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619

까치의 비애


BY 통통감자 2000-11-27


> 아이구야~ 춥다 추워.
눈이 많이 왔다.
밖에 까치가 다 얼어 죽었다.
어여 나와봐라.

추운겨울 엄마가 늦은 아침잠을 깨울 때 맨날 하던 소리다.
어린 나는 하얗게 쌓인 눈을 보기 위해, 게다가 얼어죽었다는 까치를 보기 위해 두꺼운 이불속에서 기어 나왔다.
무언가의 죽음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과 두려움에 떨면서, 양손으로 두 눈을 슬그머니 가리고 문틈 밖으로 빼곡이 고개를 내밀었다.

> 까치가 운다.
좋은 손님이 오실랑갑다.

이 역시 기분 좋은 아침에 멀리서 우는 까치소리를 들으며 하시던 어른들의 말씀이다.

> 거기 맨 꼭대기 감일랑 남겨놓거라.
겨울에 까치밥하게...

늦은 가을 서리가 내릴 무렵 다 익은 홍시며 우려낼 땡감을 따 놓으실 때 항상 듣던 말씀이었다.

하지만, 2000년 지금.
까치는 친근한 우리의 친구가 아닌 유해조류로 평가받고 있다.
96~99년 까지 까치에 의한 농작물의 피해는 무려 118억원.
이제 까치는 농민들의 생존까지 위협하는 새일 뿐이다.

예전의 까치에게는 청개구리며 작은 파충류나 곤충등의 먹이감이 많았다.
하지만, 무분별한 개발과 농약의 살포로 인해 이 작은 생명들이 사라져갔다.
그래서, 그 간에는 침범하지 않았던 과수며 농작물을 쪼아대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솔개며 매와 같은 맹금류가 사라졌기 때문에 까치는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정상에 오른 것이다.
이제 자연상태에서 까치를 대적할 그 무엇도 없어졌다.
오직 생존을 위해 사람만이 존재할 뿐이다.


까치 까치 설 날은
어저깨고요
우리 우리 설 날은
오늘이래요.

이제 더 이상 이런 화기애애한 노래가 까치들과 인간사이에 공존할 수 없다.

어딜가나 제일 쉽게 볼 수 있는 새. 까치.
형주가 가장 좋아하는 새. 까치.
하지만 이제 그 까치를 환경부에서는 유해조수로 지정했다.

비단 까치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아한 자태로 아름다움을 뽐내던 백로는 여름 철새였다.
하지만, 먹이감도 부족하고 마땅한 이동로가 끈긴 백로는 10여 년 전부터 점차 텃새화 되었다.

내 고향인 정읍에는 천 마리에 가까운 백로 군락이 있다.
시집오기 바로 전까지 살았던 친정집에서 마주보는 산에는 하얀 백로 떼들이 아침저녁으로 날아다녔다.
무척이나 아름답고 한 폭의 동양화 같은 그림이었다.
나는 결혼 전부터 내 신랑에게 백로가 살고 있는 고향을 무척이나 자랑했다.

하지만, 며칠 전 모 방송국에서 방영된 환경스페셜에서 바로 그 곳. 백로 군락이 있는 수성동이 나왔다.
주민들은 백로들이 울어대는 소음과 그네들이 천적을 막기 위해 뿌리는 배설물로 인해서 집과 차가 엉망이 되고, 농작물이 말라 죽는다고 성화였다.
결국 그 곳의 나무들은 백로의 둥지와 함께 잘려나갔다.

인간에게 너무 가까워는 백로들은 그렇게 그들의 둥지를 뺏겨야 했다.
피해를 입는 주민들의 잘못도 그렇게 가까이 다가온 백로들의 잘못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이 생태계의 순리를 무너뜨린 개발이라는 폭력으로부터 기인된 것이다.

우리집 앞 논 바닥의 왜가리떼도 사라졌다.
길주대로 공사 때문이다.
이젠 차창밖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거대한 포크레인만이 윙윙 거리지만 형주는 아직도 그 곳을 지날때면 머리를 쏙 빼내어 길게 그곳을 바라본다.

정녕 어떤 것이 옳은것이고 어떤 것이 그른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