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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해야겠다 2


BY 도라지꽃 2008-03-28

 

이제는 말해야겠다 2


 여섯 살 무렵에 나는 두메산골에 살고 계시던 조부모에게로 보내진 적이 있었다. 나는 부모에게 단 한 번도 그 곳으로 보내달라고 떼를 쓰거나 부탁을 한 일이 없었다. 부모의 일방적인 조치였다. 그 때 나보다 두 살 많은 언니도 있었고 나보다 어린 동생도 둘이나 있었다. 아버지는 자갈로 뒤덮인 비포장도로 위를 마치 로데오 경주를 하듯 울렁거리는 완행버스에 나를 ‘싣고’ 가서 한참이나 걷고 또 걸어 골짜기로 들어가 한 때 무장공비가 출몰하여 일가족을 몰살시킨 일도 있었다는 (훗날 할머니한테서 들은 얘기다.) 강원도 두메산골 외딴 오두막에 떼어놓고 홀연히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때 동네의 내 또래들은 교회나 성당의 유치원에 다니거나 적어도 친구들과 함께 소꿉놀이를 하며 또래들에게 한창 관심이 많았을 터였다. 그러나 나는...


 그 곳은 첩첩산으로 둘러싸인 상두메산골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곳에서 오랫동안 화전을 일구며 살아온 화전민의 후손이었다. 오두막의 부엌에는 외양간이 붙어있었고 황토로 싸바른 부뚜막과 아궁이, 윤기 나는 검은 가마솥과 놋쇠 화로, 부엌 한 켠 구석진 곳에 늘 쌓여 있던 불쏘시개와 장작더미, 부엌 뒤 켠에 딸려 있던 작은 광, 조부모와 내가 늘 함께 머물렀던 온돌방 하나가 오두막의 전부였다. 그 해 여름, 마당 끝자락을 적시며 무심히 흘러가던 맑은 샘물만이 여섯 살 계집아이의 유일한 말동무였다.

 

  귓가에 대고 고함을 치는 듯 유난히 크게 들려오던 소울음 소리에 놀라 눈을 뜨면, 내 머리맡에서 할머니가 사그락사그락 반백의 머리를 빗질하시고 은비녀로 곱게 질러 누른 뒤 희디 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신다. 할매... 꽉 잠긴 목소리로 내가 부르면, 할머니는 ‘더 자그라.’ 한 마디 하시고 부엌으로 난 작은 봉창문을 열고 나가신다. 할머니의 고무신 발소리는 나지막하고 조심스럽게 마당과 부엌을 오가며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가마솥 뚜껑을 열고 닫는다.

 

  아침상을 물리고 나면 할머니는 오두막 뒤켠에서부터 산자락까지 길게 뻗어있는 콩밭에서 밭을 매시고 할아버지는 지게를 어깨에 둘러메고 소를 몰고는 휘적휘적 산으로 향하셨다. 아직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을 때라 딱히 할 일도 볼꺼리도 텔레비전도 없었던 그 곳에서 여섯 살짜리 계집애가 할 수 있는 놀이는 고작 마당 한가운데 쪼그리고 앉아 돌멩이로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그림을 끄적이다가 가끔씩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점처럼 점점 작아지며 멀어져 가는 할머니의 희디 흰 머릿수건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저러다 할머니가 내 눈 앞에서 사라져버리지나 않을까 애가 타서 벌떡 몸을 일으켜 입에다 손나팔을 하고는 “할머니이-!”하고 부르면 할머니의 대답보다 “할머니이-!”하는 목멘  메아리가 먼저 돌아왔다. 할머니가 호미를 들어 무어라고 소리를 지르시긴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혼자 생각한다. ‘곧 내려 가마. 조금만 기다리렴. 할미가 가서 맛난 거 해 줄꺼이.’ 그러다 또 생각한다. 맞아, 여긴 과자 가게도 하나 없고 집에서 엄마가 해 주던 계란 카스테라를 할머니는 절대 만들지 못할 텐데......

 

  그 해 여름의 초입, 군것질에 목말라있던 나에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오두막 둘레 콩밭 기슭으로 발갛고 오동통한 산딸기가, 언젠가 집에서 동화책에서 보았던 삽화의 산딸기 덩굴처럼 흐드러지게 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떤 날 할머니와 나는 아침부터 한나절씩 그 지천으로 흐드러진 산딸기를 따면서 제법 재미지게 놀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원피스 앞자락을 모아 쥐고 거기에 산딸기를 따 담았다. 할머니가 옷에 딸기물이 든다고 걱정하셨지만 난 아무래도 좋았다. 할머니가 오목한 유리 그릇에 딸기를 가득 담고 하얀 설탕을 끼얹어 숟가락으로 싹싹 비벼 주시던 그 순간, 나는 하마터면 눈물을 찔끔거릴 뻔 했다.

 

 마당 끝자락을 적시며 조잘조잘 흘러가던 샘물은 할머니에게는 김치냉장고요, 나에게는 전용 풀장이었다. 그 여름에 나는 알몸으로 샘에서 자맥질을 하며 놀았고 할머니는 플라스틱 김치 항아리를 샘물에 띄워놓고 수시로 김치를 손가락으로 꺼내 가늘게 찢어 내 입에 넣어주시기도 하셨다...

 

  그래, 그랬었다. 그렇게 그 해의 여름이 다 지나가도록 집으로부터 어떤 기별도 들을 수 없었고 아무도 나를 보러 찾아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삼십여 년이 흐른 지금에 와 돌이켜 보면 그 때, 그 여름이 다 가도록 나 또한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자매들 그 누구도 그리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막연한 서러움같은 것이 명치께로 자꾸만 차올라 오곤 했다. 할머니가 읍내 장에 가시던 날에 무뚝뚝한 할아버지와 오두막에 있노라면 나는 알 수 없는 괴괴함과 칙칙함 때문에 한사코 밖을 떠돌아야 했다. 게다가 비 오던 어느 날 오후, 나는 할아버지의 쇠라이터를 가지고 놀다가 누워 계시던 할아버지 이마를 내리때리게 되었고 할아버지는 반사적으로 나를 발로 냅다 걷어찼다. 그래서 나는 방문 밖 마당으로 나가떨어졌던 일이 있었다. 뒤늦게 장에서 돌아온 할머니는 덩달아 나와 함께 마당으로 쫓겨나셨다. 할아버지는 어둠이 내릴 때까지 곤하게 주무셨고 할머니와 나는 낙숫물을 바라보며 부엌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할아버지가 일어나셔서 어서 사면(?)을 해 주시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렸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는 할아버지가 너무 무섭고 싫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장에 가시는 날이면 나는 서둘러 아랫말 쪽으로 내리뻗은 오솔길을 따라 걸어서 서낭당 앞 너럭바위 위에 앉아 할머니가 돌아오시기만을 눈 빠지게 기다렸다. 할아버지가 때때로 ‘그러다 쥐도 새도 모르게 문둥이가 망태에 넣어 잡아가 버린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셨지만 솔직히 나는 그 때 문둥이보다 할아버지가 백배는 더 무서웠다. 사실 그 때 나는 문둥이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으니까. 할머니가 장에서 돌아오시다가, 서낭당 앞 너럭바위에 앉아 아는 노래란 노래는 죄다 불러가며 뚫어져라 길모퉁이를 지켜보는 나를 발견하시고는 잰걸음으로 걸어오실 때면 나는 눈밭을 내달리는 강아지처럼 좋아라 할머니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러면 할머니는 머리에 이고 있던 장보따리를 너럭바위 위에 풀어 놓고 나에게 라면땅 봉지를 쑥 내미셨다. “이건 여기서 다 먹어야 한다.” 그 말은 무슨 비밀이야기라도 되는 듯 은밀하고 나지막했다. 왜 그래야 하는지 그 때는 잘 몰랐는데 아마도 할머니가 나를 위해 라면땅을 사다 먹이는 것을 할아버지가 무척 싫어하셨던 모양이었다.

 

   먼 훗날, 내게는 문둥이보다 더 무섭게 각인되었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가 언니와 동생에게는 따뜻하고 유머스러운 데가 있는 자상한 할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또 한 번 나는 내 존재의 근원을 알 수 없는 밉상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다.

 

  나는 알고 싶다. 왜 그 때 하필 나여야 했는지. 또래집단이 꼭 필요했던 그 시기에 왜 하필 원시림 속으로 나를 격리시켜야만 했는지... 나는 아직도 묻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절대로 이 말을, 이제는 내가 내 마음으로부터 밀어내버린, 한때는 내 부모였던 분들께 절대로 입 밖에 내서 묻지 않으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