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지난여름에 천안함 사고가 난 뒤로
유가족 중에 보상금을 노리고 아들이 겨우 두 살 때
버린 엄마가 찾아와 그 보상금을 그예 찾아갔다는 뉴스 알지?”
“알죠. 근데 왜 뜬금없이 그런 말씀을?”
“개인적으로 난 그 엄마가 사람도 아니라고 보았네!
그게 무슨 엄마인가? 개새끼도 제 새끼는 안 버리는 법이거늘!”
리한은 마치 분이 덜 풀렸다는 형색(形色)으로
소주를 스스로 따라 역시도 원샷으로 마셨다.
“내가 형사 생활을 한 지도 10년이 넘었지만
이번 원수로의 사건과 같은 참혹한 사건은 첨일세.
하지만 이 사건을 틈새로 유심히 보자면 원수로만을
탓할 수도 없다는 걸 나는 발견했다네.”
“그게 뭔데요?”
“우선 원수로의 그같은 악행(惡行)은 우선 자신이 받았고
또한 겼어야만 했던 어머니로부터의 버림에 대한
잔인한 대우를 되갚았다는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는 거지.”
“그렇다곤 하더라도 그 수법이 너무 잔인했어요.”
“따지고 보면 이보다 더한 사건과 사고는 많은 법일세.
하여간 어쨌거나 자식이 겨우 젖먹이였을 때
집을 나갔다는 그 엄마가 내동(‘지금껏’의 전라도와 충청도의 방언)
연락조차도 없다가 막상 그 아들이 천안함 사고로
말미암아 불의의 변을 당하면서 보상금을 받게 됐다는 뉴스에
견물생심(見物生心)의 발동에 근거하여 불쑥 나타났다는 건
경우에도 안 맞는 실로 인면수심의 작태 아닐까?”
“저도 그건 맞다고 생각합니다.
보상금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 엄마라는 작자는 유가족들 앞에 나타났을까요?”
“그래서 더욱 괘씸하다는 거야!”
다 끓어 얼추 곤죽이 된 부대찌개는 이제 리한의
식욕을 당기는 요인으로부터 멀어진 지 오래였다.
“아줌마~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쇼.”
“선배님, 대낮부터 너무 과음이세요! 오후 근무는 어쩌시려구요?”
“냅둬. 들어가는 즉시로 곧장 취조실에서 자면 되니까.”
두 병째로 이어진 소주는 리한의 의식을
더욱 공고한 어떤 휴머니스트로 만들고 있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따위의 고루한 철학을 신봉하는 편은 아니네.
그렇긴 하더라도 이번 ‘원수로 사건’의 경우는
그가 왜 그토록이나 끔찍한 짓거리를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관찰하는 것도 우리로선 그리 나쁘진 않다고 봐.”
“선배님의 말씀이 옳으십니다.”
“원수로는 제 어미가 그처럼 자신을
방기하는 바람에 아버진 폭음으로 일찍 죽었다고 했네.
이후 그는 고아원을 전전하면서 맞기도 무수했다는 거야.
그랬으니 그가 경험했을 그 수많은 증오감은 가히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을 테지!
아울러 그처럼 어미와 세상에 대한 증오감이
극심했음에 반대급부로써 그는 자기 자신까지도
부정하는 최악의 상황에까지 봉착했으리란 유추와 해석까지도 가능했다고 나는 봐.
고인에겐 안 된 말이지만 원수로의 모친은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죄값을 받은 거야.”
셈을 치른 지식의 운전석 곁 조수석으로 비척이며 리한도 차에 올랐다.
경찰서로 되돌아가는 두 사람의 차창으로 차가운 눈발이 마구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 눈발은 삭풍(朔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