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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말이 많은데 할곳이 없다.


BY 바보 2008-10-20

아침부터 참 힘이든다

한솥 가득 끓여놓은 미역국이 사라졌다.

새벽 5시 반 커다란 냄비가 물만 가득차 싱크대안에 놓여 있었다.

월요일 일찍 출근 준비하던 남편은 결국 국없이 급이 계란 후라이와 깍뚜기로 한술뜨고 나갔다.

시어머닌 오랜 치매환자다.

환청과 망상, 이상성격으로  이런 저런 일을 하루에도 수없이 저지르신다.

난, 정말 어느땐 죽고싶단 생각엔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결혼 18년 늘 시부모님의 병수발과 다섯명의 시누이들의 결혼과 그들의 이혼 그리고 복잡한 환경에서 벗어날수없음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사는게 그런거지 하다가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터질듯한데 시간만이 해결해줄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정말 막막하다.

어쩌나, 어떻게 해야하나.

요즘은 잠을 잘수가 없다. 어머님의 발소리가 늘 귓가에서 맴돈다. 한시간 자고 깨고, 또 자다 깨고,

정말 사는게 사는게 아니다.

남들은 이해 못한다. 나 또한 나를 이해 할수가 없다. 난 아무런 해결을 찾을 방법을 생각지 않는다.

그건 내가 이해를 구할 사람들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다 벽이다.

그리고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일 따윈 정말 하기싫다. 짜증이 나기고 한다.

모든 일이 제 얼굴에 침 밷기 라는 냉냉함을 섭섭함을 그것만 남는다는 것을 알았다.

 

참 이상한 가족이다. 우린.

아버님은 특별한 병명없이 (의사는 건강염려증이라고 했다. ) 병원을 수시로 드나듯셨다.

일년이면 거의 절반을. 혹 사람들이 얼굴 좋아지셨다고 하면 그날로 아버님은 드러누우셨다.

흔히하는 인사말인데도 병이났다. 그리고 불쾌하게 생각하고 화늘 내셨다.

아마도 본인을 좀 더 봐 달라는 떠 받들어 달라는 속내가 병을 만들었다 싶다.

병원도 입원을 받아주질 않았다. 그래서 늘 응급실을 통해 서울 시내 병원을 전전하며 입원을 해야했다.

그리곤 입원했다고 일가 친지들에게 전화를 하신다. 일인실에 계신걸 너무 좋아라 하셨다.

하지만 곧 심심해서 4인실로 옮겨 같이 있는 환자들과 재미나게 병원 생활을 즐기셨다.

그러나 때가 되니 아버님은 돌아가셨다. 아무리 몸을 아껴도 때가 되면 가야한다.

왜 그리 죽음이 두려웠는지 심약한 시아버님을 지금은 이해하려고 한다. 가엾다고, 그것도 병일수 있다고.

 

그런데 이젠 시어머니 까지 ...

난 정말 살고 싶지 않다.

난, 환자다. 유방암과 감상선 종양 대장에 까지 그러나 지금 갈 수가 없다.

아이들이 너무 어리고 큰아인 대학준비를 해야한다.

복잡 심난한 가족속에 아이들만 나둘수가 없다.

난 그래서 나의 병을 즐기기로 했다. 같이 가자고, 모르는 것보단 아는 병이니 더 조심하면 더 잘 살수도 있다.

그런데 때때로 난 정리를 한다.

그것도 담담히. 냉정하게.

언제갈지 모르는 나의 뒤를 깨끗이 하고 싶다. 구석구석 버릴것 정리하고 뭘버려야하나 고심한다.

난, 남기고 싶은게 없다. 좋은 그릇, 가구, 집, 살림에도 욕심이 많았지만 아이들에게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런건 허망함것이란걸 뒤늦게 깨달았다.

 때론 억울한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일년 열번의 제사와 집안일 병원비, 그많은 가족들의 사건.

어디서 부터 생각하고 말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시누들의 결혼, 이혼 그리고 또 재혼 그리고 또 이혼...

그것도 한명만 배고 모두들...

그래서 그 복잡한 가족사가 난 싫다.

내 것이 아니었으면 하는 맘 뿐이지만 현실은 그들이 내 가족이라는 것이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 이지만 아이들의 고모이고 할머니고 할아버지니까.

 

우리 어머닌, 치매가 걸린게 지극히 당연하다

치매환자가 될 모든 환경을 갖고 계셨다.

팔십평생 본인 주도로 식사를 한번 챙겨 보신적이 없다.

쌀을 씻어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치고, 무얼 해서 먹을까 고민하고 노력하신적이 한 번도 없다

그래서 시집온지 18년 동안 난 어머니 손에 밥주걱은 커년 부엌에 오신걸 본적이 없다.

그런 어머닐 늘 그려려니 생각해온 다른 가족들이 난 정말 놀랍다.

어머닌 친구도 없다. 형재들과도 그다지 소통하고 살지 않는다. 그들을 늘 원망하고 미워만 하신다.

자격지심 같은 건가.

어머님 형재들은 모두 의사, 약사 교수님들이시다.

부자집 공주님 이시다. 모두다 인정하는. 그런데 그게 난 더 이상하고 놀랍다.

어머닌 나에게 자랑처럼 이야기 하신다. 왜 밥을 하고 청소하고 다림질만해도 비웃듯 하신다.

난 그런거 안하고 살았노라고.

어머니도 가끔 입원을 하신다.

모기물려서 가렵다고. 변비인줄 모르고 배아프다고 입원을 하셨다.

그때마다 모든 가족은 날 밀어댓다. 얼른 일처리하라고.

아이들을 손에걸리고 업고 난 병원과 집을 수 없이 다녔다.

어느날 차가 생겼다.

용도는 병원 다니기 편하라고 남편이 큰맘먹고 사줬다. 난, 정말 웃음이 났다.

병원밥을 한끼도 안드셨다. 아침은 출근길에 남편이 점심과 저녁은 내가 해서 날라야만 했다.

중환자실에서도 우리아버님은 전화로 잡술것을 주문하시곤 했다.

이쯤되면 우리집은 질리는 집안인데 아무도 토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 나도 중년이다.

이렇게 살다가 난 갈 것이다.

변하고 싶다는 의욕도 없어진지 오래다.

 

한동안 너무 우울 했다.

매스컴속에 많은 사람들의 자살과 가여운 일상들...

난, 이해할수 있다.

그들은 너무 외로웠을 것이다. 너무도 여리고 맘 약한 그래서 더 외롭고 갈 길을 찾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맘 약하고 외로운이들을 이용한다. 세치의 혀로, 때론 자신들의 이익과 자신들의 방식으로

괴롭히고 몰라라 한다.

경우는 다르지만 난 먼저간 가여운 이들의 맘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한 참을 앓고 병원신세를 져야했다.

 

오늘 아침 옛 은사님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 분도 사모님을 먼저 보내시고 은퇴후 여행과 독서로 그리고 읾상을

보낵고 계셨다.  에너지 넘치게 활발히 활동하시지만 그 속에 삶을 대하는 것이 달라 존경과 쓸쓸함이 동시에

들어 너무 맘이 아프다.

 

상처가 크면, 현실이 너무 막막하면 할말이 없어진다. 그런데 무언가 말하고 싶다. 들어달라고 소리치고 싶다.

이핼구할 곳이 없다고 가슴만 치다가도 이렇게 긴 수다를 펼친다.

 

난, 말로 하지 않겠다. 앞으로 더더욱 그러리라 다짐한다.

그건 요즘 주변 모두들 맘의 병을 한가지씩은 다 갖고 있는 듯하다.

나도 그들의 이야길 들어줄 여력이 없다. 그러니 내 애기 따의 그들의 귀에 걸릴리 만무하다.

그래서 인간은 외롭고 쓸쓸한 것 같다. 그렇다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이겨내야만 한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내 맘을 들어준다면 난 고마워 할 것이다.

지루하고 짜증나는 사실 이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일도 있겠지만, 읽어줘서 고맙다고.

내가  좀더 힘내서 두아이의 엄마노릇을 잘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저리 주저리 긴 수다가 내 스스로에게 치료약을 주는 걸까.  모든 가슴아프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 나처럼 심약하지는 않겠지만, 나도 언젠가는 에너지를 스스로

찾아 힘을 낼 날이 올수도 있을까...  아들아 엄만 너흴 정말 아껴 그리고 사랑해. 그리고, 어머니 제가 마지막 순간까지 도리를 잃지 않는 며느리가 되게 더 나빠지시지 말고 그냥 그냥 살아요. 우리.

하늘에 계신 아버님 그동안 한번도 꿈에 나타나지 않으시네요. 살아선 절 그토록 힘들게 하셨어도 그리울때가 있네요.

어머님에게도 그런 맘을 갖을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노력하지요.

 

아들아 너흰 순순히 사는 법을 터득해라. 받아들이는 삶의 법을, 세상은 그리 긴 것도 영원한 것도 없다.

욕심을 낼것도 아무것도 없다. 지금처럼 밝게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