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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암도에서 - (갯벌이야기 1)


BY 통통감자 2000-10-05

> 형주는 뭐 입힐까?
> 빨간 반팔 T셔츠에 아이보리색 가디건, 청바지, 양말은 저기 있네.

갑자기 분주해진 아침이다.

10월 3일 .
우리 세식구는 근처에 있는 아암도 해상공원에 다녀오기로 했다.
이름만 근사할 뿐 사실은 송도 인근의 해안도로변 산책로이다.
하지만, 인천에 살면서도 바닷냄새 한 번 제대로 못맡는 형주에게 가까이서 바다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우리에겐 특별했던 것이다.

차를 타고 20여 분이 지나자 곧게 뻗은 해안도로가 펼쳐졌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약 4~5km 에 걸쳐 예쁜 담장이 있는 해안공원이 나왔다.
산책로가 있고, 아래로 계단이 있어서 계속 내려가면 야트막한 돌무더기가 있다.
그 옆으로 마침 물이 빠져서인지 작으마한 게들이 지천으로 돌아다닌다.
멀리까지 계속되는 진흙의 갯벌속에서 햇빛에 반사되는 반짝반짝 자그마한 생물들.
새끼손가락만한 망둥어 새끼들이 미쳐 빠지지 않은 물속에서 헤엄치며 놀고 있다.

> 야! 잡았다.
두 마리나 달려있어요. 우와!!

어디서 많이 듣던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여기서 보람이를 다시 만나다니, 아이가 먼저 보고 알은체를 한다.
부모님인 듯한 분들과 눈인사를 나눴다.
가끔 분리수거때 마주쳤던 아주머니다.

> 안녕하세요?
여기서 뵙네요. 저희보다 일찍 오셨군요.

> 보람아빠가 낚시를 하겠다고 저러네요.
여기서 무슨 낚시람?

자그마한 낚시대에 갯지렁이 두 마리를 바늘에 꿰어 물도 없는 갯벌에 던져놓고 있다.
모래사이 미쳐 빠지지 않는 고인 물속에 바늘이 들어가면 순식간에 낚시대를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다.
보람이가 살그머니 잡아들자, 갯지렁이를 입에 문 500원 짜리 동전만한 게가 두 마리나 끌려나온다.
형주는 누나의 탄성소리에 꺄르륵 웃어대고, 아이의 웃음소리에 신이난 보람이는 또 열심히 낚시대를 던진다.

어느덧 두 가족은 하나처럼 어우러져 어설픈 게낚시를 함께 즐기고 있다.

> 참. 저희는 김밥을 좀 많이 싸왔는데, 함께 드시지 않겠어요?

보람엄마의 기분좋은 제안에 함께 점심을 들었다.
남편이 사온 음료수와 샌드위치를 함께 놓고, 그늘도 없는 갯벌가에서 바닷바람을 마시면서,...

식사 후 산책을 하는데, 갑작스레 보람이가 내 손을 끈다.

> 아줌마, 이 그림이 뭐예요?

> 송도 신도시 조감도야.
이 곳에다 사람이 살수 있는 작은 도시를 세운다는 구나.
하지만 여기여기는 메꿔지지 않고, 저 쪽 부분만 메꿔서 아파트를 지으려나 보다.

역시 똑똑한 보람이다.
작은 표시물 하나도 놓치지 않는 아이를 보며, 새삼 놀랐다.

> 난 지난 여름에 서해안에 있는 생태학교에 다녀왔는데요.
거기 선생님이 갯벌을 없애는 것은 환경을 파괴하는 거라고 했어요.

> 그래, 굉장히 중요한 곳이지.
갯벌은 바닷가 가까운 강이나 하천에서 뻘이나 모래 같은 작고
가벼운 것들이 들어와서 만들어 진단다.
이 때 육지에서 많은 먹이를 가지고 와서 이 뻘 속에는 굉장히 많은 영양분이 들어있지.
바다속의 논밭이라고 하면 될까?
지금은 작은 게밖엔 안보이지만, 굉장히 많은 종류의 조개와 갯지렁이, 플랑크톤 등 갯벌생물들이 살고 있다더라.

> 근데, 왜 없애는 거죠?

> 글쎄,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아줌마도 잘 모르겠다만 조금은 아쉽기도 하구나.
이 갯벌을 만드는데는 8,000년의 시간이 흘렀다는데,...

> 8,000 년이요? 우와. 그렇게나 오래걸려요?

> 그럼, 중국에 있는 양자강과 황하, 우리나라의 한강 같은데서 천천히 작은 모래알들이 들어와서 이 많은 갯벌을 만들었는데 ....

8천년이란 말을 중얼거리며 토끼뜀을 뛰고 있는 보람이를 따라 형주도 모듬 뛰며 따라다닌다.
8천년의 세월을 십수년에 우리는 바꾸려 하고 있다.
썩어들어간 시화호 처럼 앞으로 몇 년후 이 갯벌도 썩어들어가 더 이상 게낚시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몇 미터 뒤에 따라오는 남편과 보람이 부모님도 같은 걱정을 하는 듯 싶었다.

> 아무튼 무조건 땅메꿔 집짓는게 문제야 문제...

두런두런 얘기하는 어른들을 뒤에 남긴체 서둘러 아이들을 쫓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