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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다는 글 이어 올립니다.


BY 아주버님 2009-06-26

글 연이어 올리고 나서 좀 창피한 맘에 약간 후회가 되어 지울까 하다가

제글 보신 분들은 뒷 이야기를 궁금해 하실것도 같고 저도 이 기회에

12년전 앙금을 씻고파 다시 뒷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걸어서 십분거리 친정으로 도망치듯 갔지만 엄마의 설득에 저는 결국

그날 시집 형제들과 남편과 다같이 고향에 갔습니다.

첨 본 시부모의 묘는 초라하기 그지 없더군요.

자식들이 어찌 사는지 보려면 그 부모 묘를 보라는 말이 있던데

그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을 했지요.

특히나 시부 묘는 산비탈에 있었는데 한복 입고 들어가기가 너무 험해서

저는 가지 못하고 먼발치서만 지켜봤습니다.

벌초도 다니고 일년에 한두번은 오가고 했다지만

워낙 묘의 장소가 외지고 경사가 심한곳이다보니 봉분이 곧 쓰러질듯 보였어요.

당시 우리 경제사정이 좋지못해서인지 시부묘가

곧 저 사는 꼴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좋지 않더라구요.

아무튼 억지로 시골에는 다녀왔지만 저는 이상하게 그후로 시숙 보는게 너무 힘들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제사도 가기가 싫고 집안 경조사에도 가기가 싫었어요.

거기 가면 꼴뵈기 싫은 인간을 또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너무 싫더라구요.

그리고 빨리 빚 갚고 돈을 모아야한다는 강박관념속에 살다보니 어디 움직이면 다 돈이라

저는 정말 꼭 내가 필요한 자리 아니면 잘 안갔어요.

심지어 친정에서 조차 결혼하더니 얼굴 보기 힘들어졌다고 

친정 삼춘이 오래만에 저를 보시고는 서운하듯 말씀하셔서 무척이나 민망하고

서러운 맘에 혼자 몰래 울기도 했습니다.

사는 형편을 일일이 다 이야기 할수도 없고 아이 낳는 그달 빚을 다 갚자마자

아엠에프가 터져 남편은 실직을 하고 우리는 일자리 따라 여기저기 떠돌이 신세로

몇년을 살다보니  저는 그야말로 사는데 급급했어요.

워낙 바탕없이 시작한데다 그때의 사회분위기까지 그러했으니 정말 너무너무 살기가 힘들었죠.

방얻을 돈이 없어 사장댁 아파트 방 한칸을 빌려 백일 지난 갓난쟁이  데리고 몇달간을 함께 거주하기도 했어요.

23평 아파트에서 여덟식구가 살았는데 지금까지 살면서 그때가 정신적으로 참 힘들었네요.

휴우~

비록 시부모 얼굴도 모르지만 그래도 남편 낳아준 부모인데 제사는 가는게

도리인것 같아 제사 명절에 가기는 했지만 그 명절이나 제사 한두달전부터 시숙이 보기 싫은데

억지로 가야하니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되고 짜증이 나 남편과 자주 다툼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시숙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더 깊어갔겠죠.

그 인간이 그러지만 안했어도 평소엔 사이좋은 우리 부부 한번도 큰소리 날일 없는데

죄없는 남편 나한테 늘쌍 그일로 당하는게 가엾다는 생각이 크면 클수록

시숙에 대한 뿌리깊은 밑바닥 원망은 쉽게 가시질 않았습니다.

억지로 간 자리 편할리가 없고 표정관리 안되어 뚱하게 있는데다

워낙에 좁은 곳에서 많은 음식하며 있자니 안그래도 성질이 나는데

제사음식 하는것까지 일일이 다 간섭을 하는 시숙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게다가 손아래 시누이들 조차도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다 한통속으로 노는데

기가 차서 빈정 상해도 대꾸하고 싶은 맘도 없더라구요.

지들이 미혼때야 경험이 없고 몰라서 그런다고 이해를 해도

결혼 하고 나서도 며느리 입장은 생각도 안한채 친정만 옳다고 감싸는 모습이

영낙없는 시누이 행세가 따로 없더라구요.

사는게 참 우울하고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 못지않게 잘하고 살려는 맘으로 힘들게 결혼했는데

한방에 앉아있어도 신랑이 오기전엔 꼭 필요한 이야기 아니고는 말한마디 안섞는 아주버님과 나 그리고 시누이들..

그렇게 숨막히는 제사 명절을 몇년 보내면서 시댁만 다녀오면 남편과의 쌈은

연례행사가 되버렷고 우린 어느새 가벼운 손지껌도 서로 하게되면서 저는 우울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낼 또 쓸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