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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한뼘이나 가까워졌어요.


BY 통통감자 2000-11-22

감기에 걸린 형주 때문에 회사를 하루 쉬고 집에 있었다.
잠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사이에 보람엄마가 열린 문 앞에서 형주와 놀고 있었다.

> 어서오세요.

> 난 문이 열려있길래 걱정이 되서.. 호호.

핑계김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벌써 점심때가 다가왔다.
이따 보람이 오걸랑 함께 병원에 다녀오자며 서둘러 올라가셨다.
요즘들어 아이들 감기가 극성이다 보니 집집마다 감기걸린 아이들 때문에 걱정이 많은 것 같다.
형주도 벌써 일주일째 병원에 다니고 있다.
코감기가 나으면 목감기에 열이 부쩍오르고, 좀 낫았다 싶으면 기침을 쿨럭인다.
비교적 잔병치레가 적었던 아이였는데, 이번감기는 여간 독한게 아닌 듯 싶다.

둘이서 낮잠을 한숨 자고 나니, 보람이네서 인터폰이 왔다.
병원에 들렸다가 근처에 있는 마트에 다녀오잔다.
혼자서 적적하던차에 잘됐다 싶어서 아이를 들처업고 따라나섰다.

병원 문 앞에서부터 우는 형주를 껴앉고 한참을 기다려서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일주일째 가는데도 아이에게 병원은 무서운가보다.
동네 약국에 처방전만 놓아두고 서둘러 마트로 향했다.
언제 울었나 싶게 뒷좌석에 앉은 보람이와 형주는 깔깔거리며 신이 났다.

일부러 차를 멀리 돌아 계양산 근처까지 지나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보람이가 큰소리를 친다.
덩달아 형주도 큰소리를 친다.

> 엄마! 엄마! 산이 한 뼘이나 가까워졌어요!!
> 엄마! 엄마! 므어므어 까까까@##

이 곳에서 가까운 교회에 다니는 보람이네는 일요일마다 계양산 근처를 지나는가보다.
어제 비가 내린 후인지라 대기가 유독 청명하였다.
공장이 많은 인천에서 이렇듯 쾌적한 날을 만나기는 쉽지가 않다.
날씨는 매섭게 차가왔지만 태양이 따뜻이 내리쬐고 공기중에 분진이 빗물과 함께 쓸려내려가 나 역시 기분이 무척이나 상쾌해졌다.

> 보람아!
공기중에 있는 먼지들이 비와 함께 다 쓸려 내려가서 그러는 거야.
집안에 있는 창문도 안닦아서 뿌연해지면 흐릿하고 멀게 느껴지잖니.
깨끗하게 닦아놓으면 환하고 창밖이 더 가깝게 느껴지고,...
하나님이 우리 보람이랑 형주랑 잘 보이라고 먼지청소를 해주셨구나.

보람엄마도 웃으면서 아이가 더 잘 보이게 창옆에 놓인 종이 봉투를 바닥에 내려놓아 주셨다.

> 가끔 저도 보람이처럼 무척 기분 좋게 느껴질때도 있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우리가 그만큼 나쁜 공기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해요.

세차한지 삼사일만 지나도 뿌옇게 먼지앉은 차를 바라보며 이것들을 우리가 다 마시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이의 입에 방독면이라도 씌워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게다가 남편의 와이셔츠 깃에 뭍은 검정 때가 비누세탁으로도 잘 지워지지 않는 기름때일 경우엔 차라리 숨을 들이키고 싶지않다.
결혼전 시골에 계신 친정아버지의 하얀 와이셔츠는 비누로 싹싹 닦아도 금새 때가 지워졌다.

하나하나의 대기오염 물질들이 나와 산 사이를 가로막아서 한뼘이나 뒤로 가게 만든다고 생각하니 가까워진 산만큼이나 무거워진 마음을 안고 돌아와야 했다.
요즘들어 천식을 앓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 역시 깨끗하지 못한 공기 때문은 아닐까 몹시 우려가 된다.

형주의 기침소리가 잦아들면 잦아들수록 쾌적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엄마 마음이 무척이나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