 앓고 있는데 시아버님이 남편 일찍 들어오면 같이 큰큰집 제사 가자 전화 하신날, 남편 늦는다 해서 혼자 큰큰집 가신날,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시집에 내려갔습니다. 어머님 좋아하시는 모찌떡 사가지고 내려가 그냥 놀러왔어요,어쩌고 하다가 슬슬 말을 꺼냈습니다. 실은 제가 오늘 어머님한테 같은 여자로서 편하게 드릴 말씀이 있어 내려왔습니다 했지요. 그리고 속에다 쌓아두고 내뱉지 못해 병됬던거 그날 어느정도 다 풀어냈지요.
‘어머님, 전요. 남들은 시짜가 싫어서 시금치도 안먹는다는데 저는 어머님 아버님이 저 다 잘하지 못해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고 잘해주셔서 시금치는 괜챃은데요, 제짜 들어가는 음식이 싫어질라 그래요. 제육볶음, 제비추리, ..암튼 제사가 너무 싫어요 어머님 저 어떡해요.’
‘제사가 그렇게 싫어?’
‘네, 진짜 적응 못하겠어요. 어느 정도 싫으냐면요, 어머님 들으시면 혼내키시겠지만 제사 있으면 여기까지 내려오는 5분동안 막 갈등 생기고 아무 칸막이 있는 호프집에 들어가서 그냥 나몰라 할 강단은 없으니까 맥주 몇병 몇고 집에 가서 걍 잠이나 자버릴까 이런 생각까지 해봤어요‘
뭐 제 생각에도 발언이 위험수위를 넘나드나 싶을 정도였지만 에라, 죽기야 하겠냐 싶어 솔직한 심정을 말씀 드렸지요. 시누이가 퇴근해서 어머님과 제 대화에 동참을 했고, 제가 또 이런저런 얘기를 계속.
‘아니,그리구요 어머님, 페미니즘 들먹일 것도 없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저는 이해가 안가는게요, 유교가 또 강조하는게 모에요? 삼강오륜이다 해서 인간관계안서의 법도와 예의, 질서잖아요? 장유유서라면서 왜 어머님이 부엌에서 종종거리고 밥푸는 동안 시숙들이 먼저 젓가락 들고 밥먹어요? 장유유서 안하고 남존여비 하겠다는거잖아요? 제 눈 앞에서 그런 일이 버젓이 벌어지는데 제가 제사를 어떻게 좋아해요 어머님'
사람 좋은 어머님 왈 ‘우리집으로 오니까 손님이잖냐’ 시누이도 ‘그래, 그렇게 이해해’
‘어머님, 시숙들이 왜 손님이에요? 시숙들은 제주 잖아요 제주. 종법질서에 의하면 그집 아들들이 제주, 긍까 제사의 주체지 어떻게 손님이에요. 손님은 *씨 가문의 타성받이인 제가 손님이지요’. 그러니 시숙들이 사실상 음식도 같이 날르고 상도 물리고 설겆이도 돌아가면서 해야지요. 왜 타성받이들이 상 차려놓으면 의식만 치러요?'
종법질서, 제사의 주체 들먹이며 따박따박 아뢰니까 두분다 별 말 못하고 그저
'왜, 시숙들이 제사 음식 같이 한데 집에서. 왜 안해..마누라들도 다 일하는데 아무것도 안할까' 하시길래,
'제말이요 어머님, 형님들도 다 직장여성인데 제사날은 왜 같이 안해요. 설겆이 한번 안하시잖아요. 왜 제삿날 여기오면 갑자기 사지마비 증세를 보이시는지 모르겠어요'
맘만 좋고 딱 울 남편처럼 심약하신 어머님 제게 되려 묻습니다.
‘그럼 어쩌면 좋으냐..’
그날 뾰죽한 솔루션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날 저 제사때마다 먹고 얹혔던 음식 다 쑥~ 내려갔습니다. 어찌나 속이 후련하던지!
그 동안 맘속에 수십번 되뇌었던 말 밖으로 내뱉으니까 좀 살겠데요. 그날 저희 집으로 올라오는데 거리 공기가 달르데예.
그리고 제사 , 제가 남편 시켜 제사 문화를 바꾸든지(시숙들이 문화를 바꿀 생각이 없슴다. 쩝), 형님들 원하는대로 쉬던지, 가져가던지(큰아버지 제사를 또 이쪽에서 지내는 법은 없다하더군요) 아무튼 나는 이런 제사 문화에 자주 치이면서 못산다 했습니다. 남편한테 진지하게 이바구 했습니다. 내 성격에 어느날 이런 비 상식적인 행태를 더 이상 볼 수 없고 참을수 없다며 갑자기 뛰쳐나오고 제사에 참석 안하겠다 그러고 남는다. 나도 내가 그럴까봐 겁난다. 그러는거보다는 문제 생기기 전에 문제를 풀어가자고. 결국 올해부터 큰집으로 갔는데 아버님이 큰 맘 먹으셨더군요. 니들이 주관하는거니 절에서 지내던, 한날 몰아서 하던 니들 방식대로 해도 좋다시며. 아마 큰 형님이 절에서 모실테고 형편 되는 사람들이 번갈아 참석 하는정도일테니 저도 가끔 참석해야겠지요. 제 성에 차지는 않지만 또 어떻게 세대가 다르고 굳어진 세계관, 가치관이 다른분들한테 제 고집만 부릴수야 있겠습니까.
또 얘기가 장황하게 늘어진듯, 너무 세세한 듯 하네요. 제가 칠렐레 팔렐레 덜렁이면서 또 가끔 이상한 강박증이 있어 전후좌우 설명이 미진하면 그냥 넘어가지를 못하다보니.. 스크롤의 압박에 지치신 분들을 위한 몇줄 요약,
‘할말은 해야 병 안생긴다, 할말 한다고 죽기야 하겠냐. 비상식, 불의에 대항하고 여성 이전에 인간의 권리를 찾자. 인류역사 이래로 기득권층이 갑자기 맘바꿔 기득권 내놓은 적은 없다. 수시로 악악 대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