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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교계여우2020-05-31
    아줌마 파이팅



    30년 전 유행했던 15층짜리 아파트 단지에 해당되는 얘기다.
    요즘 유행하는 30층짜리를 가볍게 넘는 아파트 단지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30년 전 15층짜리 아파트 창틀은 알루미늄이다.
    당시 첨단을 달리던 창틀 재료로 알루미늄을 선택했을 테고 알루미늄 창틀이 나무나 철로 된 창틀에 비해 좋은 점이 있다.
    나무처럼 비에 젖어 썩지 않고 철처럼 비에 젖어 녹슬지 않는다.
    더군다나 창틀 나르는 노가다를 하는 내 관점에서 보면 알루미늄 창틀이 나무나 철 창틀보다 가벼워 들어 나르기가 많이 편할테고 이건 연약한 나한테는 확실히 매우 좋은 제품이란 생각이 든다.



    이런 좋은 점 투성이인 알루미늄 창틀에 안 좋은 점도 있긴 있다.
    대표적으로 단열이 잘 안된다.
    또 단열이 잘 안된다는 알루미늄 창틀의 대표적인 안 좋은 점에 비해 안 좋은 점이라고 하기엔 좀 부끄럽지만 요즘 30층짜리 P.V.C. 창틀을 보면 방음도 잘 안된다.
    그래서 15층 알루미늄 창틀 아파트에 살면 밖에 나가지 않아도 바깥 온도가 어떻다는 걸 알 수 있다.
    추운 겨울에는 바깥에 놀러 나오는 얘들도 없고 놀러나왔다가도 아 추워~하고 집으로 뛰어들어가기 때문에 단지가 조용하다.
    여름에는 그 반대로 바깥에 놀러 나오는 얘들도 많고 놀러나왔다가도 아 더워~하고 집으로 뛰어들어가지 않기때문에 단지가 조용하지 않다.



    15층짜리 아파트 알루미늄 창틀 방음상태를 근거로 추정했을 때 아주 늦은 겨울이거나 아주 이른 봄이 틀림없다고 확신할 수 있을 만큼 단지가 조용했다.
    이 소중한 정적을 깨고 난데없이 남자 둘이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15층짜리 아파트 알루미늄 창틀 션찮은 방음 덕분에 듣게 된 다툼의 내용은 이렇다.

    " 아 왜 여성분들도 왔다 갔다 하는 단지 입구에 대 놓고 노상방뇨를 합니까? 문화인이 취할 행동이 아니죠.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애들이 보고 배울까 봐 두려워요. 내가 다 부끄럽잖아요. "

    " 어 헉 내가 헉 오줌을 헉 싸는데 헉 니가 헉 뭔데 헉 헉 헉 헉..."

    둘 다다 전성기는 지난 나이인지 아주 큰 목소리는 아니지만 앞동 뒷동 옆동 옆동에 막힌 지정학적 여건 때문에 아주 크지 않은 목소리가 아주 큰 목소리로 증폭돼 상당히 시끄러웠다.



    술 취한 양반들하고 대화를 시도해본 분들이라면 다 알고 있듯 술 취한 양반들은 한 얘기를 마치 처음 하는 것처럼 다시 하고 또 처음 하는 것처럼 다시 하고 또또.. 또또또.. 또또또또...
    근데 술 취한 양반의 자연스러운 방뇨 본능을 문화인이라든가 청소년의 귀감이라든가 수치심이라든가 등등으로 지적질하는 양반도 자신의 주장이 전혀 멕혀들어가지 않는다는 비참한 현실에 전혀 굴하지 않고 했던 훌륭한 말씀 처음 하는 것처럼 다시 하고 또 했던 훌륭한 말씀 처음 하는 것처럼 다시 하고 또또.. 또또또.. 또또또또...



    30분이 넘고 40분이 넘어 15층짜리 아파트 알루미늄 창틀의 션찮은 방음성능에대해 오늘도 방구석에서 혼자 애태워하고만 있는데 한 순간 다툼을 종식시키는 어떤 아줌마 목소리가 들렸다.

    "아 이 웬수같은 양반아 술 마셨으면 곱게 집에 와서 잠이나 자지 이 뭔 동네 챙피하게 어서 집에 들어가요!"

    "아 아저씨 이양반은 술 마시면 제정신이 아닌데 그런 양반 붙잡고 뭔 노상방뇨 문화인 청소년 귀감 같은 얘기를 하세요? 아 뭔 노상방뇨 문화인 청소년 귀감 같은 얘기를? 아 그만 가세요!"



    여성들이 보면 부끄러울까 봐 자신도 부끄럽다고 하던 노상방뇨 문화인 청소년 귀감이란 현란한 단어를 큰소리로 쉴새없이 구사하던 양반이 그 아줌마한테 군말없이 수긍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어 헉 내가 헉 오줌을 헉 헉 헉 헉하던 양반도 그 아줌마 부축을 받고 여보 헉 내가 헉 술을 헉 안 마시려고 헉 헉 헉하며 옆동으로 들어갔다.



    15층짜리 알루미늄 창틀 아파트 단지는 아주 늦은 겨울 혹은 아주 이른 봄답게 다시 조용해졌다.

    알맹이없이 시끄럽기만한 다툼 현장을 순식간에 제압해 아파트단지 평화를 되찾고 현장정리중인 그 아줌마 한테 고마움에 목이 메었는지 어떤 놈이 15층짜리 그 방음 션찮은 알루미늄 창틀을 활짝열고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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