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함께 할 사람을 이삼십대에 잠깐 만난 인연 중에서 결정하는게 맞는걸까?
잘 선택할수 있을까. 그런 선택이 선뜻 가능할까.
이런 얘기를 종종 한다. 나도 언뜻 그렇게 생각했다.
수 많은 회사에 이력서를 내면서 좌절하고 있다는 사람에게
딱 한 곳만 인연을 만나면 된다는 얘길 했던 적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도 비슷하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생각이 바뀐거 같다.
사는게 힘들고 외롭고 하다보니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소중해지고
그렇게 누구라도 내게 소중하다면 평생의 약속 같은건 모르겠고 그냥 계속 함께이고 싶은거다.
그런 마음을 계속 이어나가며 사는거겠지. 할수있는데까지.
그러니 평가하고 비교하고 그런건 아직 배부른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런게 된다는건 아직 살만하다는거지. 근데 언제까지 그럴수 있을까.
청춘이 지나고 몸과 마음이 지쳐가면 팔자좋은 누구라도 공평하게 늙어간다.
그리고 달라진다. 다른 사람이 된다. 그건 필연인거 같다.
다만 더 좋은 사람으로 변해간다면 좋겠지만 그건 모르겠다. 어떻게 하는건지.
각각 달라지며 헤어지기도 한다. 그건 그것대로 있을수 있는 일이니까
너무 심각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게 쉬울리가 없다. 이미 길들여져 버렸잖아.
수많은 헤어짐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그때의 아픔들은 정말 아팠다.
그렇지만 영원을 꿈꾸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노래를 들으면 아득해진다.
순간을 믿는 것도 좋아한다. 역시 그런 노래를 들으면 설레여온다.
영원해진 순간을 기다리는 것도 좋다. 희망의 약속.
역시 살아있는건 좋은거고, 청춘이 끝나지 않았음 좋겠다.
늘 청춘처럼 살수는 없겠지만 잘 증류된 청춘의 술을 이젠 가끔 들이킨다.
그런 얘기를 부끄럽지 않게 나누며
그런 순간을 함께할 사람이 지금 없다는건 아프지만 어쩔수 없다.
언젠가 꼭 다시 만나지 않아도 좋다. 다 내 안에 있으니까.
마음에 품고 살수있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 같다.
새 친구를 사귀지 못해도 괜찮다. 멀리서 바라볼수 있으니까.
일단 살아만 있으면 된다. 아직은 살아있는게 좋다.
그렇지만 지겨운 것도 사실이다. 왜 사는지는 여전히 알수없고
거짓말 같은 하루를 또 보내고나면 너무나 허무하고 부끄럽다.
오늘도 그 누구와도 닿지 않았구나.
요즘은 피의 흔적을 찾아봤다. 오시미 슈조. 그 동안 많이 진행되었네.
둘 다 각자의 집을 떠나고 싶어하는데 결국엔 돌아간다. 아직 어리니까.
나도 그럴때가 있었던거 같다. 하지만 집이 안전했다. 그럴수밖에 없었기도 했고.
자기 삶을 책임지는건 벅찬 일이다. 버겁기도 하고 가슴 벅차기도 하다.
어릴때의 불안정함과는 정반대가 된다. 자유롭지만 온전히 혼자다.
그런 삶을 일부러 동경한건 아니었다. 다만 현재가 버거웠을 뿐인거였지.
아무튼 지금은 자유로운 혼자가 됐고, 어떻게든 살아가게 됐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지만, 어떻게라도 살아가도 된다.
그 자유로움을 어찌하오리까. 가끔은 멀미가 나서 주저앉게 되는걸.
나도 많은 몽상을 한다. 부끄러워 망상이라 부르지만.
그 많은 바램들 중 하나라도 이룰수 있을까.
제주에 올때 생각했던 것도 있었고, 살면서도 그랬다.
하지만 이젠 모르겠다. 마침 이 노래가 나온다.
Anne Hathaway - I Dreamed a Dream (Les Miserables).mp3
이 장면을 돌려보며 함께 펑펑 울었는데
당신이 불쌍해서 울었고, 내가 불쌍해서 울었다.
가슴이 꽉 막혔다.
뭘 할까. 내 마음의 소리는 작은 벌레들 뿐이다.
큰 다람쥐 같은게 들어있다면 그걸 잘 돌볼텐데
이젠 다들 미약하다. 작고 별볼일없는 주제에 또 엄청 꿈틀댄다.
그냥 못본채 살고 있는데 그럼 살살 간지럽힌다.
이젠 다 했던 생각이고 다 겪었던 반복이므로 아예 관둔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이게 더 나아가기 위한 뭐라도 된다면 좋을텐데 그럴리 없겠지.
발판 같은거. 이야기에서처럼 갑자기 큰 각성이 찾아올리도 없고.
현실은 지극히 현실적이니 발을 멈추면 페달은 돌지 않고 자전거는 쓰러진다.
그래서 그냥 아무거나 하고 만다. 아무렇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