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 수술복을 입은 두 명의 남자와 간호사 인듯한 세 명의 여자가 나를 내려보고 있다
안경을 쓴 남자가 날이 퍼렇게 선 수술용 칼을 들고 내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귓가에다 이렇게 속삭였다.
"한잠 자고 일어나면 모든게 깨끗하게 끝날겁니다."
그들은 내 불룩한 배에 무언가를 바르고 있다.
'내 아기! 내 아기! 내 아기를 살려줘요. '
우리 형주가 아직 내 뱃속에 있다.
그들이 내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
손발이 어느새 묶여져 있고, 아무리 발버둥을 치려해도 움직일 수 없다.
남편을 부르려해도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엄마! 엄마!
엄마가 도와줬으면 싶다.
엄마를 불러야겠다.
< 엄마~ >
> 엄마~. 엄마~. 까까~
쇼파에 덩그러니 누워서 잠깐을 졸았나보다.
형주가 옆에서 엄마를 부르며 사탕을 까달라 흔들고 있다.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꿈이었다.
오전에 받아본 녹색연합의 E-mail 때문일게다.
정부와 바이오벤처 그리고 병원에서 이미 개인 유전자 정보 은행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이 사업에 대한 시민 배심원을 모집하여 정부에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공상과학영화의 한 장면 처럼 모든 사람의 유전정보가 특정집단에 의해 수집되고 관리된다.
내 머리카락 한 올, 내 혈흔 하나, 내 배설물, 책장을 넘기며 발라진 내 침 한 방울까지 모든게 추적된다.
얼마전 뉴스에서 미아들의 유전자를 이용해서 부모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것 같다.
그 뉴스를 들으면서는 부모를 잃은 아이나 아이를 잃은 부모 모두에게 무척이나 다행한 일이라 생각되었는데,...
만약 병원이나 보험회사 혹은 기업체에 이 유전정보가 유출된다면 어떻게 될까?
50대의 중년남자가 어느날 갑자기 회사에서 퇴출압력을 받았다.
그 이유는 그 남자의 유전자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확률이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30대 주부가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는 보험회사의 통지를 받았다.
그 주부의 유전자에는 암에 걸릴 확률이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20대 젊은 부부는 이제 막 8주 된 태아를 낙태하기로 결정했다.
아이의 유전자에 비만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이들은 외모를 중요시 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유전인자가 맞지 않아서 2세에 좋은 유전인자를 가질 수 없는 젊은 커플은 집안의 반대와 사회의 압력으로 헤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임신 중 가슴졸이며 기형아 검사를 받았던 기억도 있다.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어떡해야 할지 혼자서 고민했던 기억도 있다.
이식을 요하는 환자들에게는 큰 희망의 소식일지도 모른다.
맞는 장기가 없어서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들에게 더 없는 좋은 일인지도 모른다.
복제양이 만들어지고, 어쩌면 인간의 장기도 복제될 수 있다는 지금.
우리나라만이 바이오산업을 육성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와 흥분보다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또래보다 한 뼘이나 작고, 행동이며 말도 무척이나 더딘 우리 형주를 바라보며 가슴 벅찬 행복을 느낀다.
행여 감기에 걸릴까 넘어져 다칠까, 혹여 공부를 지질이도 못하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염려를 해가며 가슴 뿌듯한 사랑에 미소짓는다.
내 이 행복을 꿈속의 그들이 앗아가려 했다.
형주가 내 뜻대로 자라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난 앞의 이야기가 꿈이었다는 것을 감사히 여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