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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 인과응보(因果應報) 3


BY 일필휴지 2010-07-03

“학교를 다니다가도 엄마 생각만 하면 버럭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럼 영락없이 애꿎은 친구들을 또 마구 팼지요.

그 바람에 결국엔 퇴학을 맞고...”

 

노파는 연신 혀를 찼다.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했겠수.

그래서 아무리 어려워도 엄마는 가정을 지켜야 하는 법이오.

난 사실 이런 말을 할 자격도 없는 년이긴 하지만 말유.”

 

그러거나 말거나 수로의 장광설은 계속됐다.

“할머니, 자신이 엄마와 세상으로부터도 버려졌다고 느껴질 때의 그 참담함을 아세요?

저는 그래서 수차례나 자살까지도 시도했었습니다.”

 

“아이구~ 그럼 안 되지!”

“저에 대한 삶의 목적과 희망을 죄 잃어버리고 나니 뭐를 해도 의욕이 없었지요. 다만.”

 

“다만?”

“어머니에 대한 증오만큼은 더욱 태산의 크기로 키웠지요!”

 

“잠깐만요.”

노파는 일어서더니 냉장고를 열어 사이다를 한 병 꺼내어 땄다.

 

“얼굴이 술기운으로 붉으니 이 걸 한 잔 마시구려. 그럼 속이 좀 나아질 거요.”

수로는 그러나 술이 더 고팠다.

 

“감사합니다만 소주나 한 병 더 마시렵니다.”

세 병째의 소주를 마시면서 수로는 이미 작심했다.

 

그러나 기왕지사 일을 벌일 것임에 ‘재차 강조’는 더 하고 볼 일이었다.

“그렇게 엄마로부터 버림받고 세상으로부터도 차임을

당했다는 피해의식은 언제나 그렇게 절 휘감는 먹구름이자 폭풍한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상처받은 사랑이 결국엔 악으로 변했다고나 할까요...”

 

“듣고 보니 이해가 되는 구려.

그나저나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는데 어쩌나?

연탄도 한 장 갈아 넣고 자야 내일 또 가게 문을 열 텐데...”

 

수로는 결행(決行)의 시간이 임박했음을 느꼈다.

“아 네, 그렇군요. 제가 술땜에 말이 길어졌네요.

금방 일어나겠습니다. 끝으로 한 마디만 더 여쭙겠습니다.”

 

“어서 말하구려.”

꿀꺽~

 

수로는 긴장에서 비롯된 마른 침으로 말미암아 혀까지 건조되는 느낌이었다.

 

“오늘 저는 마침내 제 평생의 원수인 엄마를 찾았습니다.”

“그래요? 그 엄마는 어디 있던가요?”

 

노파의 얼굴이 자신의 일인 양 어떤 반가움으로 가득했다.

수로는 순간 자신이 마시고 난 빈 소주병을 손에 들었다.

 

“그 개 같은 년은 바로 너야, 이년아!”

노파는 눈앞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 그게 뭔 소리요? 내가 댁의 엄마라니?”

수로는 소주병을 바닥에 대고 깨 흉기로 만들었다.

 

그렇게 깨진 소주병의 주둥이를 손에 쥔 수로의 눈에

이제 자신의 앞에 있는 노파는 살해의 대상으로만

보이는 평생의, 그리고 철천지원수(徹天之怨讐)일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