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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과학]접촉에 굶주리면 아기의 두뇌도 손상돼


BY 또로롱 2000-09-21

[육아과학]접촉에 굶주리면 아기의 두뇌도 손상돼피부는 우리 몸에서 가장 무거운 기관이다. 추위와 위험 물질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무게 3㎏의 이 기관은 감촉을 느끼는 수용체로 가득 차 있다. 누군가가 나를 쓰다듬을 때 수용체에 가해지는 물리적 자극은 전기적 신호로 바뀌어 뇌에서 한바탕 불꽃놀이를 일으키고 새로운 신경망을 만든다.

특히 갓 태어난 아이에게는 피부 접촉이 정상적인 뇌 발달에 필수적인 영양소이다. 접촉에 굶주린 아이는 잘 먹지 않고 두뇌와 건강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는다. 또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 이성 관계에 적응을 못하고 우울증과 불감증에 시달리게 될 확률이 높다.

문제는 선진국이 될수록 아이와의 피부 접촉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맞벌이 엄마의 품에서 떨어져 나오고, 잠도 혼자서 자고, 뒷좌석의 시트에 묶여 있게 된다.

피부 접촉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이 신경학자와 심리학자의 연구를 통해 밝혀지면서 요즘 미국에서는 ‘터치 운동’의 물결이 일고 있다. 피부 접촉을 촉진하기 위한 단체가 생기고, 아기 마사지 가이드북, 베이비 마사지용 오일 광고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병원에서는 미숙아 마사지 치료가 보편화되고, 일부 아동병원은 “오늘 아이를 안아주었습니까?”하는 문구를 벽에 붙여놓고 있다.

연세대 황상민 교수(발달심리학)는 한국인도 선진국형 ‘접촉 결핍증’에 빠져들고 있다고[육아과학]접촉에 굶주리면 아기의 두뇌도 손상돼 우려한다. “우리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 심장소리를 느꼈고, 볼을 비벼대는 부모와 눈을 맞추었고, 젖꼭지를 물고 잠이 들었다. 그러나 생활이 서구화되면서 요즘 아이들은 엄마와의 접촉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황교수는 “특히 미숙아에 대한 마사지는 약이나 주사보다 훨씬 효과적인데도, 우리나라의 병원은 삭막한 아파트식 인큐베이터 속에 아기들을 방치해 놓고 있다”고 지적한다. 의료 수가에도 미숙아에 대한 마사지 치료가 반영돼 있지 않다. 외국에서는 미숙아에게 마사지를 하면 그냥 놔둔 미숙아보다 50%나 빨리 자란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왔다.

신생아의 접촉 결핍증은 2차대전 당시 고아들의 이유 없는 죽음에서부터 연구가 시작됐다. 좋은 약과 음식, 깨끗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죽어 가는 아이들의 사망 원인이 밝혀진 것은 ‘접촉 연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위스컨신대 해리 할로우 교수에 의해서였다.

[육아과학]접촉에 굶주리면 아기의 두뇌도 손상돼그는 70년대에 원숭이 실험을 통해 1살 미만의 원숭이에게는 접촉의 제거가 다른 네 개의 감각보다 뇌에 훨씬 큰 손상을 준다는 것을 밝혀냈다. 접촉 없이 자란 원숭이는 판에 박은 행동을 반복하고, 어울리지 못하고, 주변에 흥미를 못 느끼며, 접촉을 두려워하고 공격성을 나타내며, 비정상적인 성행위를 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아기를 돌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건강이 나빠진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미국국립보건원 신경심리학자 제임스 프리스콧은 세계 4백개 문화권을 조사했다. 그 결과 어려서 아이를 잘 만져주고, 키스나 포옹 같은 연인의 애정 표현에 개방적인 사회일수록 폭력이 적다는 것을 통계 분석을 통해 밝혀냈다. 듀크대 신경학자인 소울 쉔버그교수는 “피부 접촉의 효과는 언어나 감성적 접촉보다 10배는 강하지만 최근에야 이에 대한 생물학적 근거가 밝혀졌다”고 말한다.

‘자신감 있는 아이 키우기’란 책을 쓴 미국의 심리학자 수잔 베일은 성공적인 육아법 5개 가운데서 접촉을 첫째로 꼽는다. “갓 태어난 아이는 엄마와 공생관계이다. 이 때 아기에게는 우리만이 있을 뿐 나와 타인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접촉을 통해 나와 다른 사람의 경계를 발견하면서 자아란 개념이 싹튼다. 또 다른 사람이 만져줄 때 내가 가치 있는 존재란 느낌을 갖고, 사람과 접촉하면 위로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탄생 초기 접촉을 통한 부모와의 상호작용이 나중에 커서 사회적 관계의 주형이 된다.”

하지만 우리의 유교 문화 속에는 여전히 접촉〓섹스〓죄악이란 고정 관념이 뿌리깊게 박혀 있다. 또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지나치게 귀여워 해주면 버르장머리가 나빠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접촉에 목말라하는 신생아는 아무리 안아줘도 지나치치 않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지적이다.

황상민 교수는 “접촉은 출생 1,2년 뒤까지가 가장 중요하지만, 학교에 적응 못하고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에게도 효과가 있다”며 “이런 아이에게는 나무라기보다 꼭 안아주면서 사랑을 느끼게 하는 부모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귀띔한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do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