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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나의 전쟁


BY 돌것같아 2007-09-12

 

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그 당시 남편은 바빠서 한달이면 한번 쉬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사회생활이란 것이 단지 몸만 바쁘다고 힘든 것은 아니란 걸 아마도 다 알 것 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스트레스가 그보다 훨씬 크다. 그러나 힘들어도 어쩌겠는가? 어렵지만 버티는 수밖에, 그때는 유독 힘든 시기여서 남편은 회사를 그만 둘지도 모른다며 세상스트레스 다 짊어진 것처럼 힘들어했을 때였다. 나도 무척 힘겨웠다. 남편은 요만한 것에도 버럭 거렸고 다른 때 같으면 너만 힘드냐고 싸웠겠지만 나도 사회생활 안 해 본 것도 아니고 집에서 까지 스트레스 주지 않으려고 참고참고 또 참고 있었다.

그러나 유별난 시어머니의 독특한 자식 사랑은 다른 사람의 사정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았고, 그때 도련님이 결혼 준비를 하는 중이라 시어머니도 신경이 날카로웠다. 혹시 전화라도 받으면 빠지직 트러블이 났고 그러던 날 보통은 내가 전화를 받았지만 남편이 운 나쁘게 하루 일찍 귀가해서 좀 쉬어 보려는 참에 전화를 받았다. 뭐 다들 알다시피 여자들의 푸념이라는 게 뭔가를 해결해 달라 던 가 조언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남자들의 푸념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 다들 알 것이나 남편은 그런 감각이 좀 없는 사람이다. 어머니로서는 나름 갑자기 오른 집값에 전세 값에 걱정이 한참이었고 결혼시키려면 다들 겪는 여러 문제들로 심사가 좋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소리를 들은 남편은 화가 나서 결국 소리를 질렀고 전화를 끊고 나에게도 짜증을 부렸다. 그런 일이야 심심치 않은 일이었지만 남편은 그런 소리를 했다. 부모님이름으로 보험하나 들고 죽고 싶다고... 그런 소리까지 할 정도니 남편도 퍽이나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아침에도 잔뜩 언짢아서 출근을 했다. 

다음날 어김없이 어머니는 전화를 하셨다. 나는 그런 소리까지 들은 뒤였고, 결혼 한지 7년 차. 가족이라면 어려울 때 얘기를 해야 한 다고 생각해서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다.

요즘 남편이 몹시 바쁘고 회사에서도 일이 잘 안 풀려서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 집에서도 짜증 많이 내고 예민하다고 얘기하고 그러니까 복잡한 문제 말씀 하실 때는 나에게 먼저 말하면 먼저 언질을 줘서 잘 얘기할 테니 나중에 통화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워낙 까다롭고 감정적인 분이라 최대한 순화시켜 얘기를 했다. 나는 그만한 얘기는 해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나만의 오산이었다. 어머니는 대뜸 니가 내 아들한테 전화도 하지 말라는 것이냐 면서 화를 내셨다. 나는 좀 황당했다. 나름 전화 받기 전에 어떻게 말해야겠다고 연습까지 하고 말한 터라 나름 정중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까지 화를 내실 줄은 몰랐다. 나는 사죄를 드렸고 그런 뜻이 아니고 요즘 힘들어하고 통화하고 나면 힘들어하고 짜증도 많이 내서 제가 힘들어 한 소리라고 죄송하다고 몇 번이나 사죄했다. 시어머니는 너 때문에 내가 아들한테 전화도 못하냐면서 전화를 끊으셨다. 나는 다시 전화를 드렸다. 안받으셨다. 그래도 계속 전화를 했다. 이번에는 시아버님이 받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시어머니가 니가 아들한테 전화도 하지 말랬다 면서 울면서 뛰쳐나갔단다. 참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그러나 그런 시어머니를 7년을 보아온 나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안 받았다. 문자로 죄송하다고 10통도 더 메시지를 보냈다. 역시 묵묵부답이다. 시아버지께 전화를 해서 사정 얘기를 하고 도움을 구했다. 아버님 말씀이 며느리가 할 말이 있고, 안 할말이 있단다. 딸이 아니니 말 가려서 하라신다.

그 말을 듣고 깨달았다. 아 며느리는 가족 같은 게 아니구나. 이런 거구나. 그 후 피치 못해 나를 보실 때도 시어머니는 나를 냉대 하셨다. 그게 석 달이 갔다. 볼 때 마다 그때 자신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되새기셨다.

그러나 그 일이 나에게 어떤 변화를 줬는지는 모르실 것이다. 나는 그 일로 완전히 시어미니한테 정이 다 떨어졌다. 참 이상하게도 오만 정이 다 떨어져 나갔다. 시어머니가 항상 그렇게 오래 화를 내는 사람이냐면 아니다. 아들이 잘못해도 3일이 지나기 전에 전화를 하셔서 화해를 청하시고 하셨던 분이다.

결혼 초에 내가 학원에서 강사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시험기간 막바지에 나는 죽도록 힘들었다. 옮긴 학원이 굉장히 일이 많은 곳이라 평소 귀가 시간이 12시를 넘는 게 보통이고 새벽 2시도 흔했다. 당연히 집 꼴은 눈뜨고 볼 수 없는 형편이었다. 눈 뜨면 수업준비해서 나가기가 바빴고, 주말근무도 당연했다. 집안에서는 썩은 내가 났고 산더미 같은 빨래와 설거지거리 바닥도 서걱거리다 못해 끈적거렸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난 게으름뱅이지 부지런한 살림꾼이 아니어서 결혼해서 직장 다니는 일이 너무 고단 했다. 남편은 그 당시 직장을 옮기기 전이라 생각보다는 여유가 있었고 그런 남편을 나는 원망했다. 더러운 집에 들어오는 것도 지긋지긋했다. 그러다 마침 시험이 끝났고 간만에 일찍 귀가를 했는데, 10분도 안 있어서 시어머니가 연락도 없이 들이 닥쳤다. 나는 민망하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했다. 왜 학생시절에 텔레비전을 보다가 막 공부하려고 할 때 공부하라고 엄마가 소리 지를 때의 기분이랄까? 시어머니는 내가 바쁘니까 오기 전에 치워 주러 오신 것 이셨는데, 나는 그러 것이 너무 싫었다. 남편도 아마 내 기분이랑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내 생각을 하니 더 무안했을 게 뻔하다. 남편은 시어머니께 소리를 질렀다. 연락도 없이 오면 어떻게 하냐면서 나가라고 했고, 화가 난 시어머니는 내가 다시는 이집에 오나 보자며 화가 나서 나가셨다. 그리고 남편은 잡지 않았다. 내가 따라 나가는 것도 말렸다. 아마 몇 번이나 들르신다는 것을 오지 말라고 했고, 하도 오지 말라니까 시어머니는 그냥 찾아오신 모양이고 남편은 그래서 화가 난 거였다. 집이래야 지척거리 걸어서 10분정도의 거리이니 시어머니 딴에는 도와주고 싶으셨던 걸 것이다. 내가 가서 사과 하자고 했지만 남편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시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다. 와서 사과 하라고 ......

우리는 다음날 찾아가서 사과를 했고 결론은 시어머니도 남편에게 사과했다. 나는 좀 황당하다고 느꼈다. 그 후로도 시어머니와 남편이 트러블이 생기면 언재나 사흘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내게 화가 나시면 족히 한달은 갔다. 그러나 나도 오빠가 있고 새언니가 있다. 새언니와 내가 똑같이 공평한 대접을 받는다고 나는 말 할 수없다. 그런 건 어차피 어쩔 수 없다고 생각 한다. 그러나 그 사건으로 나는 완전히 시댁에서 멀어졌다.

마음이 좋지 않아서 성당에 가서 기도도 했다. 제 마음에 미움이 들어서서 괴롭습니다. 제발 이 미움이 사라지게 해 주세요. 기도하고 기도 했어도 한번 쌓인 미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같은 여자로서 어머니의 인생을 이해하고 좋아하려고 6년을 애썼다. 처음 1년은 철이 없어서 몰랐지만 다음5년은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살았다. 시어머니한테 속상해도 남편한테 한번도 이런 일 저런 일 미주알고주알 떠들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그 사건 후에 나는 완전히 정이 떨어졌고 남편에게도 정이 떨어졌다. 그때부터 나는 불평했고, 전화도 퉁명스럽게 받았다. 마주치기가 너무 싫어 졌고 지난 모든 묵은 원망들이 되살아나서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 갈 수가 없었다.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되고 미움과 원망이 싸여서 그 후로는 트러블이 잦아졌다.


그리고 20일 전에 다시 분쟁이 발생했다.

잠시 직장을 다니는 동안 나는 맘이 편해졌다. 퇴사 후에 시어머니는 다시 매일같이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가져다 줄 것이 있다는 전화였다. 우리가 찾아가면 좋겠지만 남편은 여름 철 내내 근 2달간 한번도 안 쉬고 출근했다. 주말에도 출근은 계속되었고 피곤으로 완전히 찌들어서 그렇게 놀기 좋아하고 컴퓨터 중독인 남편이 집에만 오면 먹고 자기 바빴다.

나는 이사를 온 후에 집들이를 안 해서 쉬는 동안 집들이를 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그래서 홍삼이랑 복숭아랑 옥수수를 주신다고 매일 전화를 하셨다. 나는 그러라고 했지만 시어머니도 한가한 분은 아니셔서 교회에서 많은 시간 봉사를 하시는 관계로 바쁘셨고 시아버지께서 차를 놓고 가시는 때를 기다려야 해서 차일피일 미루며 매일 전화를 하셨다. 그리고 시아버지께서도 내가 몇 가지 도와드릴 일이 있어서 그 주 내내 두 분의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금요일 밤에 남편이 들어와서 토요일에 쉬고 일요일에 출근한다고 통보를 했다. 나는 모처럼 하루 쉬는데 잠이라도 푹 자게 해 주자는 생각에 핸드폰을 꺼 놨다. 그리고 남편은 집에 오는 전화를 잘 못 받게 했다. 너무 피곤해서 회사에서 오는 전화를 받기 싫어라 하는 마음을 나도 십분 이해하기 때문에 토요일은 전화를 아주 소거하고 계속 재웠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남편은 하루를 거의 잤다. 일어나서 먹고 한 시간을 못 버티고 다시 잤고, 저녁 9시 무렵에야 일어났다. 우리 집 전화기는 그때서야 켜졌고, 회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남편은 통화를 했다. 내가 화장실에 있을 때였다. 나는 몰랐다. 핸드폰을 12시 넘어서 다음날 알람을 위해서 켰더니 엄청난 양의 시어머니로부터 부재중 전화와 친정으로부터 전화가 와 있었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나는 다음날 전화를 해야지 하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새벽에 7시도 안돼서 친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시어머니가 친정에 전화를 해서 애들이 연락이 안 된다고 하셔서 무슨 일인가 걱정을 하셨다는 거였다. 시어머니가 연락이 안 되서 남편회사로 전화 했더니 쉰다고 하고 집이랑 핸드폰은 안받고 해서  전화를 하셨다는 거였다.

나는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일주일 연락이 안 된 것도 아니고 전날에도 통화를 했다. 아마 나라면 둘이 놀러 라도 갔나 했을 것이다. 그게 우리 친정에 전화 할만한 일이었는지 나는 도통이해도 안되고, 화가 났다. 전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전에 진청엄마가 다리에 심한 골절을 입은 일이 있었는데, 놀라서 토요일에 병원으로 간다고 연락하고 가는데 시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뭐 하냐고 하셔서 친정엄마 병원에 가고 있다고 차안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가는 길에 들르라셨다. 병원은 수원, 시댁은 송파. 우리 집은 일산. 들리자면 좀 돌지만 잠깐 못 들릴 거리는 아니다. 그런데 집에서 수원으로 바로 출발하면 전혀 다른 길 이었다. 그래도 들렸다. 시어머니는 집에 없었다. 금방 오신다더니 2시간이 넘어서 나타 나셨다. 우리가 일찍 출발 한 것이 아니어서 나는 좀 불쾌했다. 별일은 없었다. 그냥 계속 기다리다가 시어머니 오시고 얼굴만 보고 우리는 병원으로 갔다. 친정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는 다 늦게 뭐 하러 오냐고 하시며 오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는 다시 차를 집으로 돌려야 했고 다음날 다시 갔다.

우리가 시댁에 들린 지 오래 되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 주에도 시댁에 갔었다. 전부터도 친정에만 간다고 하면 오만 핑계로 불러들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벌써 목소리가 달라졌다.

나는 정말 지긋지긋하다. 시댁은 옥황상재고 친정은 딸 가진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그 역겨운 발상이 싫다.

나는 하루 연락이 안됐다고 친정에 전화를 한 시어머니가 진짜 증오스러웠다. 친정엄마는 이해하라고 너무 사랑해서 그러는 거라고 했지만 나는 구역질이 날만큼 싫었다. 적어도 연락이 됐으면 친정 부모님 걱정하시니 전화를 해드리라고 말 하던가, 아니면 시어머니가 전화를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자기만 연락됐으면 다른 사람이야 나 몰라라 하는 그 심보가 아주 징그럽고 싫었다.

그래서 남편한테 전화를 했다. 나 지금 시어머니랑 통화하거나 만나면 좋은 말 안나오니까 못 오시게 하고 전화하지 마시게 남편이 얘기하라고 그러고 다음날부터 시댁에 전화 안하고 전화도 안받았다. 뻔히 나한테 전화 했다가 안 되면 남편한테 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일러둔 거였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도저히 시어머니랑 통화 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런데 3일 후 시어머니는 전화를 했고 정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날 찾아오신다고 전화를 하셨다. 나는 뚱하니 전화를 받았고 도저히 얼굴 볼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중에 오시라고 했다. 그러니까 너 왜 그러냐며 추궁을 하신다. 나는 결국 못 참고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냐고 대들었다. 역시 역정을 내신다. 친정 때문에 시어머니한테 감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신다. 난 시댁보다 내 친정이 백배는 소중하다. 시어머니는 말씀하신다. 너를 이해할 수가 없다고, 너한테 중요한 게 뭐냐고. 나는 시어머니가 더 이해가 안 된다. 어떻게 그렇게 까지 이기적일 수가 있는지. 나는 시어머니와 통화 할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었다. 말이 곱게 나가지 않는다. 바락바락 대들었다. 시어머니는 말씀하신다. 네가 맘에 안 들어도 참았는데 다시 생각해야겠다고, 나는 그러라고 했다.

전 같았으면 죄송하다고 당장 빌었을 것이다. 그러나 난 그러기 싫다. 안 그러기로 마음  먹었다. 아마도 중간에서 남편만 죽어나갈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난 고소하다. 다시 생각해 보겠다니 황당하다. 이혼이라도 시키고픈 모양이다. 나의 입장은 ‘그러시든 지’다. 이미 작년에 오만정이 다 떨어졌다. 그동안 길면 삼일에 한번 대부분 매이매일 전화를 해서 나와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시어머니와 간만에 통화를 안 하니 맘이 너~ 무 편안하다. 결혼 8년 만에 처음으로 휴가 때 ‘와라. 같이 휴가가자.’ 하는 공세에 시달리지 않아서 행복했다. 얼마 안 있으면 추석 이다. 가야겠지 하고 생각하면 맘이 무겁다. 이간질에 고자질 비교하기. 앞에서는 예쁘네 어쩌내 하면서 그간 자행했던 시어머니의 끝없는 정신공격을 또 당할 맘은 없다. 만약 시어머니가 내쫒으면 두말 안하고 뒤돌아 나갈 것이다. 차라리 친정 가서 엄마한테 아양이나 더 떨고 말지 더 이상 그 이상스러운 집착에 속박당할 마음이 내게는 없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진짜 미치겠다. 사실 시어머니는 선물을 자주 해 주신다. 비싼 것도 사주신다. 그런데 난 시어머니께서 주시는 건 하나도 안받고 싶다. 사람이 맘이 편해야지. 선물로 온갖 생색은 다 내신다. 이런 시어머니가 어디 있는냐!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 주는데.... 나에게 별로 소용도 없는 것들이다. 취향도 다르다. 어이없는 선물도 많았다. 결혼 후 첫 생일에 핸드백과 30만원을 주셨다. 그리고 다음날 전화를 하셨다. 다음 달 시아버지 생일에 골프채 선물하기로 했으니 30만원 내라고, 시아버지 와 나와 의 생일은 거의 한달 간격이다. 사람들 앞에서 생색내고 선물 주더니 도로 달란다. 그것도 바로 다음날. 참 기분이 별로다. 차라리 핸드백만 주셨으면 감사했을 것 같다. 아니면 시아버지 생일 열흘 전쯤 말씀을 하시거나.

생일이거나 잦은 여행 후에 주시는 선물들이 시어머니의 자랑이다. 자신이 얼마나 좋은 시어머니인지 항상 강조하시면서 주신다. 그런 걸 받고 기분 좋을 사람이 몇이나 있는지 궁금하다. 동서는 뭘 받으면 두렵단다. 뭘 또 얼마나 달래려고 그러시냐고. 상처 될 소리도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하신다. 나는 동서가 생기기전 어머니 주변의 40~50대 아주머니나 작은 어머니와 끈임 없이 비교 당해야 했다. 20대에 40~50대 아줌마와 비교 당하는 기분 아마 아는 사람 쉽지 않을 것이다.

아 나는 정말 시어머니와 정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100장도 쓸 것 같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