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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것은


BY 펌 2006-09-07

사람이 사는 것은 글: SHINER


사람이 사는 것은 살아야 할 소망이 있고 꿈이 있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소망이 없고 꿈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다. 내일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오늘을 무기력하게 살 것이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낫겠지 하는 막연하나마 기대를 가지고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죽을 것을 생각하고는 오늘 절망만 할 뿐이다. 종교인들은 다 오늘보다 죽어서 더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고 종교 생활을 하는 것이다. 사후에 영원히 살기 위해 종교 생활을 한다. 천국이 없다면 종교 생활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냥 오늘 먹고 마시고 즐기고 행복하게 살자 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내일에 대한 꿈이 오히려 오늘을 허비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일에 대한 헛된 기대는 일확천금을 꿈꾸게 하고 오늘을 허랑방탕하게 살게 할 수도 있다. 참된 꿈은 현실 안에 있는 내일에 대한 꿈이며 어제를 오늘로 사는 것이다. 천국은 영원히 지금 살아 있음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살아 계신 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살아 계신 분이시다.


사람이 꿈을 먹고 살고 소망을 가져야 한다고 해서 그렇다고 거짓된 꿈을 주겠는가? 거짓된 꿈이라도 주어서 목숨을 부지하고 살게 해야 하겠는가? 그가 그렇다면 그것도 필요하겠다. 육이란 비록 거짓일지라도 헛된 꿈이라도 꿈을 꾸고 있다. 그것은 결단코 헛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지켜준 것이다. 사람이 그 사람에게 맞는 꿈을 가지고 있고 그 사람에게 맞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다. 종교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꿈이 있기 때문에 세상을 활기차게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도 세상 나름대로의 꿈이 있고 소망이 있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하모니카를 그렇게 갖고 싶어 했다. 그것이 나의 꿈이었다. 나는 그 꿈을 이루었고 나는 중학교 다닐 때 십리를 걸어 다녀야 했기 때문에 자전거 한대 가지는 것이 꿈이었고 소망이었다. 자전거를 가진다는 소망에 부풀어 있었다. 이종 사촌이 자전거 한대를 사 준다는 말을 굳게 믿었지만 아직도 자전거를 사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자전거를 사 준다 해도 반갑지 않다. 왜냐하면 지금은 그것이 나의 꿈도 소망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은 성숙하면서 그 바라는 것이 변한다. 이는 그 대상이 바뀌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 속에서 꿈이 바뀌고 소망이 바뀐 것이며 내가 바라는 것이 바뀌는 것이다.


눈이 열리면 전에 좋았던 것이 이제는 아무 것도 아니고 똥보다 못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전에는 그것을 먹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내가 어떻게 그것을 먹었는지 나 자신을 의심할 때도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이 참으로 그들의 원하는 땅이었다면 애굽을 그리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 디딘 가나안 땅은 저들이 바라던 대로가 아니라 심히 척박하고 메마른 땅이었다. 전쟁터였다는 말이다. 저들이 원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이었다. 오늘날도 육적인 자들이 종교 생활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꿈꾸던 가나안 땅이 아니겠는가?


전에는 필요한 것이라도 심지어 오히려 지금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무익하기도 하겠지만 해가 될 수도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솔로몬의 성전에 대한 매력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참 성전이신 그리스도를 배척한 이유였다. 그들은 그리스도 성전을 원한 것이 아니라 솔로몬의 성전을 원했다. 지금도 저들은 그 성전 회복을 위해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 매이고 붙잡혀 있는 사이에 전혀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고 떠나버리신 것이다.


어린아이가 엄마 손잡고 산길을 가다가 아이 눈에 너무나 관심 끌만한 무엇이 보였다. 그는 엄마 손을 뿌리치고 거기서 한참을 놀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자기 혼자인 것이다.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이것이 바로 세상을 사는 인생들의 모습인 것이다. 열심히 돈을 벌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들을 키우느라 분주한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기 혼자 된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가장들의 실태가 아닌가? 내가 왜 사는가? 내가 한 것이 무엇이고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회의를 느낄 때 즈음이면 이미 건강도 다 잃어버렸고 친구도 다 떠났으며 부모 형제들도 다 자기 곁에서 떠나고 없고 아내마저 마음이 돌아서 버렸고 자식들도 등을 돌렸다. 그는 살아야 할 아무런 의욕도 없고 소망도 잃고 절망 가운데 있다. 그 때 그를 구원할 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는 생을 포기할 것이다. 이렇게 위태로운 상태가 바로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대로 행복을 추구하고 살던 인생들의 상태가 아닌가?


사람이 그 생의 끝에서 누구를 찾겠는가? 주님을 찾는 것이다. 인간 누구를 찾아가보았자 다 헛것이다. 그렇다면 사람 중에서 자기를 따르라 할 자가 있겠는가? 자기를 따르면 인생 문제가 해결이 될 수 있다 할 자가 누군가? 그는 자기를 소개시키므로 절망에 빠진 자로 하여금 소망을 얻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를 따라오라 하지 아니하셨다. 다만 아버지를 소개시키셨다. 아버지의 영을 받으라 하셨지 내 영을 받으라 하고 자기 씨를 뿌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아버지의 씨로 오셨고 아버지의 영을 가지고 있었으며 아버지의 영을 뿌리셨다. 그는 자기가 없는 분이시다. 그래서 자기를 따른다고 하는 자들로 따르지 말라 하시고 하나님께 증거를 보이라 하신 것이다. 주님은 자기를 따를 소망을 주신 것이 아니시라 아버지에 대한 소망을 심어주셨다. 사람이 바라는 천국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심어주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집으로 소개시키시고 천국으로 심어주셨다. 천국은 바로 아버지의 집이며 사랑의 아들의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