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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


BY 판도라 2007-10-01

 

판도라의 상자...

내가 열은 판도라의 상자에도 아직 희망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느집과 마찬가지로 고속도로에서 시간도 좀 보내고 온 가족들 다 모여 차례에, 성묘에 별 다를바 없는 그런 추석 연휴를 보내고 귀가 했습니다.

27일 남편이 서울 출장 계획이 있어서, 아이들을 등교 시키고, 평소 출장에 늘 이용하는 KTX표가 없어서 비행기표를 예매 했기에, 서둘러 김해공항까지 배웅해 주고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려 우유도 사고, 두부도 사는 그런 평범한 아줌마의 평범한 일상 이였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아침에 남편이 급하게 나가며 확인하고 채 닫지 않은 메일함이 열려 있었습니다. 전에도 종종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날따라 왜 남편의 메일함을 살펴보게 되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받은편지함]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업무와 관련된 메일들.. ‘이 사람은 친구들하고도 메일 안하나? 참 무미건조하게 사네..’ 하는 생각으로 무심히 다음페이지를 클릭하며 발견한 메일...

“kim yoon". 그 다음 페이지에도, 또 그 다음 페이지에도 계속 이어지는 발신자의 이름과 친근한 메일 제목들...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보낸편지함]을 열어보았는데, 남편이 보낸 메일은 없더군요.

그런데 느낌이라는 것이 무섭죠? [휴지통]을 클릭하고 남편이 보낸, 또는 그녀가 보내온 메일들의 일부가 그곳에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손이 떨렸습니다.

앞이 깜깜해졌습니다


그것이 내가 열어 본 판도라의 상자입니다.

그 안에 내용들..

아... 뭐라 표현을 해야 할까요?


남편과 나는 16주년 결혼기념일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메일속의 여자와는 10여년전의 추억까지 곱씹으며 거의 매일 애틋한 메일을 주고받았더군요.

10여년전.. 내가 둘째애를 낳고 심한 산후우울증으로 하루 종일 베란다 난간을 잡고 죽느냐 사느냐를 고민하던 그 때입니다.

산후조리를 위해 오셨던 친정엄마가 그런 내 모습에 행여나 말 한마디가 자극이 될까봐 아무 말씀도 못하시고 내 등 뒤에서 숨죽여 눈물 흘리시며 걱정하던 시간들 그 때입니다.

내가 스스로 “엄마, 내가 혹 작은애에게 해코지라도 하면 강제로 병원에 입원시켜...‘하던 때였습니다.


메일의 내용으로 보아 그녀는 지금 미국 LA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1년 전쯤 그녀가 귀국 했을 때, 남편이 바쁜 일정에 비행기를 타고 그녀를 만나러 서울에 다녀왔더군요. 물론 나는 출장인 줄 알았겠지요?

서울.. 가까이서 늘 만나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쯤이야.. 해야 할까요?

해외출장을 가며 LA에 들려 그녀와 하루를 보내고 다음 출장지로 가기도 했더군요.

그리고 그녀가 새롭게 골프를 배우고 있다고...

LA에서 함께 그녀의 남편을 속이고 골프를 함께 칠 그림을 그리고 있더군요.


난 지난 결혼생활 16년 동안 이렇다 하게 목소리 높여 부부싸움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남들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고 하는데..

난 그랬습니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내 심장이 기형이라 갑작스럽게 큰 소리를 내며 터지는 풍선소리에 기겁을 하며 놀라고 작은 충격에도 바들바들 떨며 쇼크를 받기에 난 체질적으로 싸움을 피하며 참고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가슴에 담아두다 신경성 위경련 발작으로 병원을 찾거나, 극심한 편두통을 진통제로 다스리며 나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남편이 신혼 초부터 늘 하던 말 중의 하나가.. [자신은 아버지처럼 그렇게 살지 않는다.] 였습니다.

시아버님은 올 해 80의 고령이지만.. 그 연세에 대학원을 마친 고학력자이고, 젊은 시절 마찬가지로 대학을 다니고 있던 여자와 사귀고 있었지만, 집안에서 엮어준 중학교 입학도 못한 시어머님과 결혼 하셨고, 아버님은 한평생을 어머님을 대놓고 구박하고, 비교하고, 괄시하며 사셨고, 그 한이 쌓여서 일까요? 어머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6년의 병상생활을 하시다 작년에 돌아 가셨습니다.

그런 어머님이 아들의 눈에도 너무나 불쌍하게 보였었던 거겠죠.


남편은 나를 몰래 1년을 지켜보며 주변을 탐색하다가 프로포즈를 했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님이 남편에게 “네 선택에 후회 없겠니?”그 한 가지 물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자신있게 “내가 엄마의 삶을 봐 왔는데.. 후회 안해요. 내 선택에 충실하며 살거에요.” 했다고...


어머니와 나눈 그 약속 때문 이였을까요?

분명 남편이 나와 아이들에게 충실하긴 했습니다.

더 할 수 없이 가정적인 남편이자 아빠였습니다.

친척, 친구, 동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남편을 일컬어 [처자식이라면 꺼벅 죽는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꼽을 정도의 사람 이였습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이 번 일에 내가 더 큰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27일 늦은 시간 출장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마중 나갈 때 입술 깨물며 다짐을 했었습니다. ‘오늘은 아니야, 내가 정신을 차리고, 냉정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야 해. 절대로 울지 말자. 내색하지 말자...’

부산역에서 픽업해 돌아오는 길에 어두워진 내 안색을 살피며 “어디 아파? 왜? 무슨 일 있어? 애들이 속 섞였어?”하며 내가 아는 아니, 그렇게 알고 있었던 다정한 남편의 모습에 눈물이 왈칵 일어 시야가 흐릿했었습니다. 그래도 꾹 참았습니다.


그 후로 복사 해 둔 두 사람의 메일들을 얼마나 많이 읽어보며, 내가 놓친 부분은 없는지. 내가 오해 하거나, 너무 앞서가는 부분은 없는지.. 내가 과잉반응을 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살피고 살피고 또 살피며 수 없이 반복해서 읽어봤습니다.


그래도 내 머릿속에서는 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런 내가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그녀가 멀리 있으니... 그냥 또 내 가슴에 묻고 넘어가야 할까요?

그러기에는 내가 말라 죽을 것 같습니다.

그 날 후 난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고, 몸과 생각이 따로 반응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를 꺼내어 현실화 했을 경우 남편이 보여줄 반응이 어떠할지 두렵고, 겁도 나고, 그 후 내가 어찌 해야 할지.. 아무런 판단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내가 어찌 해야 할까요?

엄마의 그늘진 얼굴에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 작은애가 자기가 속 썩여서 엄마 마음이 아프냐고 묻습니다.

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빨리 정신을 차리고 수습을 해야 하는데...

누가 나에게 해답을 알려 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