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해야겠다 5
4월이 오고 있다. 내가 유년을 보냈던 그 곳은 이맘때면 연보랏빛 진달래가 꽃천지를 이룬다. 진달래는 중년을 바라보는 지금이나 그 때나 나를 슬프게 한다. 특별한 이유같은 건 없다. 그 어렸던 시절에 그 처연한 꽃이 ‘진달래’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도 모르고 그 꽃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어딘가 내 마음 한 자락을 많이 닮았다고 느꼈을 뿐이다.
언니는 학교에서 공부를 무지막지하게 잘 해오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언니가 학교에서 가져오는, 빨간 모나미 색연필로 선명하게 ‘100점’이라고 쓰여 있는 8절 시험지를 가지런히 빨래집게로 집어서 옷걸이용 못에 걸어두고 보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매달 월말 고사를 보고는 성적 우수자에게 초록빛 ‘우수뱃지’를 달아주곤 했는데, 연속으로 세 번 우수뱃지를 달게 되면 노란색으로 특별 제작한 ‘3우수 뱃지’라는 것을 달아주기도 했다. 언니는 3우수 뱃지를 절대 다른 학생들에게 넘겨주지 않을 정도로 공부를 잘 해내고 있었고, 동네 아낙들에게 그것은 자주 화젯거리로 떠오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얼굴은 언니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어쩔 수 없이 감추지 못했다.
나는 그 해 3월에 국민 학교에 입학을 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가 나의 출생 신고를 1년 뒤늦게 하는 바람에, 아직도 미취학 아동으로 동네 공터를 배회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내게 있어 더욱 적지 않은 소외감을 안겨준 일은, 어느 날부터인가 아침부터 한나절까지 공터에서 내 또래의 친구들이 대부분 모습을 감춰버린 일이었다.
교회에서 목사님이 나를 교회 유치원에 보내라고 우리집에 오셨다 가신 일도 있었고 아우라지에 있는 성당에서 수녀님 두 분이 성당의 유치원에 나를 입학시키라고 다녀가신 일도 있었다. 수녀님들이 우리집에 방문했을 때 엄마는 이런 말 한 마디로 수녀님들의 발길을 아주 손쉽게 돌려놓았다.
“우리 큰애는 유치원 안 보냈어도 학교에서 공부만 잘해요.”
하지만 엄마가 나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몇 가지 이유 중에는 우리 집안이 대대로 ‘산신’과 조상신을 숭배해 왔으며 교회신들과는 절대로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도 들어 있었다. 사실 그런 것까지는 내가 시시콜콜히 알 바가 아니었지만 바로 옆에 엉거주춤 서 있었던, 당사자인 나에게는 단 한마디의 의논도 없이 엄마가 단칼에 그들의 제의를 무산시켜 버린 일에 대해, 나는 절대로 티를 낼 순 없었지만 속으로는 몹시 분개하고 있었다. 언니가 유치원을 다니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엄마는 언니에게 피아노 교습과 미나리꽝 옆에 사는 어떤 젊은 아줌마한테 과외 공부를 시키고 있었다. 게다가 읍사무소 뒤에 곧 주산 교습소가 생기면 언니를 주산까지 시키겠다고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되었건 간에, 동네의 내 또래들은 아침에 유치원에 갔다가, 한나절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와야 했으므로, 점심 때가 훨씬 지나서야 공터에 한둘씩 모습을 드러내었다. 또래들이 유치원에 가 있는 동안 나는 나 혼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체득해야 했다. 소꿉을 가지고 모래를 퍼담으며 한나절을 보내기도 하고 어느 집 나무 울타리에 기대어 앉아 졸릴 정도로 따사로운 햇볕을 쪼이다가 그대로 꾸벅꾸벅 졸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나름대로 커다란 결심과 비장한 각오를 하고는 길을 나섰다. 내가 혼자 공터를 배회하거나 울타리에 기대어 졸고 있을 때 유치원으로 간 친구들은 그 곳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알고 싶었다. 성당이 있었던 아우라지는 그 때의 나로서는 혼자 걸어서 갈 엄두를 낼 수조차 없는 먼 거리에 있었으므로 나는 가까운 아래 동네에 있는 교회 유치원을 목적지로 결정하고는 무작정 신작로를 따라 아래로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가게들이 즐비한 신작로를 거쳐 연탄 공장을 지나면 읍사무소가 나온다. 읍사무소를 지나자마자 바로 그 아래에 국민학교 분교가 들어서 있고 언덕배기에 그 교회가 있다. 마치 교회가 분교를 내려다보고 있는 형국이다.
나는 교회 마당을 지나, 경쾌한 풍금 반주에 맞춰 부르는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건물을 향해 걸었다. 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그것이 최초였다. 조그맣게 열려진 창문이 있어, 나는 그 창문가로 가서는 까치발을 하고 그 안을 들여다 보았다. 미색 커튼이 눈앞을 가려 전체를 모두 시원스럽게 볼 순 없었지만 언뜻언뜻 커튼이 일렁이는 대로 그런 대로 대충은 구경을 할 수가 있었다. 아이들은 똑같은 유치원 유니폼을 예쁘게 차려 입고 모자를 쓴 채 남자 아이 여자 아이 짝을 맞춰서 두 손을 잡고 율동을 하며 뛰고 있었다. 동네에서 놀 때 내 단짝 친구였던 숙이도 창열이랑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율동을 배우고 있었다. 나는 숙이가 반가워 하마터면 손을 들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나의 ‘훔쳐보기’는 그날 이후에도 몇 번에 걸쳐 계속 되었다. 그러나 얼마 못가 나의 훔쳐보기에 종지부를 찍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날도 나는 까치발로 유치원 교육관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선생님이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고 있었고(아마도 어린이 성경 공부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더러 떠들기도 하고 발장난도 하면서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나도 선생의 이야기에 꽤 푹 빠져 있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크게 터져 나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움찔 하면서 턱을 창틀에 부딪고 말았다. 문제는 그 순간이었다. 턱을 창틀에 부딪치면서도 나의 눈은 몇몇 계집아이들의 집요한 시선과 정면으로 마주쳤고 얕잡아보는 듯한 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은 나의 가슴에 그대로 와서 박혀 버렸다. 나는 무슨 큰 도둑질이라도 하다가 들킨 것처럼 당황스러워 바로 그 자리를 뛰쳐나와 닥치는 대로 걷고 또 걸었다. 울었다.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나의 눈에서는 쉼없이 두 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다.
주먹으로 눈물을 닦다가 문득 올려다 본 산등성이에 진달래가, 연보랏빛 진달래가 불이 붙듯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